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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철 Nov 28. 2021

계족산 둘레길 해돋이

첫얼음

배낭에 침낭과 베개를 넣어 두었다. 짐을 지는 연습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짐을 채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기 위한 텀블러도 준비를 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전날 잠자리를 청했는데 양주에서 맛있는 커피를 늦게까지 두 잔이나 마신 탓인지 머리가 너무 맑아 잠이 잘 오질 않았다. 하늘에 뜬 별에게 잠을 청했다. 무엇인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땐 우리는 기도를 한다. 별을 노래한 위대한 사람들은 온몸으로 별들이 자신과 함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에너지를 믿으며 살았다.


새벽의 어둠이 깊어졌다. 하늘에는 별들과 그믐달이 떠 있다. 달빛을 길라잡이 삼아서 3번째 계족산 정상 코스로 방향을 잡았다. 내가 잡은 것은 아니다. 앞에 길을 걷는 길잡이분들이 그 방향으로 오르고 있었다.

출발로부터 45분째 06:55분째에 계족산 정상에 도착했다. 중간쯤 화장실이 있는 곳에 몇 분간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나무계단을 타고 오른다. 하늘이 맑아서 산등성이 오른쪽으로 붉은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해가 이쁘게 뜰 모양새였다. 아침의 붉은 기운을 뒤로하고 만세를 불러달라 요청하였다.

강 교수님께서 무릎이 좋지 않은 관계로 경사도가 있는 곳을 오르실 때 스틱이 유용하실 것 같아 스틱을 빌려 드렸다. 2주 전에 달린 몇몇 낙엽들은 이제 한 잎도 남지 않고 나목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이번에 비박을 한 캠퍼족은 두 분이었는데 전번 주의 인원에 비하면 추위 탓인지 무리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출발 한 시간이 경과하는 07:08분 붉은 기운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해돋이가 사람을 비장하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해의 위치가 전번 주보다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나아간다. 정상은 아래와는 달리 새벽에도 차가운 바람이 분다. 오르는 동안에는 땀이 나서 춥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정상에 머물게 되면 이내 땀이 식고 추워지기 시작한다. 배낭에 가벼운 장갑은 챙겨서 오르는 편이 자연에 대항(?) 하지 않고 순리에 따르는 길이다. 작년 겨울에 차 트렁크에 넣어 두었던 눈 오는 날의 방수 장갑을 꺼낸다. 다행히도 장갑이 아주 유용했다. 다만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장갑을 벗고 찍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준석 씨가 요즘 장갑 중에 손가락 끝만 벗기고 터치하여 사진을 찍은 후에 끝은 덮는 장갑도 있다 하는데 검색을 해볼까 보다.


정상은 바람이 너무 세다. 중간 둘레길을 내려와서 바람이 없는 햇살이 있는 길을 걸으면 이내 그 차갑고 바람 불던 시간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이 아프고 어려운 시간을 금방 잊어버리는가 보다. 사기에 나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긴 말이다.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편안하게 눕지 않고 일부러 장작더미에서 자고 쓸개의 맛을 본다는 말이다.

한국의 자연은 70%가 산이다. 평야지대가 적으며, 사계절이 너무 뚜렷하다. 산아래에 개울이 흐르는 곳을 앞뒤로 해서 마을을 만들어 살았다. 이렇게도 많은 산들에 길을 놓고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먹는 음식도 다르다. 입어야 하는 옷도 계절마다 다르다. 한 계절이 가면 다른 계절을 생각하고 준비하여 둔다. 따뜻하고 한 계절만 1년 내내 보내는 나라 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의 차이는 이러 자연환경의 차이에서 보는 견해가 크다.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도 융통성이 있어야 하고 사고의 변화가 요구된다. 유독 봄의 따쓰함에 자신의 에너지를 펼치는 사람이 있고 추위에 약해서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추위가 오면 따뜻한 봄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다만 기다리며 추위는 지나가지만 준비를 해두면 많이 추워하지 않아도 된다.

