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에 대한 예방 교육이 직장인이 들어야 할 의무사항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공인된 강사가 열정을 갖고 강의하는 것을 들어야만 했다. 그녀의 ppt에 잘 익은 복숭아 같은 사진이 클로즈업되어 올라오자 우리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말이다.
그녀의 대답은 우릴 놀라게 했는데 그것은 부모에게 맞은 어린아이의 엉덩이 사진이었다. 이 예를 시작으로 하여 그 강사는 열변을 토하며 어떤 체벌도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이며, 신체적 체벌은 절대로 행하여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담임이셨던 국어 선생님이시며, 별명이 코끼리 빤쓰이셨던 P선생님이 계셨다. 유난히 덩치가 크신 선생님을 우리끼리 애칭으로 그리 불렀다. 어느 날 청소 당번이었던 친구들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도망가고 학급 분위가 느슨해져 갈 무렵 P선생님께서 대걸레 몇 개를 가져오시더니 우리 반 모두를 집합시키시고 그 큰 덩치에 대걸레를 분해하여 나온 나무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셨는데, 그 스윙하시는 모습이 야구선수가 풀 스윙하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나고 때리시는 선생님의 얼굴에도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평소 진지하시고 인격적이셨던 그분이 때리시는 그 손길에 원망한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미친개라 불리는 사회를 가르치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너 나와"하시며 한 친구를 불러 내셔서 교단에서부터 뺨을 때리기 시작하여, 오른쪽 왼쪽 쉬지 않고 때리시자 그 친구는 뒤로 계속 밀리며 교실 끝까지 가며 맞았는데 그 친구를 포함해서 아무도 그 친구가 왜 맞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별명은 더 유명해졌다. 미친개.
어린 시절 나는 그릇된 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부친께서 삼촌과 상의를 하셨고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날 나는 때어나서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도록 맞았다. 아버님께서는 이 일로 여러 번 나를 야단치시거나 두고두고 질책하지 않으셨다. 부친께서는 감정적으로 때리시지 않으셨고 그날 무섭고 단호하게 때리셨지만 미워서 때리신다는 느낌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 내가 그릇 행하였기 때문이었고 이 일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으며 훈계로 남았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만약 어떤 부모의 체벌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의 분노에 의해 행하여져서 그 어린아이의 엉덩이가 잘 익은 복숭아처럼 보일정도록 팬 일이 발생하였기에 신체에 매를 드는 모든 행위는 행하여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극단적 폐해로 인한 미친개 같은 선생이 함부로 학생들을 비인격적으로 구타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해서 모든 교사들의 사랑과 진정으로 잘되게 하려는 훈육도 할 수 없게 된다면, 음식을 과하게 먹으면 비만이 되고 성인병이 생기고 심근경색이 올 수 있으니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과 다를 것이 있을까?
우리 사회가 제어해야 할 것이 부모나 교사들의 합당한 훈육일까? 과도한, 자신도 주체 못 하는 비인격적 구타일까? 이를 가릴 자신이 없으니 모두 금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일까?
잠언 23:13-14 아이 훈계하기를 주저하지 마라. / 매질하여도 죽지는 않는다. 그를 매질하면 / 그의 혼을 스올에서 건져 내게 된다.
(스올: 음부, 죽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분에 못 이겨 체벌을 가하는 것이다. 성경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한다.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은 자녀의 육체를 훈련시키는 것이다. 우린 자녀들의 양심을 훈련시키는 부모, 교사가 되어야 한다. 깊은 사랑과 애정 어린 관심에서 나오는 훈육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