기사(騎士), 졸(卒), 악당(惡黨)
의사는 졸인가? Le Grand의 은유를 돌아보며
이번 A병원 간호사분이 뇌출혈 수술을 적기에 받지 못해 사회적으로 떠들썩하다.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개선해야 할 의료계의 문제는 무엇일까? 다음 글은 나의 醫學과 批評 블로그에 2016. 5. 4. 게재하였던 글이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글을 썼던 상황의 개선이나 변화의 물결은 감지되지 않는다. 매번 땜질식의 부분적 수가 조정에 그치는 조치로 넘어가고 쉽사리 뇌리에서 잊혀져 간다. 그러나 오늘도 현장에선 파괴된 의료 생태계로 인해 누군가는 불필요한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함께 되새겨 보기 위해 이곳에 재 발간을 해본다.
- Le Grand의 은유를 돌아보며 -
영국 총리의 원로 정책 자문역할을 맡기도 하였고 최근의 영국의 보건의료의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LSE)의 사회정책학부 교수이며 LSE health and social care 의장인 Julian Le Grand 교수는 인간의 동기와 행위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가설은 공공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며 동기와 행위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변화하는 태도의 특성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knights, knaves, pawns라는 은유를 사용하였다.
이번에는 Le Grand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의 비유에서 기사(Knights)란 공적 정신이 있는 이타주이자이며 미덕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이고, 졸(卒, Pawns)이란 정부지원을 수동적으로 받는 사람으로서 처해진 환경에 수동적인 희생자에 해당한다. 악당(Knaves)은 완고한 이기적인 사람으로 간주된다.
만약 정책 결정자들이 의사를 기사로 본다면 의사란 제도를 전체적으로 보호하도록 자원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낭비를 최소화하며 자신들의 개인적이고 특별한 이득을 넘어선 시각을 가질 것이라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며, 개개 의사의 의사결정과 자율성이 최고의 우선순위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며 생명을 구하고 개선시키는 것이 첫째이고 재정적 이득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여기리라 기대된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환자에게 최상의 진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학술지와 의학서적을 읽으며 학문적 발전을 위해 임상 및 기초의학 연구 수행하려 한다. 의료정책 및 지불제도는 의사들의 방식에서 나오고 그들로 전문가로서 직업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하며 그들의 조언을 존중하게 된다.
의사를 졸로 본다면 의사들 스스로의 조화 가운데 행할 수 있을 것이라 신뢰할 수 없으며 의사들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는 존재들이고 졸 의사는 그가 진료하고 있는 환경의 하나의 기능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의사들은 그들이 따라야 할 진료지침이 주어져야 하고 정책 결정자들과 규제자들이 임상적 우선순위를 결정해야만 한다. 공부를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모르지만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하고 지식을 유지하도록 해야 하고 진단검사를 더 많이 하도록 요구되면 그리할 것이고 더 적게 하도록 요구되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의사들이 어떤 특정 환경에 놓으면 그들은 그 지역의 문화와 기대치에 적응할 것이다. 졸 의사에 대한 의료정책과 규제는 그들이 단독적인 행사 능력과 옳은 것을 할 판단력이 결핍되어 있음으로 모든 행동에 지침을 주어야 한다.
의사를 악당으로 본다면 정책, 관리, 교육의 노력들이 의사들과 대항하여 고안되며 의사들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재정적 안녕을 위하며 환자는 부수적이거나 고려하지 않으며 환자를 위한 것은 보상과 장려책으로 유인되며 남용, 사기, 낭비가 있는지 주의 깊게 감시해야 한다. 의사들은 개인적인 이득이 있어야 새로운 기술과 시술을 학습하고 검사하고 연구하며 자신의 영광과 자기애에 의해 학문적 연구에 참여할 동기를 얻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의료정책과 규제는 의사들의 위법행위에 대항해 규제와 보고 카드에 의해 공중은 보호되어야 한다.
이상은 Le Grand의 생각을 요약한 것이다. 이러한 은유가 영국의 보건의료정책을 입안하는데 큰 정신적 철학적 근간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정책의 철학은 무엇인가? 어떤 조망이 없이, 전체적으로 통제하는 어떤 사상이나 철학 없이 정책을 입안한다면 드러난 현상에 주의하게 되고 그러한 현상에 개입하려는 관리 위주의 정책을 피게 된다. 그 결과는 또 다른 방식의 문제를 산출하게 되고 꼬리에 꼬리를 잇는 관리위주의 정책이 펼쳐지게 되며 그나마 기사로서 그 본분을 다하려 하는 전문가들에게 좌절을 끼치게 하고 그들의 기능이 사라지게 되면 의료의 질은 떨어지고 의료생태계는 복구되지 못한 채 상업주의가 만연해지고 의료는 황폐해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금 우리나라에 점차 만연해지려 한다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우려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논의할 때 많은 전문가들이 공감하며 무언가 지금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의료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데 공감을 표하고 있다.
참고 문헌
Le Grand J. Knights, Knaves or Pawns? Human Behaviour and Social Policy. Jnl Soc. Pol., 1997;26(2):149–169
Welshman J. Knights, knaves, pawns and queens: attitudes to behaviour in postwar Britain. J Epidemiol Community Health 2007;61:95–97
Jain SH, Cassel CK. Societal Perceptions of Physicians: Knights, Knaves, or Pawns? JAMA. 2010;304(9):1009-1010
우리가 의사를 기사로 볼 것인가 졸로 볼 것인가 악당으로 볼 것인가 따라 정책방향은 크게 달라지고 의료 시스템도 달라지며 사회 수준도 달라지고 의료 자원 소모도 달라지게 된다. 영국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여 신뢰가 구축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 왔다. 큰 철학적 기조를 유지하며 부족한 부분을 준 시장(quasi-market) 도입과 같은 보완책을 써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