한 소장님은 걷기의 예찬론자이신데 오늘은 합류를 하시지 않았다. 뭔가 바쁜 일들이 많이 생긴 모양새인데 박주한 이사님(가운데 사진)께서 한 소장님께서 해가 뜰 때는 첫 햇살에 세우를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손을 얼굴에 갖다 대며 햇빛을 얼굴로 맞이하며 세수를 하신다.

극구 나도 출연해야 한다고 같이 찍자고 하신다. 같이 찍을 때는 애플 워치에 있는 카메라 리모컨 기능으로 사진을 찍는다. 타이머 기능도 있고 원샷 기능도 있다. 물론 초점을 맞추는 기능도 있다. 삼각대가 없을 시에는 돌멩이를 바쳐서 하거나 가지고 있는 물병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혼자 길을 걷거나 여행할 때 자주 사용하는 기능이다.

준석 씨는 합창단을 하는데 오늘 내가 노래를 한 곳 불러 달라 했다. 노래는 우리 민족은 하나라는 내용이었다. 평소에 자주 듣는 노래는 버스커버스커의 장범준 노래를 요청하였다. 벚꽃엔딩으로 온 나라를 벚꽃으로 물들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만 큰 연습과 노력을 많이 한 결과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노래보다는 안치환 노래나 김광석이 노래가 좋다. 연탄 한 장과 같이 아무 쓸모없는 존재라도 춥고 눈 오는 날에 길가에 뿌려져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자신을 바치면서 사라지는 그런 존재. 위대하지 않더라도 인간으로 살면서 사소한 것들에 대한 기여나 봉사가 사람 세상을 아름답게 하지 않는가!

강 교수님께서 조금 전에 계족산성에 올라 비박을 하는 사람들이 믹스커피를 타 먹는 것을 보면서 커피를 한잔 드시고 싶다고 간절하게 이야기를 하셨다 한다. 내심으로는 교수님 조금만 참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시죠라고 하고 있었다. 그러시면 제가 따뜻한 엘레강스한 커피를 마실수 있게 하겠습니다. 며칠 전에 사둔 곶감과 바나나를 챙기고 그리고 따뜻한 커피를 텀블러에 담고 배낭에 넣어 왔다. 나도 오랜만에 음식에 기여를 하게 되어 오늘은 기쁜 날이다. 선배 선생님만 빼고 너무 좋아하셨다. 커피를 안 드신다는 것이었다. 한 소장님이 아시면 우리는 혼난다고 한다.


하산은 집수지가 있는 공사장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오른쪽 절고개를 향했다. 절고개쪽으로 선택하려면 등선이 있는데 등선을 다소 걸어야 한다.

정상에서 아래로 조금 내려와도 이렇게 춥지 않은데 정상은 항상 외롭고 추운 곳인가 보다. 그래도 인간들은 모두들 다 정상에 오르려고 한다. 정상에 오르면 다시 내려와야 한다. 정상에 머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내려가는 시간이 지체된다. 정상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은 정상을 가려고 매번 시도를 한다.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높은 데를 굳이 오르는 이유는 정상에서 내려오면 편안감을 맛보기 위함일까?

준석이가 이 꽃이 좋은가보다. 이 꽃으로 셀카를 찍고 있길래 내가 한 장 찍어 보인다.

08:23분 오르기 시작한 지 2시간 13분. 둘레길로 내려왔다. 절고개쪽으로 내려와서 왼쪽 둘레길로 걸으면 단풍나무가 나온다. 단풍잎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의 에너지와 기운은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 뿌리로 가버렸다. 뿌리는 그 많은 잎들을 그 에너지로 성장시킨다. 아름답던 단풍잎들이 바싹 말라버리고 붉은 기운이 이내 황색으로 변하고 다른 잎들과 함께 낙엽으로 뒤덮이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한때는 화려하다고 사랑도 받았고 관심도 얻어서 너무 당당했으리라.

