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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Dec 23. 2022

의료란 무엇인가?

 올해 뇌출혈이 발생한, 그것도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가 수술할 의사가 없어 사망한 일로 사회가 크게 요동하였고, 10년 뒤면 산부인과의사들이 사라진다는 소식은 의사들의 푸념처럼 들리더니, 연말에는 한 지역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대학병원에 입원할 소아과 환아들을 담당할 의료진이 없어 잠정적으로 입원 불가하다는 공고문이 붙었다.


 의료를  둘러싼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는 사라질 날이 없다. 외국 사람들조차 한국 의료를 경험하고는 좋다고 유튜브에 올리며 공감을 얻고, 이민 간 한국사람들이 귀국 시 반드시 하는 절차가 건강검진 성격의 진료를 받는 것을 두고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세계 최고인 것 같이 말하곤 하는데 이런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뜬금없는 것 같은 일들이 왜 쉬지 않고 일어나는 것일까?


  나라마다 의료제도가 사람 생긴 얼굴만큼이나 다 다르고 의료를 바라보는 철학적, 사상적 원칙들 또한 다르다. 우리는 얼마나 료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 이해에  따른 제도적 설계를 해오고 있을까? 우리 나리의 의료제도 설계에는 철학적 사유가 존재할까? 아니면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단기적 솔루션들의 집약체가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


 의료기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들을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제품과 같은 것으로 보아도 되는 것일까?


 의료란 무엇일까?


의료가 무엇인지 답하기 전에 의료가 지닌 내재적 특성들을 살펴보자.


 첫 번째 특성은 불확실성이다. 이 불확실성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인, 의료인이 사용하는 약, 진단적, 치료적 기술,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서비스가 제공되는 의료인력을 포함한 의료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존재한다.


 의료 소비자 측면을 보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에서 모든 사람들이 잘 목도했듯이  똑 같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나타나는 양상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 증세도 없이 걸렸는지도 모르는 무증상 감염자에서부터 렴이 생기거나 폐가 급속도로 섬유화 되어 호흡부전증에 빠져 심지어 사망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데 다들 놀랐을 것이다. 고령인 분과 고혈압, 면역억제자 등 위험인자들이 있는 분들이 심한 병으로 발전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겠지만 그런 분들 중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분들이 있고 내가 아는 분도 100세 가까이 되었는데 집에서 요양하고 끝날 정도로 싱겁게 코로나-19를 앓고 지나가셨다.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도구인 백신이나 치료약제의 경우 그 효과와 부작용이 사람마다 또한 매우 다르다. 어떤 사람은 백신을 여러 번 맞아도 몸에 티 하나 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심근염, 심낭염, 아나필락시스반응, 혈소판 감소성 혈전증, 길랭-바레 증후군과 같이 심각한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물론 1000명 중에 35명 정도에서 일반적인 이상반응이, 1000명 중 1명 정도에 중대한 이상반응이 보고 되었고 이중 인과 관계가 밝혀진 것은 더 적은 숫자이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에서는 큰 이상 반응은 발생하지 않지만 문제는 소수라도 내게 발생하면 100%로 여겨지고 이런 일이 발생한 사람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니 통계수치만으로 표현될 수 없는 현장에서의 갈등과 고통은 사회 저변에 깔려 있게 된다. 다음 질병관리청의 방접종 이상반응 안전성 보고서의 일부자료를 보더라도 성별, 연령별 부작용 증세들의 발생이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불확실성을 보여 준다.


