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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Dec 09. 2020

인간 존재의 본성

선과 악의 굴레

 청소년 시절에 아버님의 서재에 꽂혀 있던 책들을 읽곤 하였다. 교사생활을 하시고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신 아버님의 전공은 국문학이었으니, 젊은 시절 문학청년이셨으리라. 그런 이유 때문인지 우리 가족이 마루방이라고 불렀던 방의 사면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책장에는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청소년기부터 많은 문학 서적들을 읽게 되었고 그중에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과 같은 책도 있었다. 당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책이 이 책이었는데 지고지순(至高至順)한 사랑을 추구한 엘리사라는 여인과 제롬이란 청년 그리고 밝고 발랄한 엘리사의 여동생 줄리에트가 어우러 소설로 기억에 남아 있다. 어머니 뤼실 뷔콜랭의 부도덕한 행실의 영향으로 엘리사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추구하는데, 이것이 천국에 이르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여긴 것 같다.


 학창 시절부터 우리는 사람이 출생 시부터 악하냐 선하냐라는 사람의 존재의 본성을 두고 양대 이론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대표적인 동양 철학자는 맹자(孟子)이고, 이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한 철학자 순자(筍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다. 철학적 개념뿐 아니라 선과 악을 따지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다. 정치적으로는 한가지 사실을 놓고도 좌와 우가 대립하여 다르게 해석하며 자신의 관점이 옳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은 옳고 선한 것이고 내 생각과 다른 당신의 생각은 틀린 것이고 심지어 악하다. 이런 기조가 대립하는 형태를 띠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런 구도로 가져가야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땅에 보기 즐겁고 먹기 좋은 온갖 나무를 자라게 하셨고, 동산 한가운데 있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의 지식나무도 자라게 하셨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령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 열매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 열매 먹어서는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세기 2:9, 13)

 

 그런데 이 선과 악이 다른 두 근원이 아니라 하나의 근원으로 인류 안에 흘러들어 온 것을 볼 수 있다. 선과 악이 하나의 나무에서 기원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식과 관련이 있다.

 

 어느 날 바리새인들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께 왔다. 그리고 당시 로마의 황제 가이사(카이사르)에게 인두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고 물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과거 일제 치하에 일본 천황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라는 질문이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라고 한다면 유대 민족에게는 반민족적이란 판단을 받게 될 것이었고, 내지 말라고 한다면 당시 로마 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반역죄가 될 것이었다. 내라고 말해야하는가 아니면 내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신 것 같다. 어떤 대답을 해도 공격을 받으시게 될 상황이었다.


 엘리사가 고민한 명제인 어머니처럼 부도덕한 육체적인 사랑이냐 지고지순한 사랑이냐, 오늘날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명제인 분배냐 성장이냐, 그리고 2000년 전 예수께서 당면한 두 가지 선택사항 로마에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냐 아니냐, 이 모든 것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사항인 것 같지만, 사실은 둘 다 한 근원에서 나왔다. 선과 악의 지식나무로부터 나온 것이다.

 

 선은 악의 다른 쪽 극단이요, 악은 선의 또 다른 쪽  극단이며 이 두 가지의 근원이 하나의 지식나무로부터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던,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던 그 선과 악의 지식 나무와 대조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생명나무이다.


 생명나무를 이해하려면 온 성경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간단히만 언급하자. 생명나무는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먹고 누릴 수 있도록 오신 것을 의미한다. 멀리 하늘에만 계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다가가서 취하고 누리고 체험할 수 있는, 그러므로 하나님과 소통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심지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길로써 생명나무로 제시된 하나님인 것이다. 사람이 타락하게 된 것은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 이 생명나무인 하나님을 저버리고,  선과 악의  지식나무를 취한 결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것이 하나님을 저버린 것이다. 인류의 타락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이 타락의 기원이다.


 다시 말하면 선과 악의 지식나무와 대조를 이루는 것은 생명나무이며,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고, 이 나무를 취한다면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에 따른 표현인 사랑, 빛, 의로움, 인내, 자애와 같은 표현을 갖게 될 것이다.


 옳으냐 그르냐, 선이냐 악이냐를 따지는 것은 결국 우릴 사망으로 이끌지만 생명나무인 하나님께 나가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 인내, 배려, 의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악한 의도를 아시고. "위선적인 사람들이여. 왜 나를 유혹하십니까? 인두세로 낼 돈을 나에게 보여 주십시오."라고 하시자. 그들이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형상과 새겨진 글이 누구의 것입니까?"라고 하시니. 그들이 "가이사의 것입니다."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
드리십시오."  그들이 듣고 매우 놀라며, 예수님을 떠나갔다. (마태복음 22:18-22)


 선과 악을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길이 생명이신 주 예수께는 보이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선과 악을 따지며 서로 다투는 우리의 사랑스러운 형제자매들을 볼 때 마음이 참으로 불편하기만 하다. 사랑과 인애와 배려와 견딤과 의로움이 피어나는 우리나라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글을 쓴 후:  사상과 어떤 주의를 붙잡고  주장하며 자신의 사상과 이념과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정죄한다면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념을 붙잡는 것보다 생명을 존중하고 상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에서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선과 악을 따지는 것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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