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4일 오후 1시. 나는 천안 톨게이트를 지나 청수동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파주에서 늦은 아침 출발하여 천안까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나는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의 가치관과 나의 논리가 더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혼란의 과정을 어떻게 잘 넘겨야 할까 하는 생각.
2~3분가량 번잡한 상가를 지나자 한 창 무르익은 단풍이 거리에 가득하다.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극동아파트의 거실에서 바라보면 그대로가 한 폭의 그림이 될 듯싶다. 지금은 주변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이제야 시야에 들어오며 내가 가을 한복판에 있음을 알려준다. 계절에 대해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단풍은 가을의 막바지에 볼 수 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교차로의 신호등이다. 12가지 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색. 화려해 보이지만 투명하게 빛남으로써 가슴을 시리게 한다.
엊그제 나이를 실감하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비움’이라는 것을 몸으로 생각하게 하는 일. 젊음과 나이 듦이 부딪히는 현장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나이 때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일상에 널브러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주는 감정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쇼윈도 안의 화려한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 바로 눈앞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유리막이 아주 먼 거리를 체감하게 한다. 이미 젊은이들만의 질서와 원리가 제 원심력으로 회오리치는데 그들의 흔적 뒤에 남겨진 파편들처럼 천천히 내려앉으면 그 자리에서 고요한 평안을 얻게 될 것이다.
10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해 방치되어 있던 휴대전화기를 열어보니 친구들과의 대화방에 가을 풍경이 가득하다. 속초에서 찍어 올린 사진. 불암산에서 숲 멍[숲에서 넋 놓기를 그렇게 말한다] 중인 사진. 친구들이 각자의 생활 터전에서 가을을 만끽하는 중이다.
흔히들 가을 단풍을 일컬어 비움으로써 얻어지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늙어가는 일의 서러움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준다. 그런다고 가슴 시린 시간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낡았지만 버릴 수 없는 젊은 날의 옷을 고운 보자기에 싸서 장롱 안쪽에 밀어 넣는 일처럼 어찌할 수 없음에 가슴 바닥에 묻어둘밖에.
가을 단풍도 여름을 비우는 일이 가슴 시리고 아플까? 아니 아프다고 표현할 수는 없다. 이 감정은 서러움도 아니고 아픔도 아니다. 단풍의 색깔처럼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이 있다. 비움의 아름다움. 단풍은 비움의 아름다움인가? 왜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현상을 비움의 아름다움이라도 말할까? 나는 그 말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친구들의 사진을 보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빨간색 잎은 애초에 빨강으로 태어난 거야. 노랑은 노랑으로 태어났었고. 그러나 자신이 무슨 색깔로 물들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 왜냐하면, 아직 삶을 살지 않았거든.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야 내 안의 색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 봄과 여름 내내 햇살을 머금고 수분을 빨아들이며 제 생의 삶의 과정을 마쳐야만 비로소 자신의 색을 발현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게 되지. 그리고 때가 되면 내가 아닌 것들을 비워내야 해. 그래야 내가 남거든. 비워야만 비로소 드러나는 나의 색깔. 그래서 잘 채우고 잘 비워내야만 내가 가진 아름다움이 무언지 알 수 있어. 여름 내내 짙은 초록으로 무성했던 잎들도 비워내는 일을 게을리하면 길 위에서 버석거리는 갈잎으로 뒹굴 밖에. 자신이 무슨 색인 지도 모르고 말이야. 단풍으로 물이 든다는 말은 태어날 때 이미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본성을 발현하는 과정이 되는 거야. 삶이란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일인지도. 그것은 내가 아닌 것을 비움으로써 이루어진다네.
나는 잘살았는지. 잘살고 있는 건지. 그리고 잘 비워낼 수 있을지 되물어야만 했다. 내 방식의 삶은 젊은이들의 방식이 될 수 없다. 수십 년 전의 세상이 아니고 상황이 아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규칙은 다르다. 나는 내 방식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살아야 한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각에 공존한다고 그들과 같은 세상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름을 살고 있고, 나는 늦가을의 길목에 서 있다. 비운다는 것은 여름이 비워진 자리에 단풍을 채우는 일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감정은 계절의 변화와 같다. 나는 이 변화를 조금 늦게 발견했을 뿐이다. 아직 단풍은 한 창이고, 겨울은 오지 않았다. 오늘이 나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