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강보험의사다. 아니 ~였다.
지난 2월 말로 나도 드디어 '은퇴'하게 되었다. 더 이상 매일 출근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고, 원치 않은 회의에 들어갈 일도 없게 되었고, 주말부부일 필요도 없어졌으며, 전철을 환승해 가며 피곤한 몸을 끌고 퇴근길을 걸어야 할 일도 멈추게 되었다.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는 '이제 무엇을 하실 예정이에요?'였다.
동료들은, 주변 지인들은 내게 그것을 제일 궁금해하였다. 내가 무엇을 하고 지낼지 말이다. 다행히 내겐 하고 싶은 일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글을 계속 쓰는 것, 그동안 내가 몸담아 왔던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일반인과 소통하는 것, 그리고 기회가 되는 대로 짧은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 것, 그리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경제 관련 공부를 해보는 것 등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이 남아 있었다.
30여 평 아파트도 좁은 지, 내게 서재를 내줄 공간이 없어 가족 드레스 룸 한편에 책상과 컴퓨터를 재배치하고 작지만 내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의외로 안온한 느낌을 준다. 옷장과 옷들이 둘러싸 공간을 감싸주니 집중하기에 딱 알맞은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날이 더워지며 가끔 코끝이 찌릿한 공기가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은퇴하기 전 마지막 나의 직업은 건강보험의사였다. 나의 자녀들도 한동안 아버지는 뭐 해? 하고 궁금해하였지만 알아듣게 설명하기 힘들었다. 내가 의사인 줄 아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도 요새 어떤 병원에 근무하냐 물을 때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줄여서 심평원에 다닌다고 하면, 거기서 뭐 하냐 묻곤 하는데 그들에게 속 시원하게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설명해 주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호흡기 내과를 전공하였는데 심평원에 들어가기 전, 한참 활발히 환자를 돌 볼 때였다. 어느 날 병원 원무과에서 건강보험청구를 담당하는 간호사 직원 한 분이 내게 와서 내가 처방한 유로카이네이즈(urokinase)란 주사약제가 보험청구에서 지불이 거부되었다고 하며 이의 신청을 하겠냐고 상의하러 왔다. 세균성 폐렴이 걸린 환자에게서 그 질환의 진행과정 중 늑막염이 발생하였는데 영상촬영상 늑막강 안에 수많은 격막들이 형성되어 그대로 두면 그중 어딘가에 농흉으로 발전되며 환자는 패혈증을 빠져 생명이 위험하게 될 수도 있었다. 당시 이런 경우에 이전에는 항생제 치료를 하면서, 흉곽일부를 작게 절개하여 외과적 도구를 사용하여 늑막강 안의 급속도로 생겨난 격벽들을 다 제거하고 굵은 흉관을 삽입하여 배액 하는 시술을 하였었는데, 그리하면 침습적이기도 하고 환자가 통증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했다. 혈전을 녹이는 유로카이네이즈란 약제가 개발되면서 이런 경우에도 사용하게 되면 형성된 섬유 격벽들이 녹아내리고 늑막강에 작은 카테터 하나만 꼽아 배액처치 하여도 치료가 잘되어 당시 늑막질환의 교과서라 불리는 책에서도 권하는 시술이었다. 하여 나는 최신 의학 지견을 따라 열심히 치료하였고 환자도 다른 후유증 없이 잘 치료되어 퇴원하였는데 느닷없이 보험청구에 대한 지불거부라니.
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할 수 없으니 결론부터 말하면 식약처 허가 사항에는 혈전을 녹이는 용도로만 허가받았지 늑막의 섬유소를 녹이는 용도로는 허가받지 않았다는 것이 그 사유였다. 나는 "그럼 의과대학에서 의학 교과서를 가르치지 말고 보험 규정을 교육하라고 그래!"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 이상한 기관에서 심사위원을 모집한다고 지인께서 알려주셔서 몇 가지 내게 전환이 필요했던 사유가 있었던 터라 환자를 보던 일을 내려놓고 지원하게 되었다. 이후 서태평양 WHO 사무처장을 역임하신 S원장님께서 면접위원 중 한 분이셨다. 기억에 남는 질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왜 지원했는가이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약을 좋아하는가? 특히 많은 양의 약을 말이다.
나는 돌려 말하지 않는 편이라 솔직하게 답변드렸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의사들은 진료하면서 나름대로 의학적 잣대를 갖고 있는데 심평원이란 곳도 잣대가 있는 것 같더라. 그런데 이 두 잣대가 서로 다른 것 같아 이를 일치시키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다'라고 말씀드렸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잠시 당황스러웠으나 이것은 정답이 있는 질문은 아니기에 마음 편히 생각 나는 대로 답변을 드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의학인 한의학에 오랜 시절 노출되었었고 한약자체가 환약이든 탕약형태든 다량의 약을 권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답변드렸다. 나중에 S원장님은 나를 보고 타고난 심평원사람이라고 말하곤 하셨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지만 아마도 추측건대 내가 환자를 볼 때 내가 처방한 약들에 대한 정보를 보신 것은 아닌가 싶다.
조교수 생활을 뒤로하고 심평원에 들어가기 전 일 년 동안 개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간호사 한분이 내게 와서 "원장님 환자들이 원장님이 처방해 주신 약을 타러 약국에 가면 약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것을 먹고 병이 나을까 한다고 해서 불안해해요."라고 말해주었다. 급성상기도감염으로 환자들이 오면 나의 진찰 소견으로 세균성 감염이 의심되지 않으면 호흡기 내과 분과 전문의였던 내가 처방해 줄 수 있는 약의 가짓수는 많아야 두세 알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더 처방해 줄 약이 없었다. 훗날 나는 다른 개원가의 일부 의사 선생님들이 처방한 약의 가짓수가 네다섯 개를 훌쩍 넘고 거기에 일부 어떤 의사들은 소염제만 두세 가지를 병용해서 처방하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었다. 어떻게 이렇게 처방할 수 있는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방이었고 이것이 S원장님의 나에 대한 말씀의 근거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의료관리학교수이셨던 S원장님께서는 큰 틀에서는 건강보험청구된 건들에 대해서 선택과 집중의 체계적인 심사 시스템을 세우는 일과 세부 항목으로는 높은 척추수술률과 상기도감염에서 높은 항생제사용률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계셔서 이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원하셨다. 또한 당시 신의료기술 행위의 건강보험 진입 단계에서의 불협화음이 문제시되고 있었으며 국가적 체계를 세우고 싶어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