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원리, 생리학 III, 그림 Gemini, Chat GPT
우리는 흔히 암에 걸리면 대부분 심한 통증을 호소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하지만 의외로 암이 말기까지 진행되었지만 큰 통증의 호소 없이 지내시는 분들도 주변에서 뵙곤 한다. 국립암센터 원장을 역임하셨고 폐암분야의 명의로 잘 알려지신 이진수 박사님께서는 "암의 초기에는 통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임파절에 전이가 되고 폐나 뇌, 간으로 전이된 이후에도 그 크기가 커져서 주변에 분포된 통각 신경을 자극하지 않으면 통증이 전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뼈에 전이된 경우에도 암이 뼈를 갉아먹어 미세 골절이 생기면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의료시설에의 접근이 어려웠을 시절 대부분 환자들이 어딘가 통증이 생겨야 병원에 가서 암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에는 암으로 인한 통증, 곧 아프다는 증상과 암진단 사이에 개념상 뚜렷한 구분 없이 혼용되어 왔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근자에는 외래에 의뢰된 환자들 중에는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나요?' 물으면 폐암 진단받고 왔다고 답한다. '폐암 때문에 어디 아프신데 있나요?' 하고 물으면 대부분의 환자들이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폐암 때문에 아픈데는 하나도 없어요. 아프지도 않은데 왜 폐암 4기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오진 아닌가요?' 이러한 점이 좀 부각되었으면 한다"라고 의료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 주셨다. 이는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폐실질, 간실질, 뇌실질 및 신장 실질 같은 곳에는 통각 수용기가 없는 것과 연관될 것이다.
실제로 저자의 숙부님 한분께서도 결장암 말기로 복막까지 암이 진행되었지만 큰 통증 없이 여생을 마치시기도 하셨다. 하지만 통계적으로는 진행된 암의 경우 대략 30-40%가량에서 중등도 이상의 통증을 호소한다고 한다. 암환자에게서 통증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통증의 원인을 잘 이해하여야 이에 잘 대처할 수 있다. 통증을 호소하는 암환자의 20-40% 정도는 신경병증성 통증(neuropathic pain)이라는 보고도 있다(Bennett, 2012). 단순한 통각수용성 통증(noticeptive pain)이 아닐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암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의 양상을 잘 관찰하여야 적절한 통증 대책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통증에는 진통제'란 공식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암환자에서 발행할 수 있는 통증의 양상과 그 대책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통증의 종류에 대해 몇 가지 용어들이 나와 어려울 수 있으니 이에 대해 좀 알아보고 가도록 하자. 현대의학에서는 통증의 종류를 크게 세 가지로 대별한다. 통각수용성 통증(痛覺受容性 通症: nociceptive pain), 신경병증성통증(神經病症性 通症: neuropathic pain), 통각가소성 통증(痛覺可塑性: nociplastic pain)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들의 혼합된 통증 형태가 이 세 가지에 더하여 제시된다.
통각수용성 통증(nociceptive pain)
우리 몸의 '경보 시스템'이 가장 정상적이고 정직하게 작동할 때 느끼는 '날것의 통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경계 자체에 병변이 있거나(neuropathic), 통증 조절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nociplastic) 상태가 아니라,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생리적 반응 그 자체로 인한 통증을 말한다.
이 통증은 몸통증(체성 통증: somatic pain)과 내장통증(장기통증: visceral pain)으로 세분된다. 전자는 피부, 관절, 근육, 결체조직 등과 같은 곳에서 유발되는 통증이고 후자는 위장관, 담도, 배뇨기관, 생식기계에서 유발되는 통증이다. 몸통증의 예를 들면 피부 모낭염, 관절염, 화상으로 인한 통증을 생각하면 되고 내장통증은 담석증, 위궤양, 자궁내막증과 같은 내부 장기에서 오는 통증을 생각하면 된다.
몸 통증은 대게 날카롭고 통증의 위치가 비교적 분명하고 욱신거리는 통증인 반면에 내장통증은 통증이 퍼져서 국소적이지 않고 장기가 부어오르거나 염증이 있어 지속적으로 둔탁하며 쥐어짜듯 아프거나 장관이 폐쇄되어 강하게 수축할 때 나타나는 파도와 같은 통증으로 아팠다 풀렸다를 반복하며 장기가 뒤틀리듯 아픈 산통(疝痛) 유발하기도 한다. 이런 통증은 평소 느껴 보지 않았던 통증이기 때문에 무언가 오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통각수용성 통증은 “몸이 위험을 감지하고 보내는 정상적인 경고 신호”다.