출처: 질병관리청, 코로나19예방접종 안정성 보고서, 2022. 12. 8


출처: 질병관리청, 코로나19예방접종 안정성 보고서, 2022. 12. 8


 다음으로 의료서비스 제공자 측면을 보자. 의료 서비스 제공자는 고도로 교육받고 훈련된 '사람'이다. 사람의 한계를 고스란히 갖고 있다. 고도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어느 누구도 전 과목 만점으로 의과대학 교육 과정을 통과한 의사는 없다. 또한 그가 수련 과정에 또 그 이후 만난 환자들이 다 똑같은 환자들이 아니다. 모든 의사가 다양한 각기 다른 체험들을 갖고 있다. 대학과 졸업 후 지속 교육과정을 통해 얻어진 의학적 지식과 그가 임상에서 보아 온 환자들에 대한 경험의 통합을 통해 매 번 만나는 새로운 환자에 대한 의사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그가 아무리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공부하고 노력하였을지라도 의학의 모든 지식을 갖고 있을 수없고 어딘가 비어 있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가 경험한 환자들의 양상이 모든 유형의 환자들일 수 없음으로 그는 매번 새로운 불확실성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진실된 의사는 "저는 환자에게서 매일 매 순간 배웁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또 동일한 의사라 할지라도 밤새 환자를 진료하고 쉬지 못하고, 난제의 환자들을 수주 간을 돌보며 다음 날 또 환자를 진료할 때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환자를 진료할 때 제공되는 서비스가 같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물론 고도의 교육과 수련의 과정을 거쳤으므로 그 변동의 폭이 매우 적도록 훈련되었지만 '사람'의 한계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의료인력을 포함한 의료기관의 여건에 대해 보도록 하자. 의원급, 병원급, 종합병원급, 상급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이 각기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 인력구성이 다 다르고 진단 장비의 구비된 상태가 다르고, 매일의 장비 상태가 같다고 할 수 없다. 동일한 의사가 A라는 병원에 근무할 때의 결과와 B라는 병원에 근무할 때 그 결과가 같을 수없는 의료기관의 특성상 요인이 존재한다. 혹자는 최상의 시설과 의료진을 갖춘 병원에서 환자를 보아야 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모든 환자들이 그 의료기관으로 다 진료를 받으러 간다고 상상해 보라.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상으로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는 모든 여건들의 불확실성을 보았는데 각기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들이 만나 새로운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 즉 '환자적 요인의 불확실성 x 의료 서비스 제공 도구들의 불확실성 x 의료 제공자의 불확실성 x 의료기관의 불확실성 = 불확실성의 증가'와 같은 정량화 할 수 없는 공식을 산출하게 된다.


 둘째, 의사들은 진단 과정에 확률적 가능성을 갖고 접근한다. '얼룩말 원칙', 오컴의 면도날 (Ockham's razor),  베이즈 정리(Bayes's theorem)와 같은 원칙에 따르는데, 간단히 말하면 확률적으로 보다 가능성이 있는 질환일 것으로 생각하고 환자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농장지대 길을 가다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 하자. 이것이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말발굽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얼룩말 발굽소리일 수는 없는가? 있지만 그런 설정을 하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세렝게티 초원에 사파리에 동참하였다면 그때는 얼룩말 발굽소리라고 답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물론 감별 진단을 위한 검사들을 시행하지만 아주 드문 질환까지 처음부터 생각하고 치료의 계획을 세우진 않는다. 진찰 시점에서 최종 진단이 나오기 힘든 경우 경험적 치료가 의학적 표준으로 받아들여진다.


 의과대학 학생시절과 수련의 시절 전 세계 최고의 위치에 있는 임상의학 학술지인 뉴잉글랜드 저널에 증례보고를 읽다가 의아한 생각이  들곤 하였다. 세계 최고의 병원인 하버드 대학 병원에서 환자를 보는데 처음에는 어떤 질환이라고 생각하고 치료했는데 환자의 반응이 이상해서 다시 의학적 추가 검사를 해보니 드문 다른 질환이었던 사례들이 적지 않은 것이었다. 일반인이 보면 딱 오진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증례보고로 드물지 않게 올라왔는데 이것은 의학에서 환자를 접근하는 방식이 확률적으로 더 가능성이 있는 질환을 의심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있을 수도 있는 모든 드문 질병까지 샅샅이 다 뒤져보고 검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환자도 지치고 의료 자원도 쓸데없이 과다하게 소모하고 검사로 인한 해로움이 발생할 수도 있고 검사하느라 치료가 시작될  귀중한 시간을 늦출 수도 있기 때문에 득실을 따져가며 의사는 확률적, 경험적 진단을 내릴 것과 감별진단의 범위를 결정하게 된다. 이것이 의학이다. 그래서 의학을 'art'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렇게 불확실성이 존재하는데 진료의 결과에 환자나 보호자 사회는 완벽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이고 조금의 실수라도 귀중한 하나밖에 없는 생명에 해를 당한다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므로 의료진을 비난하고 강하게 비판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그런 완벽함을 요구받는 의사는 앞서 언급한 대로 고도의 전문가가 되도록 교육과 수련과 훈련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고하고 완전하지 않은 한 사람이며 자신의 요인 외에도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수많은 불확실성의 제한 아래 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농장에서 말발굽 소리를 들은 사람에게 왜 얼룩말일 가능성을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인간관계에서 우리의 삶은 매우 곤란한 지경에 빠질 것이다.


