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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Jul 24. 2023

용서(2)

한(恨)의 유전자

 우리 민족이 지닌 주된 정서적 특징이 한(恨)인지 흥(興)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흥이 많다가 역사적 과정상 한이 지배적이었다가 다시 흥의 속성으로 돌아섰는지 사회학적으로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한이 서려있다'는 말은 우리가 흔히 쓰거나 듣는 말이었다. 어느 정도 우리 안에  한(恨)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물론 우리 민족에게만 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인들에게도 한이 서려 있다. 1800년대 중반의 대기근 동안 굶어 죽은 사람만 백만 명이라고 하는데 당시 영국의 지주들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 아일랜드의 눈물로 불리는 이 고난은 오늘날 까지도 그들에겐 잊지 못할 역사가 되었다.


 억눌렸던 을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시대가 바뀌고 사회적 수준도 높아지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과거 '갑(甲) 다움'을 몰랐던 사람들처럼 우리는'을(乙) 다움'을 모르고 행동하기 시작하였다. 한의 유전자의 발현으로 인한 영향이었는지, 을의 위치에서 손해를 보았을 때 끝까지 그리고 처절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들이 사회 각처에서 일어났다. 병원에서, 학교에서, 사고현장에서 나의 한이 다 풀리도록 끝까지 극도로 행동하는 모습들이 이젠 더 이상 낯설지도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눈을 의심케 하는 뉴스를 대하게 되었다. 천안함이 침몰하였을 때 실종자 수색이 한참 이루어지고 있었을 때였다. 빠른 조류와 높은 수압등의 수색의 열악한 환경 가운데 해군 특수전여단 소속 한주호 준위가 그 과정에서 사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가족 협의회 대표는 "잠수 요원이 선체 내부에 진입할 경우 희생이 발생할 위험이 커 해군 당국에 수색작업을 중단해 달라고 통보했다"라고 하면서 실종자 가족들이 의견을 같이 하여 “더 이상 아픈 희생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우리 안에 내려오던 한의 유전자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은 뼈를 깎이는 듯 사무쳤겠지만 이로 인한 무고한 또 다른 희생이 나와서는 안 되겠다는, 한두 사람도 아닌 가족들 모든 이의 생각이 일치한 선언이라니! '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 역할을 해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준 너무나도 고귀한 모습이었다. 나의 눈물은 마지막 한 방울이라도 철저히 보상받아야 한다는 악다구니의 을의 모습이 아닌, 그렇게 함으로써 갑의 해악과 같거나 심지어 더한 해악을 끼치는 것이 아닌, 숭고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행동을 보인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 경애의 마음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0년 4월 3일의 일이었다.


 마태복음 22:39-40 ‘너는 너의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는 둘째 계명도 이것에 못지않습니다. 온 율법과 신언서가 이 두 계명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용서하기를 배워야 할 때이다. 용서하라고 누구도 요구할 수 없다. 그 시점 그 상황에 그가 받은 고통과 상처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 누구도 을의 위치에서 당한 상처를 다 이해해 주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용서하고 안 하고는 고스란히 그의 몫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하고 서로 사랑하고 평온한 사회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제 용서하기를 배워야 하며 갑은 '갑다움'을 을은 '을다움'을 배워야 할 때이다. 우리 자신이 무한하지 않은 수많은 제한점을 지닌 약한 사람들임을 잊지 말자.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38390.html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03/2010040300771.html

https://www.ytn.co.kr/_ln/0103_201004032203516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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