신경병증성통증(neuropathic pain)
신경병증성 통증은 말초신경계나 중추신경계가 손상을 입거나 기능의 이상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통각 전달 신경의 이온 채널의 발현 양상이나 양이 바뀌어 전기적 재설계가 일어나게 되어 발생한다. 당뇨병으로 인해 염증, 대사 이상, 미세혈관 허혈 등으로 인한 말초신경 손상이 온다거나 대상 포진의 감염은 치료되었으나 신경의 병적 변화로 인한 장기간 지속되는 통증, 뇌졸증후 후유증으로 느끼는 통증과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며 항암제 치료의 부작용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찌릿찌릿하거나 전기 쇼크가 오는 듯한 통증이거나 타는 듯한 느낌의 통증을 느끼기도 하며 앞서 이야기했던 통각과민이나 이질통을 동반하기도 한다.
통각가소성 통증(nociplastic pain)
통증 조절 시스템의 기능 변화로 실제 조직 손상이나 체성감각계의 질병 또는 병변의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통증 감각(nociception)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통증으로 신경의 변성이 없음에도 불고하고 느끼는 통증으로 침해성 통증과 유사한 둔하고 깊은 통증이 기본이지만, 타는 듯하거나 쏘는 듯한 신경병성 통증의 특성도 나타나기도 한다. 통증의 위치와 강도가 자주 바뀌며, 신체 활동, 환경적 요인, 정서적 스트레스에 의해 악화되기도 하며 통증 부위나 그 주변에 이질통 등 통증 과민 증상이 관찰된다.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이 핵심 기전으로 여겨지는데 섬유근육통,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만성 일차성 두통,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제 암환자의 통증에 대해 살펴보자. 암이 발생하기 전, 다른 질환으로 인한 통증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별도로 다루지 않겠다. 암환자에서 통증은 크게 다음과 같은 경로로 발생한다. 첫째, 암이 자라면서 주변 조직을 침해하거나 전이되는 과정에서 염증 반응을 유발하고, 그 결과 조직 손상에 따른 통각수용성 통증이 발생한다. 둘째, 암조직이 신경을 직접 침윤하거나, 수술·방사선 치료·항암치료와 같은 암 치료 과정에서 신경조직이 손상되거나 기능적 변화를 겪으면서 신경병증성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수술이나 항암으로 암세포(TME의 원인)를 제거했는데도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는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과 와인드업(wind-up) 현상, 즉 통각가소성 통증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는 종양미세환경에서 시작된 강력하고 반복적인 화학적 자극이 척수와 뇌의 신경 회로를 아예 '통증에 최적화된 구조'로 신경계를 리모델링해 버렸기 때문이다.
최근에 종양미세환경(tumor micro-environment:TME)과 통증의 관계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TME 내의 화학적 변화 중 저산소증과 산성 환경(low pH)과 암세포, 면역세포, 기질세포들은 ATP, 프로스타글란딘, 사이토카인, 신경성장인자 등 다양한 화학물질을 말초 신경 말단에 존재하는 특정 통각 수용체와 결합하여 신경을 자극하고, 그 결과 통각과민 상태를 유발한다. 이 과정에서 통증 역치(pain threshold)가 낮아지면, 평소라면 견딜 수 있었을 약한 자극조차 극심한 통증으로 인식될 수 있다. 나아가 통증이 아닌 자극, 예를 들어 옷깃이 스치는 정도의 접촉조차 통증으로 느끼는 이질통(allodynia)이 발생하기도 한다.
종양 미세환경에서 시작된 통증 신호는 척수(spinal cord)로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신경교세포(glial cells)가 활성화되고, 활성화된 교세포들은 다시 염증 매개물질을 분비하여 척수 신경세포를 과흥분 상태로 만든다. 이러한 변화는 중추신경감작을 초래하며, 반복적인 자극에 의해 척수 신경세포의 반응성이 점점 증폭되는 와인드업(wind-up) 현상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흥분성 아미노산 수용체인 NMDA 수용체가 활성화되어 통증 신호는 뇌로 더욱 강력하게 전달된다.