  이런 의학의 한계점에도 불고하고 의사들에게 완벽에 가까운 결과를 요구한다면 의사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의사들은 첫 번째 방어 진료를 하게 된다. 기존의 의학적 상식선에서 저울질하며 경험적 진단과 감별진단의 수위를 조절하던 것에서 자신이 비난받지 않는 조건으로 저울의 추를 옮겨 의사결정의 저울질을 하게 된다. 그 결과로 대다수 환자들에게는 필요하지도 않고 오히려 다소 해로울 수도 있는 검사들이 행하여질 수 있고 불필요한 의료비의 증가를 초래하게 된다. 두 번째로 숨긴다. 의료현장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과정들은 더욱 은폐되고 정보는 감추어진다. 그렇게 되면 환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많은 정보들이 기록되지 않고 추후 분석될 수 없게 되어 유사한 다른 환자를 볼 때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기록되어야 할 내용이 기록되지 않은지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 세 번째로 의사들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그 길을 중단하거나 보다 쉬운 전공으로 전환하거나 아예 그러한 전공을 택하지 않는 쪽으로 선택하게 된다. 것은 제일 마지막으로 일어나는 최종 결과일 것이다.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여러분을 위하여 해 주기를 남들에게 바라는 대로, 여러분도 그들에게 그렇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율법이며 신언서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원칙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해주길 원하는 대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라는 것이다. 내가 요구한 것은 내게로 결국 상응하는 방식으로 돌아오게 된다. 우리에게 이제는 보다 성숙된 방식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문제의 근원은 덮어 둔 채 나타난 결과에 따라 땜질식 처방하는 것은 거대한 누더기의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일 뿐이다.


 외국에서는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고 있을까? 선진국들은 의료진과 환자와 보호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매우 중시 여긴다. 이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예를 들어 보면,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서비스를 받던 중 의료로 인해 해로움을 당했다고 느끼면 이 문제로 의료진에게 직접 문제 제기를 할 수 없고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한다. 정부산하 공사에서 이에 대해 조사하고 환자의 질병의 고유의 문제가 아닌 의료과오로 인해 환자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판명되면 정부에서 보상을 하게 된다. 조사과정에서 의사의 과오가 문제시될 때는 의사협회에 이 건을 이첩하고 해당의사에 대해서는 의사협회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 사이 직접적 갈등을 피하도록 사회가 시스템을 마련하였음으로 의사들은 소신진료를 의학적으로 할 수 있어  의학이 살아 있게 되고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물론 뉴질랜드 같은 사회적 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드물다. 많은 국가들은 소송으로 최종적 다툼을 해결한다.  하지만 영국은 가급적 의료현장에 신뢰가 구축되도록 제도 설계를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에 상응하는 영국의 국가보건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NHS)는 신뢰를 바탕으로 제도를 구성하였다. 이전  '기사, 졸 악당'이란 글에서 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은 의료현장의 다툼을 법적 소송으로 해결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큰 틀에서 의학이 지닌 이런 특성들을 무시하진 않는다. 일례로  뉴욕 과학원(New York  academy of science) 산하의 의학원(Institute of Medicine:IOM, 지금은 명칭이 National Academy of Medicine으로 변경된)  권위 있는 학술 단체의 연구보고서에서 한해에 의료과오로 미국에서  10만 명 가까이 까지도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가 1999년 나왔을 때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사망원인 3-4위를 다툴정도의 규모였기에 미국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으나 이를 보고한 사람들도 의사였다. 그 보고서 제목은 "To Err Is Human: Building a Safer Health System"이었는데 이는 사람은 실수를 하는(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신은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글귀에서 따온 앞문장이었다. 의료진의 과오로 인해 사망이 이렇게 큰 규모로 발생하지만 의사 개개인을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의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고 그러한 과오가 발생하지 않도록 어떻게 시스템을 보완할까에 더 중점을 두고 대처해 나갔다. 이런 사회가 더 성숙한 사회이다.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은 부메랑으로 직간접적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근본적 대책, 시스템적 보완을 논하며 현장에 신뢰가 싹틀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성숙한 사회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참고할 자료]

1. https://www.chosun.com/national/welfare-medical/2022/12/13/UCYFRW4VKVDGZIKEE55W7DDLV4/


2. “구조적 모순 바로잡아 의료 왜곡 극복해야” - 헬스코리아뉴스 (hkn24.com)


3. 532-535 시론-이상무 (koreamed.org)


4.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52615042679287


5. https://ncv.kdca.go.kr/board.es?mid=a11707010000&bid=0032#content


6. To Err is Human: Building a Safer Health System      

Institute of Medicine (US) Committee on Quality of Health Care in America

Linda T. Kohn, Janet M. Corrigan, Molla S. Donaldson , editors.

Washington (DC): National Academies Press (US); 2000.

https://pubmed.ncbi.nlm.nih.gov/25077248/


7. [동아광장/최진석]신뢰와 인문과 선진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160716/792238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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