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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Jul 22. 2023

용서

권리의 부메랑으로 인한 을병(乙病)의 치유

 장례식을 보면 그 사람이 생전에 미친 영향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사망의 영역 안으로 간 그 사람은 어떤 권세도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음으로 그 사람을 애도하며 장례식장을 방문한다는 것은 진정성이 있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초상집이 넘쳐나도 정승이 죽으면 개미 한 마리도 없다'는 과장되지만 뼈 있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2022년 9월 19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있었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의 경우 우리나라의 윤대통령 내외,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내외,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아던 뉴질랜드 총리, 앨버니지 호주 총리 등을 포함한 200여 나라의 18명의 군주, 55명의 대통령, 25명의 수상 등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하였고  14일부터 19일간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된 여왕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한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15만여 명이 애도의 뜻을 전하였다고 하니 장엄한 세기의 장례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영국이란 나라가 차지하는 세계사적 위치와 현재의 세계적인 위상 그리고 그 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여왕의  죽음이었기에 그러하였을 것이다.  누구의 장례식이 이와 같았을까?


 그런데 이 장례식을 대하였을 때 또 다른 한 사람의 장례식이 떠올랐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 9년 전, 영국만큼 세계사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나라, 영국에 지배를 받았던 나라, 그리고 심지어 투옥되었다 훗날 그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의 2013년 12월 15일의 장례식이 말이다. 당시 장례식에는 91개국 정상과 10명의 전직 국가수반이 참석했다. 정확한 통계는 찾기 힘들었지만 조문객의 수는 수만 명이 넘었다. 그를 핍박하였던 영국은 링컨 대통령과 처칠 수상의 동상이 있는 런던 의회 광장에  만델라의 생전에 그의 동상을 세우기도 하였다. 무엇이 핍박하던 사람들로 그를 위대한 인물로 여겨지게 하였고 전 세계가 역사상 주목을 받지 않았던 한 나라의 대통령을 전 세계가 이렇게 추모하고 존경하게 만들었을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근 역사를 보면 네덜란드에 이어 영국의 자치 식민지였다가 영국연방의 자치 독립국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1960년에 대통령을 원수로 하는 공화제로 변경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탄생하였고 그 이듬해에 영국연방을 탈퇴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백인들이 권력을 소유하는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1993년 4월 아프리카민족회의가 62.5%를 획득 제1당이 되면서 정권을 얻게 되고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면서 아프리카인들이 진정으로 통치하는 국가를 이루게 되었다.  이 당시 그동안 갖은 인종차별과 흑인들에게 어려움을 주었던 백인들은 흑인들의 보복을 당할 것을 우려하였으나 만델라는 과거사에 대해서 그 유명한 ‘잊지 않지만, 용서하겠다(forgive without forgetting)’는 말을 하였다. 만약 만델라가 용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추측건대 물질적, 지적, 인적 자원이 남아프리카에서 빠른 시간 내에 큰 규모로 소실되었을 것이고 그 영향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손실을 입지 않게 된 것을 떠나서 그의 화해의 정신은 이 시대를 사는 인류에 큰 귀감이 되고 정신적 자산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미국의 남북전쟁 때 북군의 그랜트 장군이 패배한 남군의 리장군에 대해서 한 일과 같은 것이며 그랜트 장군이 아무 조건 없이 리장군의 항복을 받아들임으로, 아무런 배상의 책임도 지우지 않았지만 미합중국의 하나라는 더 큰 유산을 물려받게 하였다.

 

 마태복음 6:14-15 왜냐하면 여러분이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한다면, 여러분의 하늘의 아버지도 여러분을 용서하실 것이지만, 여러분이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아버지도 여러분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한 하나의 크나 큰 사회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을(乙)의 병()'이다. 과거 의사들은 진료 현장에서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었다. 환자나 보호자들은 질병의 약함을 갖고 있는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의사들은 갑의 위치에서 심지어 젊은 의사가 나이 든 환자분에게 반말을 하며 강압적으로 대하기도 하였고 환자나 보호자는 의사가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상의할 대상이 아니라 통보해 줄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과거 선생님들 또한 교육현장에서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었다. 선생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선생님 말씀은 절대적인 것이었고 학부모들은 그런 선생님 앞에 죄인처럼 송구스러워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어떤 불이익이라도 자신의 자녀가 당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말이다. 물론 훌륭하신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컸었기에 그리하시기도 을 것이다. 군대에서 상급자들 역시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상관의 명령에는 절대복종이 요구되었고 어떤 자신을 위한 변명이나 비호의 말도 정당화될 수 없었다. 그래서 맹장염도 꾀병으로 여겨 사망에 이른 시절도 있었다. 가정에서도 아버지의 권위는 막강하였다. 삼종지도(三從之道)와 같은 유교적 사상의 비호아래 부권이 강조되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없는 화병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에겐 있었다.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어 억압된 인권이 강조되고 민초들의 목소리가 영향력을 얻고 탈권위주의 흐름이 거세게 흐르게 되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을들은 여기저기서 그 울분들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병원에서는 응급실에서 빨리 환자를 봐주지 않는다고 의료인들에게 폭행을 가하였다. 지금은 법적으로 그리하지 못하는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동안, 상당기간 우리 사회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 '방조'하였다. 왜냐면 을의 울분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소아과에서 의사 선생님의 불친절은 곧장 엄마들의 인터넷 카페에 비난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올라갔다. 그래서 의사 선생 한 사람쯤은 매장시켜버리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런 일들은 상당히 진행되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은 인권문제로 아이들을 더 이상 체벌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선생님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도 사회는 선생님들의 편에 서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상당 기간을 말이다. 그동안 울분이 많이 쌓였던 까닭에 말이다. 군대에서는 훈련을 하지 않는 것이 훌륭한 지휘관이란 소리가 나올 지경이 되었다. 훈련하다 사병이 다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지휘관 몫이 되어버리고 그 모든 비난의 화살은 총알보다 더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사히 의무 복무기간을 잘 지내다가 사회로 복귀시킨다면 잘하는 지휘관이 아닌가? 아버지의 서열도 키우는 개 다음으로 밀려난 사회가 된지 오래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여기저기 둑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 자리에 서 주어야 할 사람들이 점차 그 자리를 떠나고 있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문제가 될 것은 온갖 핑계를 대고 한 켠으로 미루어버리고 있다. 그 모든 피해는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직접적 형태든 간접적 형태든 그대로 을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지금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을병()'이다. 여기에 더하여 을의 울분을 이용하여 권력을 소유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갑이 을에게 하였던 해악이나 을의 과도한 반격으로 인한 손상보다도 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 우리에겐 만델라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고, 자신을 찌른 자를 용서해주고 계셨던 주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용서하지 못한다면 결국엔 혼자 남게 될 것이다.


[참고자료]

엘리자베스 2세의 죽음과 국가 장례식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List of guests at the state funeral of Elizabeth II - Wikipedia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장례식 엄수(종합) | 연합뉴스 (yna.co.kr)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고향서 장례식 엄수|동아일보 (donga.com)

List of dignitaries at the memorial service of Nelson Mandela - Wikipedia

[넬슨 만델라 1918-2013]“잊지는 않지만 용서한다” 백인들 끌어안은 ‘화합의 정치가’ - 경향신문 (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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