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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Dec 01. 2020

외과 의사와 개혁

사회를 더 건강하게 하는 방법

 의과대학 학생 시절의 이야기이다. 본과 3~4학년이 되면 임상실습을 하게 되는데, 교실 안에서만 공부하던 것에서 병원의 최일선 현장으로 나와 학생 의사로서 의학을 실재적으로 배우게 된다. 임상의사란 환자의 침대 옆에서 선배 의사들에 의해 전수된 의술을 배웠고 또한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배워가며 머릿속의 이론 만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발생하고 진행하는 실재의 질병을 다루는 의사라는 뜻이다. 의과대학을 졸업했지만 임상의사가 아닐 수도 있다. 임상 경험 없이 해부학, 생리학과 같은 기초의학을 전공하거나 의료관리학이나 역학을 전공하거나 하면 임상의사라고 할 수 없게 된다.


 한 임상의사가  되는 데에는 많은 이야기들과 역사가 깃들여 있게 된다. 수많은 환자와 가족을 대하며, 발생하고 전개되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 의사는 매번 환자를 위한 최선의 답을 찾아나간다. 그 과정에서 때론 알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히기도 하고, 때론 어떤 사실을 간과하기도 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인데 어찌 그럴 수 있냐고 말하겠지만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게 되기도 한다. 의사가 되는 수련 과정에 한치의 실수도 하지 않도록 훈련받고 극도로 집중하고 긴장하며 환자를 대하도록 훈련받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실수나 과오가 발생할 수 있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명의라는 것은 그의 손에 많은 사람이 유명을 달리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말도 있다. 한 사람의 명의가 탄생하기까지는 그 과정에 그의 손에 많은 환자들이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실망스러우실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의학이다.


 미국의 의학원( Institute of Medicine)의 "To err is human"이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가  1999년 발표되면서 미국 사회와 의료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 보고서의 핵심을 간단히 언급하자면 매년 10만 명가량의 미국인이 의료과오로 사망한다는 것이고, 이는 미국에서 심혈관질환, 암에 이어 세 번째로 흔한 사망의 원인이 된다. 이런 연구 결과를 들을 때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미국만 그렇고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을까? 이러한 연구를 수행한 미국의 의사들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이것이 미국이고 미국의 힘이다. 있는 것을 그대로 말할 수 있는 나라! 겉으로 볼 때는 총을 쏘고, 할렘가에 범죄가 득실거리는 나라처럼 비추기도 하지만 이러한 연구 보고서를 의사들이 발표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 미국이 더 놀라운 나라인 것은 그다음에 있다. 우리 같으면 의료과오를 일으킨 의사들을 전수 조사하고 법정에 올리고 처벌하자고 하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 보고서의 제목이 이렇다. "사람은 실수한다" 좀 더 리얼하게 제목을 번역하면 "사람은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제목은 영국 시인이자 풍자 작가인  Alexander Pope가 쓴 시 "An Essay on Criticism: Part 2" 중에 나오는 한 구절인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에서 따온 것이다. 인간은 실수할 수밖에 없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하나님은 그 인간의 죄들, 실수를 용서해 주신다라는 뜻인데 결국 사람들인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더 안전한 의료시스템 구축"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즉 어떤 개개인 의사의 과오를 단죄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이 아니라 의료시스템을 정비하여 보다 안전한 진료가 이루어지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자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다.


 다시 나의 의과대학생 임상실습의 시절로 돌아가 보자. 외과의 임상실습 과정에 필수적으로 수술방에 들어가 어시스트를 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술방으로 들어가기 전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일단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수술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게 된다. 그 후 수술준비실에 들어가 스크럽(scrub)을 하게 되는데 스크럽이란 단어의 의미는 북북 문질러 닦는다는 뜻이다. 비누와 물 그리고 베타딘과 물, 사이사이 솔질. 이런 과정을 통해 특히 손을 집중적으로 씻게 된다. 물은 무릎으로 틀고 끌 수 있는 장치기 되어 있다. 스크럽 이후 손이 조금이라도  오염된 물체에 닿게 되면 원위치하게 된다. 스크럽 후에는 간호사의 도움으로 소독된 수술 가운을 입게 되고 최종적으로 소독된 수술 장갑을 착용하면 일단 준비가 다 된 것이다.  처음 이 과정을 배우고 처음으로 수술장에 들어갔는데 그날 집도의이신 M 교수님과 간호사들이 나를 보고 와하하 하고 웃어댔다. 스크럽 도중 상의를 다 물로 적신 상태로 수술방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병아리도 이런 병아리가 없었으리라. 이 모습이 귀여웠던지 수술방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수술로 제거해야 할 한 환자의 병소에 접근하기 위해 외과 의사가 하는 일은 먼저 자신을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다. 철저히 준비하지 않은 채 환자의 문제를 만지려 했다가 수술부위에 감염이라도 일으키게 되면 자칫 환자의 생명을 잃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의 곪은 부분, 제거해야 할 병소가 있을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먼저 외과 의사로부터 배워야 한다. 이를 다루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깨끗이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오염된 부분으로 말미암아 일 전체를 망가뜨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외과의사처럼 깨끗하게 철저히 처리된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외과의사 식의 접근은 매우 위험하게 된다. 따라서 두 번째 방식이 필요하다. 앞서 의료과오로 인해 의료계와 사회에 일어난 크나큰 문제에 접근하는 미국의 자세에서 우린 두 번째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지적하고 단죄하고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문제를 드러내고 이러한 문제가 생긴 원인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사회가 힘을 모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심사평가원을 통하여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는, 약제 투여에 의한 사고를 방지하는 시스템으로 DUR(Drug utilization review) 제도를 도입하는 방식과 같은 것이다. 약물의 중복, 사용 금기, 용량 과다 같은 처방 시 위험 요인을 컴퓨터 시스템에서 경고 메시지를 줌으로 피할 수 있는 약제 부작용을 회피하도록 시스템적으로 돕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과거의 실수, 어쩔 수 없이 행하였던 과거의 일들에 대해 단죄와 보복이 순환하듯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다 드러나게 하되, 용서하며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 제도화하여 전진해 나가는 사회를 이룰 필요가 있다.


 그들이 끈질기게 묻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글을 쓰고 계셨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사람으로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물러가고, 예수님만 혼자 남게 되었으며, 그 여인은 한가운데 서 있었다. (요한복음 8:7-9)


 우리는 다 실수나 과오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오늘 내가 던진 돌은 내일 다른 사람들이 내게 던질 돌이다. 지난 과오는 용서하되, 반복하지 않는 사회를 다 함께 만들어 가길 소망한다. 우리 사회는 개선되고 더 멋진 사회가 될 가능성이 넘쳐난다.





참고: 1. An Overview of To Err is Human: Re-emphasizing the Message of Patient Safety - Patient Safety and Quality -Kohn LT, Corrigan JM, Donaldson MS, editors. To err is human: building a safer health system. Washington, DC: National Academy Press, Institute of Medicine; 1999.

2. Alexander Pope | Poetry Foundation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ts/alexander-p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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