췌장암은 이러한 종양 미세환경과 암성 통증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전형적인 예에 해당한다. 췌장암은 염증 반응과 신경 침윤이 특히 강한 종양으로, 암세포가 신경외막(epineurium)을 둘러싸거나 침범하며 신경을 따라 전이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로 인해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러 연구에서 췌장암은 신경 친화적 종양 미세환경을 갖는 대표적인 암종 중 하나로 보고되고 있다. 종양 미세환경 내에서 신경 섬유 밀도가 증가하고, 종양이 신경 성장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구조적 조건이 형성되면서 강한 통증을 동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이는 췌장암 통증이 단순한 염증성 통증을 넘어, 강한 신경병증성 통증 요소를 지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종양 미세환경이 항상 통증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통증을 억제하는 요소 역시 함께 존재하며, 그 균형이 개별 환자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임상에서 관찰되는 통증 양상은 환자마다 매우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췌장암 통증은 위치가 불분명하고, 진통제에 대한 반응이 예측하기 어려우며, 정서적·인지적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성은 췌장암 통증이 통각 가소성(plasticity)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최근 암 치료에서 종양 미세환경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 강조되고 있는 것처럼, 암성 통증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암성통증에 대한 접근
암을 진료하는 의료진은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기 전에 의료진이 먼저 묻고, 통증이 나타나면 즉시 치료를 시작하도록 교육받는다. 통증을 방치하면 척수와 뇌의 신경 회로가 변하는 '중추 감작(와인드업)' 현상이 발생하여, 나중에 더 강한 약을 써도 통증이 잘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증 발생의 기전이 다양하므로 통증의 성격에 맞춘 맞춤형 처방이 필요하며 다각적 접근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암성 통증은 염증성, 신경성, 가소성 통증이 섞여 있다. 따라서 한 가지 약만 쓰지 않고 서로 다른 기전의 약물의 조합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진통제 사다리 개념이 제시되는데 가벼운 통증에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NSAIDs)를, 중등도 이상의 통증에는 마약성 진통제를 단계적으로 사용하도록 권고한다. 또한 보조 진통제 역할을 하는 약제들이 필요할 수 있는데 신경 침윤이나 신경 손상으로 인한 통증에는 항경련제나 항우울제 같은 보조제를 함께 사용한다. 이는 신경의 과도한 흥분(NMDA 수용체 활성 등)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적이다.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로 조절이 되지 않고 의료진이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하리라 생각할 경우, 처음 필요로 하는 용량을 알기 위한 투약단계가 지나면 진통제의 용량이 일정한 혈중 농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통증이 심해진 다음에 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통증이 나타나지 않도록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약을 복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서방정(지속성)을 활용하여 하루 종일 일정한 농도를 유지하여 배경 통증(background pain)에 대처하고 속효성(돌발성) 약제는 갑자기 치솟는 '돌발성 통증'이 발생할 때 즉시 복용할 수 있도록 대비한다.
통증 치료도 원인 중심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즉 종양미세환경과 암에 대한 국소 치료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순히 뇌에서 통증을 못 느끼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통증의 발원지인 종양미세환경을 다룰 수 있는 치료적 전략을 세우도록 한다. 암 자체를 다스릴 방사선 치료나 항암 치료와 췌장암처럼 특정 신경을 따라 통증이 극심한 경우, 신경 절제나 차단술을 통해 통증 신호가 척수로 전달되는 경로를 물리적으로 차단을 고려하기도 한다.
통증,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다루어야 할 신호’
통증에 대한 불안, 우울, 수면 장애는 통증 역치를 낮추어 같은 자극도 더 극심하게 느끼게 한다. 현대 의학은 통증을 신체적 고통을 넘어 심리적·사회적·영적 고통이 결합된 '전인적 통증(total pain)'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약물 치료와 병행하여, 신경 감작을 완화하는 음악 치료, 마사지 요법, 아로마 요법, 천연 진통 물질 분비를 돕는 요가나 산책 등의 신체 활동, 그리고 명상과 같은 보조 요법을 통합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현대 암성 통증 치료의 핵심 원칙이다.
참고문헌: 1. Bennett MI. Pain 2012;153(2):359-365
2. Management of cancer pain in adult patients: ESMO Clinical Practice Guidelines† Annals of Oncology 29 (Supplement 4): iv166–iv191, 2018
3. Adult Cancer Pain, Version 2.2025. J Natl Compr Canc Netw 2025;23(7):e250032
감사의 글: 글을 읽으시고 좋은 코멘트를 주신 전 국립암센터 이진수원장님과 전의학한림원 임태환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