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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철 Dec 27. 2021

대청호 오백리길

A코스

2021년 12월 19일 아침 대청호 해뜨기 전의 모습이다. 어젯밤에 눈이 밤에 많이 왔는데 아픈 몸으로는 도저히 계족산 둘레길 걷기는 엄두가 나질 않아서 아침에 주섬 주섬 DSLR를 한 개 들고 나섰다. 결국 오래간만에 DSLR은 한컷 찍었는데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카메라 자신은 땅에 떨어진 이후 17-55 렌즈 줌이 망가져 버렸다. 아래 사진들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너무 Canon D60을 장시간 방치를 해둬서 그가 화가 난 모양이다.


일요일 눈 내린 계족산 둘레길을 못 간 아쉬움에  행여라도 아래에 보이는 풍경이라도 보러 갈 요령으로 차를 몰고 동구 판암동길쪽으로 해서 동명초등학교 초입을 지난다. 이쪽은 THE LEE'S 레스토랑의 맞은편이다. 마산동 쉼터에 차를 세운다. 더리스에서 바라보는 이쪽의 모습도 훌륭하지만 이쪽에서 맞은편 꽃님이네나 팡세온을 바라보는 풍경도 일품이다. 호수의 수위가 내려가면 앞에 보이는 조그마한 나무에도 다가갈 수 있는데 물이 잠기는 바람에 건너갈 수 없는 아쉬움이 몰려온다. 손님이나 지인들이 오면 함께 오는 곳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바다 같은 풍경이 펼쳐져서 바다 구경하고 싶을 때도 찾아오는 곳이다.

식장산 전망대로 보인다. 저 멀리 눈 덮인 산이 겨울로 지천이다

아직은 해가 뜨기 전인데 붉은 기운이 스며든 외로운 호수의 반영이 차갑다. 여름에는 여기에서 연인들이 사진을 찍으며 포즈도 취하고 사랑의 언어들을 표현하는 곳이기도 한데 추운 겨울은 그다지 인기가 없는 듯하다.

가을에 보랏빛 핑크 뮬리들이 있었던 흔적들이다. 그 이쁨을 받던 그들도 겨울의 눈에는 자신의 영역을 내어 줘야 하는가 보다.


아침에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진사들이다. 저 수많은 렌즈에 무엇을 담고 있을까?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 여름에는 건너갈 수 있었던 건너편 나무 아래를 이제는 물로 눈으로 덮여서 싸늘하기만 하다

봄에 파릇파릇하게 이파리들이 돋아나고 그곳을 건널 수 있었다. 이제는 물이 가득 차 오르고 그곳으로 건너가는 배도 없어지고 눈 쌓인 건너편 산이 그저 높기만 하다.

저곳으로 가는 길은 원래 아주 간단했다. 이렇게 건너가기만 하면 되었던 곳이었다. 건너편에 있던 오리들이 여기를 자주 드나들었다. 겨울이 되어서야 이제 알게 되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오리들이 좋아하는 먹이를 던져 주었다. 이내 먹이를 던져주는 오리들은 사진사들 앞에 와서 온갖 재롱을 다 부리며 모델이 되어 주었다.

왼쪽은 봄에 나무 쪽 오른쪽은 가운데 나무가 물에 잠기어 건너가던 날들이다. 수많은 발자국이 오래 언덕을 오고갔고 누구를 "사랑해"라고 적은 이들은 물결들이 다 지워버렸다. 우리들의 반도 사랑 못하는 이들이 추운 날을 기다려 파도들에게 쓸어 버려라고 했던게지. 잔인함이나 혹독함이라고 하지 않겠지 아마도.

봄에도 여름에도 보았던 오리들은 겨울에 먹이를 주었던 사진사들에 의해 길이 들여진 것이 아닐까? 길들여진다는 것은 어린 왕자의 소혹성의 장미도 그러했을까? 길들여진다는 것은 익숙한 것이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의 차량들 만큼이다 사람들로 서 있다. 이들이 세워둔 삼각대에 저 마다 앵글을 가지고 찍는다. 장비도 다르고, 찍으러 오는 이들은 무거운 카메라에 몸을 맡긴다. 

방황하는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다. 오리에게 어떤 먹이를 주었을까? 오롯이 그것만 생각하다 셔터를 누른다. 오리들은 그 먹이를 따라서 물가를 옮겨간다.  이 오리들의 코스가 뒤편에 또 따로 있었고 그들은 사진 찍는 일들과 열심히 먹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오리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은 어떤 이 일까? 사진을 위해서 홀로 먹이를 준비해 온 것일까? 아니면 매번 출사 때마다 먹이를 솔선수범해서 나눠주시는 분일까? 아니면 이날 당번(?)이셨을까?  눈 내린 다음 날 새벽의 찬 기운에 손시럽게 먹이를 애써서 던져주는 모습의 젊은 이 덕분에 오리들이 흡족했으리라. 보는 나도  사진을 찍는 이들도 모두 그래서 모두 말없이 흩어진다.

먼 후일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그리워하다가 잊었노라, 또 물으시면 아니 잊었노라, 그래도 물으시면 그때는 잊었노라. 쉽게 걸어가던 길이 시간의 물결이 우리를 갈라놓기까지 모르고 살았다. 같이 걸었고, 같은 생각도 했었고, 같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맹세도 했다. 다시 나무가 크게 되면 우리가 여기에 왔노라 확인하자. 그날은 잊었다. 무엇이 잘 못 되어 갔는지는 그 산너머 해가 뜬 세월의 손으로 헤아려 보다가 쉬이 지쳐서 다시 헤아리다 이 자리를 언제 왔는지 까맣게 잊어버렸다. 


거친 물결이 밀려오고 우리가 함께 걸어간 길이 막히고 그리움이 눈바람처럼 싸늘하게 밀려들어올 때 비로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자연히 그런 날이 오게 되어 있던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을 나와 그는 몰랐을 뿐이다. 그러니 조금만 그리워하자. 아파할 만큼은 그리워하지 말자. 치밀하게 열심히 살지 말자. 


오리들이 출발하는 곳이 저곳 더리스이다. 넓은 잔디정원이 있는 곳이고 그곳에서 바라보면 이 외로운 나무가 너무 작게 하찮게 보인다. 둘레를 돌아서 돌아서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되면 오히려 더리스의 언덕이 볼품이 없어 보인다. 마음에 가면이 참으로 두겁기도 하거니와 눈의 넓이가 그다지 넓지도 아니하다. 눈감으면 그대가 보인다. 다시 눈뜨면 벼랑이 앞이다. 눈을 감지도 뜨지도 못하지만 지긋이 뜬 것도 아니고 감은 것도 아니니.

따스한 봄 날이 되면 다시 오리라 약속한다. 물결들 사이로 뿌리가 휑하니 드러나고 물살에 쓸려가지 않게 기도 하리라. 우리가 약속했던 많은 이들이 물살들이 막아주고 지지해주리라. 너도 건너편에서 나를 기억하고 있으리라. 그러니 그대도 꼭 쓰러지지 마시길. 그 어떤 물결이 파고를 넘어선다 할지라도. 그 어떤 아침의 해가 찬란하게 비춰줄지라도. 찾아 왔던 이들이 하나 둘 떠난 후에 가진 약속이 잊었노라.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내라.  

그래도 이들은 모여 있어서 춥지 않으리.
그래도 이들은 아침 햇살이 찾아오는 틈을 차지해서 외롭지 아니하리.
그래도 거센 바람을 높은 나무가 지켜주고 있으니 아니 쓰러지리.
그래도 나무는 외롭지 않으리.
그래도 모여 있는 것들이 함께 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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