오른쪽에서 햇살이 들어온다. 햇살이 뒤로 들어오면서 나의 그림자가 분신을 만들어 낸다. 나의 분신이 내가 걷는 길을 따라서 오니 외롭지 않다. 별들이 항상 나의 머리에 존재하듯이 나의 분신도 이렇게 나를 지켜준다.

아직 붉은 기운이 가시지 않은 갓길에 단풍이 수북하게 쌓였다. 이 단풍들도 황톳빛으로 물들어 가면서 여느 낙엽과 마찬가지로 흙속으로 스며들고 그 흙들도 먼지가 되어 우리들 존재 위로 날아다니겠지. 그러면서 내가 다녔던 그 단풍길을 내 머릿속에 떠올려 주겠지.

오늘을 살얼음이 얼었다. 다른 일행분들이 얼음이 얼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산 개울가에 반짝반짝 거리는 빛이 얼음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직진하였으리라.

박주한 이사님께서 사과와 사과즙을 매주마다 가지고 오신다. 센스 있게 나의 주머니에 언제 넣어 두셨는지 내가 손이 시려 손을 주머니에 넣는 순간 이게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내가 매고 간 배낭 옆 포켓에 사과가 2개가 들어 있다. 내가 12 브룩스 이상 아니면 난 안 먹는고 했더니 집에 와서 먹어 보니 먹어 보았던 사과 중에 제일 단 맛이 났다. 감사합니다. 이맘때 생산되었던 부사과가 참 맛이 있을 시기이다.

역방향으로 걸을 때 사진을 찍는 곳 10킬로 지점이다. 산 정상을 타고 다시 내려와서 걸어서 오늘은 시간이 1시간 더 지체되었다. 내가 맨 배낭이 47리터짜리 배낭이고 색상은 빨간색 밖에 없어서 그것으로 골랐다. 옷을 얇은 다운재킷에 겉옷은 바람막이가 되는 재킷인데 이 옷으로도 충분이 추위와 방풍이 가능한 듯하다. 두툼한 다운재킷을 굳이 준비 안 해도 될 듯하다. 7-8년 전에 구입한 등산화는 지금도 현역이라 요긴하다.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에 대한 애정이 사람마다 있다. 조선 순조 때 유씨부인의 조침문(弔針文)이라는 수필도 그렇게 애지 중지하던 바늘이 어느 날 부러져 쓸모가 없는 바늘을 애도하는 수필이다. 바늘을 사람처럼 의인화하여 제문 형식으로 쓴 국한문 혼용 작품이다.

메타쉐콰이어가 윗부분에 잎들이 조금 남아 있다. 담양이 메타라는 어휘를 사용하여 관광 상품화하였다고 한다. 메타버스가 지금 화두이기에 그런 관심을 등에 엎고 관광상품을 선점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메타(META)가 가상, 허구, 지어낸, 가공의 뜻으로 자주 쓰인다. 버스(Verse)라는 말은 Universe의 verse(공간-space)이다. 가상공간이 메타버스의 세계이다. AR, VR, MR, XR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한 때 온세계를 흔들었던 포켓몬스터 잡기, 그리고 게임의 허구의 가공의 공간들이다.

5시간 16분이 소요된 긴 시간이었다. 배낭을 메고 걸었던 탓인지 몸이 피곤하지는 않은데 몸은 그것을 느끼는 것 같다. 식사를 하고 집에 와서 씻고 잠을 조금 자고 나서 이 글을 적는다.


준석 씨 지금까지 잘 해오셨고 앞으로도 잘하실 거라고 나는 믿어요. 뒤에 쳐져 있어도 함께 걸어주셔서 고마워요. 파이팅

같이 합류는 하지 않았지만 늦게라도 여기까지 오셔서 코코넛 워터를 맛보게 해 주신 한 소장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 걸어주신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여기 걷기는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지만 아직 까지 참여를 타진해 오신 분들은 없습니다.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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