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예과 2학년 2학기로 기억된다. 조직학 시간이었다.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를 육안에 보이는 수준에 대한 연구는 해부학이고, 현미경적 수준에서 탐구하는 것은 조직학이다. 조직학에서는 물리적 구조뿐 아니라 생리학적 기능도 동시에 공부하게 되는데 우리 몸의 구조를 들여다볼수록 신기하였다. 우리 안구의 구조를 보면 참으로 놀라운데 안구에 상하수도 시설이 있다면 믿겠는가?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짬을 내어 폼페이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지금 같으면 차를 빌려 구글 맵을 네비 삼아 우리끼리 다녀 놀 수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익숙지 않은, 더구나 영어가 통할지도 모르는 나라여서 비용이 들더라도 가이드 투어를 하기로 하였다. 여럿이 간 것이므로 각 사람이 지불할 부담은 그다지 크진 않았다. 가이드는 성악을 공부하러 이탈리아에 왔다가 가이드 업을 하고 있는 분이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이런 분들이 꽤 많아 어떤 분은 음악을 공부하러 왔다가 셰프가 되어 한국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분이 운전하는 밴츠 승용차를 타고 갔는데, 사실 처음 타보는 벤츠였다. 뒷좌석에 유리창을 가리는 가림막을 올려 햇빛을 차단하는 장치가 있어서 당시엔 그것이 참 신기하였다. 지금 웬만한 국산차엔 옵션으로 달 수 있는 사양이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장치는 국산차에서는 볼 수없었을 때였다.
오가며 해박한 지식으로 낮은 지대는 습기로 인해 전염병 등에 취약해서 이탈리아에는 산지에 도시가 세워졌다든지, 도로는 돌을 박아 만들어서 로마 제국 때 닦아놓은 길을 아직까지 쓰고 있다는 등 많은 이탈리아 관련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금세 폼페이에 도착하였다. 폼페이는 서기 79년 8월에 베수비오 산의 화산 폭발로 인해 발생한 대량의 화산재와 유독 가스로 순식간에 멸망하였고, 온 도시가 화산재로 덮여버려서 1860년대 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되기까지 그 모습이 그대로 온전히 보존된 곳이라고 한다. 아직까지도 완전히 발굴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니, 매우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발굴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노력에 경탄을 하게 된다. 가이드의 말을 들으면서 가다 보니 너무나도 생생하게 유적지의 한 곳 한 곳에 인상을 받게 되었다. 마차들이 지나다녀 양쪽으로 움푹 파인 도로의 모습, 말에 물을 먹이는 곳에 마부들이 손으로 짚어 반질반질하게 된 돌들, 당시의 수세식 화장실과 같은 곳을 보면서 로마제국의 문명의 발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큰 저수조와 납으로 만든 수도관이 연결된 상수도 시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쯤 되니 이 도시가 한순간에 화산재에 묻혀 멸망하였다는 것이 우리 문명시대에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일이겠다는 현실적 위기감이 들었다.
위 손으로 그린 그림을 보면, 섬모체에 우리 눈의 렌즈 즉 수정체를 붙들어주는 튀어 난 부위를 섬모체 돌기라고 하는데상수도인 셈인 이곳에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와 홍채를 감싸고 흘러 각막과 섬모체 연접 부위의 슐렘관으로 유입되어 흘러 나간다. 그곳은 하수도인 셈이다. 조직학 공부를 통해 우리 안구에상하수도 시설이 있다는 것과 이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 안압이 올라가서 녹내장이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청각기 중 내이에는 달팽이관으로도 불리는 와우관이 있는데 소리를 감지하는 중요 핵심 기관이다. 크기는 달팽이 모양의 원추를 폈을 때 3Cm 정도지만, 감긴 생태에서는 1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기관이다. 이 작은 원추형 기관에 두 개의 종축으로 막이 가로질러 세 개의 방을 만들고 하나의 막 아래에는 섬모가 달린 세포들이 줄지어 나열되어 있다. 이 세포 내부는 나트륨의 농도는 낮고 포타슘의 농도는 높다. 두 막에 의해 세 부분의 공간이 생긴 곳에는 세포외액의 액체로 채워져 있는데 이곳에는 나트륨의 농도가 높고 포타슘의 농도는 낮다. 이 관을 펴 보면 긴 피아노 건반 같은 구조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음이 전달되면 이 막이 공조하는 부분이 각각 달라서, 고음은 저부에 저음은 첨부에서 공명이 일어나게 되고, 진동이 전달된 막은 아래 있는 섬모 세포에 물리적으로 자극을 전달하며, 이러한 자극은 섬모 세포 내와 외부의 전해질 이동을 유발해 전기적인 자극으로 바뀌게 되어 청각 신경을 따라 뇌의 측두엽으로 전달되게 된다. 내측 섬모 세포만 3000여 개가 되고 외측에는 12,000개의 섬모 세포가 있다고 한다. 이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기관이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을 감상하고 미세한 차이를 분별하며 음의 고저만이 아니라 크기, 음색 그리고 말하는 사람의 뉘앙스까지도 뇌의 판단력을 힘입어 알아내게 된다니.....
이 내용들을 공부하면서 한 조가 되었던 동료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를 만들었다고 말해라. 그것이 아메바로부터 시작하여 숱한 돌연변이를 통해 우연과 우연을 거듭하여 합목적적으로 자연 발생학적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오묘한 기관들로 구성된 오늘의 내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보다 더 지적 안식이 있겠다'라고 말이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한 특성들은 만드신 것을 통하여 분명히 보게 되고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변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로마서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