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2021.11.07. 토요일. 새벽 06:00) 맑음. 영상 6도
토요일 아침 5시는 일어나기에는 무거운 시간이다. 온갖 세상의 짐은 일단 두고 일어나는 것에 온 우주의 힘을 빌린다.
전날 산에 갈 준비를 하고 옷 몇 가지를 준비해두고 알람 세팅을 확인한다. 애플 워치는 알람에 대한 신뢰를 가장 잘 주고 있다.
장동산림욕장이라고도 하고 계족산 둘레길이라고도 하고 계족산 황톳길이라고도 한다. 마땅치 않으면 그냥 계족산성이라 누르고 아침길을 나선다.
전날 같이 하기로 한 분들은 단체 톡방에서 자유롭게 빠지거나 함께 할 사람이 결정된다.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한 번도 빠지지 않게 이 길을 먼저 걸으신 분이 계시기에 그러하다. 한 번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빠져나갈 요령을 피우셔도 될 법도 한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자신 스스로 약속한 것이 있는 듯 그 다짐이 사뭇 남다르다.
그게 팀 리더의 책임감인지 아니면 자기 스스로에 대한 신뢰의 확보인지 팀을 위한 것인지는 아직 물어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묻고 싶지도 않다.
믿음을 물어서 확인하고 그게 다르다면 그 믿음을 신뢰할 수 없다고 치부하기에는 나이나 연륜이 있지 않은가?
오늘 아침의 별들이다. 오리온자리가 새벽에 밝다는데 남서쪽 방향에 자리를 잡고 있다.
대략 6시이면 우리는 출발지에 집결한다. 출발지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한빛 소장님께서 알려주신 몸풀기 필살기를 워밍업하고 출발을 한다. 출발시간은 06:15분이다.
출발을 하면서 언덕이 나타나는데 '언덕길에서는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출발하기'로 다짐하고 약속해 놓고는 모두들 무슨 말씀을 그리 나누시는지 요란하다. 귓동냥으로는 아마 책 이야기 들이다. 한 주간 있었던 이슈들 인지도 모른다. 전번 주보다는 낙엽이 많이 떨어졌다. 기온은 아직은 춥지 않은 영상 6도이다. 바람은 없고 하늘은 검푸른 빛을 띠고 별들이 보이는 날이다.
아직까지는 어둡다. 어두움이 가시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없기도 하거니와 간섭이나 다른 방해요인을 없애고 조용한 걷기를 지향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는 메타세쿼이아가 우거진 곳이다.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뒷모습만 찍었는데 이 길이 아주 이쁜 길중에 한 곳이라고 말씀드린 후에 처음으로 알아서 멈추셨다. 사진을 이젠 찍겠으니 포즈를 취하신다. 내가 합류한 이후에 처음으로 이분들께서 자발적으로 내게 공식 요청(?)을 하신 날이다. 그리고 포즈를 요청해도 잘도(?)하신다. 초등학생 소풍 나온 듯 그렇게 자연스럽다. 개인적인 행동을 하다가도 다시 모여 공동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낙엽이 많이 떨어졌다. 그렇게도 당당하고 언제나 푸를 것 같은 것들도 자신들이 가야 할 곳을 아는지 알아서 그 길을 선택한다. 나무에게 우리는 배운다. 한참 무르익어 너무나도 사랑받고 이쁨을 받아야 하는 시기에 내려오는 겸손과 조금이나마 더 그 자리를 지켜서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는데도 손사례 치는 사양의 미를 말이다. 이 처럼 떨어진 잎들도 처음에는 누가 봄을 먼저 보여줄까 경쟁하여 울긋불긋 연분홍, 노오랑 꽃들을 잎새가 피기 전에 피었다. 봄꽃 들을 잎이 피기 전에 꽃이 먼저 핀다. 지난해 핀 가지에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다음 가지가 나올 순에서 꽃을 피운다. 다음 세대가 가져야 할 권리를 이전 세대의 마디와 가지가 가로채지 않는 것이다.
동녘이 비치는 시간이다. 어둠이 걷혀지나 가고 왼쪽 편의 호수가 너머 산에서 해가 비쳐온다. 여기에서 또 이분들이 자동으로 멈춰 선다. 사진을 찍자는 묵언의 싸인이다. 이제는 학습된 행동들을 하신다.
출발 후 75분째가 되면 왼편에 화장실과 원두막처럼 쉼터가 나온다. 여기 화장실은 화장지가 없는 화장실인데 화장지가 필요할 경우가 있다. 속이 안 좋은 상태로 처음 오거나 장이 별로 안 좋았는데 걷다 보니 신호가 와서 필요할 경우가 있기에 그러기에 적당한 화장실이다. 여기 쉼터에서 일행 중에서 늘 유기농 사과즙을 갖고 오시는 분이 있는데 늘 받아먹기만 한다. 또 어떤 분은 과일, 또 어떤 분은 오랜 군 소금물, 잘 숙성된 된장국 등 다양하다. 내게 늘 물 한 통을 건네주시는데 나는 배낭도 물도 없이 맨몸으로 이 길을 걸어왔다. 신세를 지는 셈이다. 이 신세에 대해서 어떻게 갚을지는 조금 더 생각을 해보고 싶다.
