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 달리 그는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밤이든 낮이든 온통 캄캄할 뿐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성년이 되도록 두 눈으로 무언가를 볼 수 없었다. 그에게는 온 우주가 다만 암흑 가운데 있을 뿐이었다.
어떤 일을 배워 직업을 가질 수 없었기에, 살기 위해서 길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안내해 주지 않으면 도움을 구하러 가기도 힘들었다. 혼자 걷다 여기저기 부딪히기도 하고 발을 헛디뎌 넘어져 다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비록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 수밖에 없었지만,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다 들을 수는 있었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머릿속에서 그려 보고 세상의 이치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움을 얻기 위해 길가에 서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도움을 얻을 때란 생각이 들어 소리 내어 외치려는 순간 어떤 사람이 자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 들렸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자기를 지칭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먼 것이 부모의 죄 때문인지를 자신의 죄 때문이지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묻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왜 자신이 보지 못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는지 궁금하곤 하였지만 스스로는 답을 얻을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이나 부모의 죄를 운운하는 것이 불쾌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질문을 받은 사람이 대답하였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기 위한 것입니다." 그분의 목소리는 맑고 온화하였다. 기이한 것은 그분의 음성을 듣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고, 무언가 속에서 움직이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분이 이어서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였지만 너무나도 분명하고 강한 느낌을 주는 말이었다. 세상의 빛이라니? 그토록 보고 싶었고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빛에 대하여, 자신이 세상에 있는 동안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을 하신 분의 목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그분이 앞에 다가서는 것이 느껴졌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분은 진흙 같은 무언가로 자신의 두 눈에 바르시고는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실로암 못의 물 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그는 두 손으로 눈에 묻은 진흙을 씻어 내려 얼굴을 씻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보게 된 것이었다.
'보인다. 모든 것이 보인다. 아! 이것이 보는 것이구나.' 너무나도 놀라웠다. 평생 딱 한번 보기만이라도 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정신 차릴 경황도 없이 순식간에 이 모든 일 발생하였다. 시력을 얻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기묘한 일은 마음이 너무나도 평온한 것이었다. 들뜨거나 그동안 보지 못했는데 보게 되어 감격의 뜨거운 눈물이 흐르거나 흥분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나도 자신은 평강 가운데 있게 되었다. 그의 평생 너무나도 큰 짐, 자신이나 부모나 이 세상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한 그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은 하나님에게서 온 분임에 틀림없었다. 사람으로서 해결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이 문제를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분을 뵙고 싶었다.
이 일이 일어난 후, 여러 사람들이 그가 어떻게 보게 된 것인지 궁금해하며 묻기 시작하였고 바리새인들에게 그를 데리고 갔고 그들은 그 소경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눈뜬 이는 "그분께서 내 눈에 진흙을 발라 주셨고 내가 가서 씻으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있는 대로 말하였다. 그들은 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이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였다.
얼마 후 바리새인들이 다시 그를 불러다 놓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하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우리는 당신의 눈을 뜨게 한 그 사람이 죄인인 줄을 압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마음은 그도 이미 갖고 있었고 이렇게 보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고 있는 터였지만 바리새인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죄인이라니?
"나는 그분이 죄인인지 아니신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내가 전에 눈먼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본다는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또 물었다. 분명히 말하였는데도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들의 말을 그에게 강요하듯 하니, 눈을 뜨게 된 그는 이 모든 일이 황당하게 느껴질 뿐이어서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바리새인들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죄들 가운데 태어난 네가 우릴 가르치려느냐며 그를 쫓아내버렸다. 그에게는 이 모든 일이 참으로 이상하게 여겨졌다. 날 때부터 눈멀어 보지 못했던 자신이 분명 눈을 뜨게 되었는데 왜 바리새인들은 이 분을 죄인이라고 하는가? 하나님께서 죄인의 말을 들으신다는 말인가?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세상의 빛으로서 오신 분은 예수님(Jesus)이셨다. 눈먼 이였다 보게 된 사람이 바리새인들로부터 쫓겨난 후에 예수님께서 그를 다시 만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심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왔습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들은 눈먼 이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중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이러한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이란 말씀이십니까?"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눈먼 이라면 죄가 없을 것이지만, 여러분이 지금 '우리는 봅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여러분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요한복음 9:39-41)
누가 눈먼 이인가?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이인가 아니면 본다고 하며 심지어 예수님에 대해 죄인이라 판단하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인가? 이 일은 이천여 년 전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났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