이 가을 잎들도 처음에서 푸릇푸릇 싱싱하고 아프지 않고 흠도 없고 누구에게나 맑고 깨끗하다고 사랑받았던 적이 있었으리라. 가는 길엔 구멍도 나고 벌레도 먹고 누구도 쳐다봐주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썩어 없어져 가는 퇴비나 거름이 될 재료들이라고 하면서 바라보겠지. 그래도 용캐 풀 애벌레들이 먹히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그것들의 상흔을 껴안고 떨어져 나간다. 죽음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모두 공평하듯이
가로수의 수종의 대부분 벚나무이지만 오른편에는 원래 있었던 수종들인 듯 떡갈나무가 나무들이 많다. 왼편 에는 벚나무 잎새들, 오른편에는 떡갈나무 잎새들이 그들의 영역을 나눠서 지고 있다. 왼편 에는 벚나무 잎의 시큼한 향기, 오른편은 떡갈나무 푸른 냄새의 향기가 난다. 간혹 싸락 밤나무가 있어서 가을 초입에는 떨어진 밤톨을 까보는 맛도 내어주었다. 물론 방이라 아주 조그마한 밤톨보다 작은 밤이다. 밤은 익었을 때보다는 덜 익었을 때 싸락 밤이 떫은맛을 간직하지만 신선함을 많이 품고 있다.
이 길은 단풍나무가 이어지는 길이다. 그야말로 가을 길이다. 그러면서 단풍나무를 품은 흙은 아주 고운 흙들이고 수분을 적절히 품고 있어서 단풍이 바싹 마르지 않는다. 게다가 햇빛이 적절히 비춰주어서 색깔이 곱게 물들었다. 지인이 좋은 고구마 품종을 구해와서 고구마순을 밭에 심었는데 그 먹었던 품종의 맛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맛이더라는 말이 생각난다. 토양과 그 환경을 둘러싼 식물들이 태생보다는 성장과정이 더 중요한 대목이다. 스티브 잡스의 친부모가 자신을 낳고 가난하면서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를 하면서 먹고살았지만 입양을 하는 조건을 그 아이를 대학에 보내는 것이었는데 양 부모님은 전재산을 털어서 잡스를 대학에 입학시키지만 잡스는 무의미한 대학생활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배우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물론 아버지의 창고에 있는 많은 장비와 부품들이 스스로 시도하고 실패하고 만들고 부수고 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실패를 많이도 하였으리라 그리고 그것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또 다른 제품과 시도를 다시 하였으며 양부모들이 그때마다 실패를 비난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더욱더 큰 사람이 되는 작은 칭찬과 용기를 아끼지 않았으리라.
단풍나무보다는 벚나무 잎들이 먼저 진다. 먼저 피는 꽃이 먼저 지는 법이니 일찍 펴서 사랑받는 것도 좋겠지만 늦게 아주 빨갛게 피어 사랑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키 큰 벚나무 언덕 아래로 단풍잎들이 붉게 물들어 간다. 이미 잎새들은 지고 단풍들만이 그 자리를 늦게 지킨다.
출발 후 9.2킬로 지점에는 화장지가 있는 화장실도 있고 오른쪽으로 도는 가까운 분들을 위해서 근력운동과 스트레치 하는 기구들, 그리고 수돗가가 있다. 오늘은 계족산성을 올라가자고 내가 제의를 했다. 반기를 들 법도 한데 흔쾌히 그러하자고 하신 유연한 사고가 좋다. 무릎이 아주 안 좋으신 분이 계시는 데 계단이나 경사가 진 언덕을 오르는 것이 몸에 무리가 간다. 그분은 우리 모임의 대표이다. 전직 교수님이셨고 지금은 잘나가는 IT회사에서 제2의 인생을 보내시고 계신다.
자칭 도사님(?)이신 전직 대안학교 교장님 그리고 교육 소장님을 하시는 분은 설악산 산행을 하시고 오늘 아침 우리와 합류하셨다. 늦을 때면 역방향으로 길을 걸어오시면서 우리와 합류한다. 가방에는 늘 비타민제와 군 소금물을 탄 따뜻한 음료를 한 아름의 컵에 담아서 주신다. 나눔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은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뜻이다. 갑자기 나눔이나 베풂이 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종합비타민 제를 한봉씩 주셨는데 10분이 경과한 후에 아프거나 쓰린 곳이 평소 지병이 있는 곳이라며 확인해봐라 하신다. 나는 속이 불편했다. 잘 생각해니 계속 요즘 속이 쓰리고 불편했는데 그 이유가 매일 커피를 매일 아침에 마셨으니 그럴 법도 하다. 육식이나 기름기가 있는 음식을 먹는 양식에 커피는 몰라도 나같이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는 커피가 위에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출근해서 커피봉지를 치워야겠다.
계족산성에 올랐다. 배터리가 없었는데 소장님의 핸드폰으로 찍었다. 소장님은 새로 아이폰을 장만하셨다. 물론 신형 갤럭시폰을 사용하신다. 통신사 계약 없이 새로운 아이폰 13을 공폰으로 사용하신다. 용도가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시라 하신다. 이번에 설악산 산행에 동행했던 분과 똑같이 아이폰을 구입해서 서로 촬영을 해주고 콘텐츠를 주고받고 하셨다고 한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이 대청댐이다. 안개가 대청댐 위로 오른쪽이 식장산이 보인다. 저 건너편이 관상성 전투가 있었던 옥천이 보인다. 신라가 나제 동맹을 깨고 한강유역을 점령하여 백제와의 동맹을 깨 버린 후에 진흥왕의 군사와 성왕이 싸움 끝에 성왕이 잡혀 처형을 당하면서 백제의 가야 영향력이 신라로 옮겨가게 된다.
계족산성에서 보문산에 있는 보문산성까지 크고 작은 산성이 16개가 존재한다. 대전지역이 신라와 백제의 영역다툼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에는 모델들에게 가리키는 손짓의 포즈를 요구했는데 제각각이다. 다시 요구를 했더니 앞으로 나란히 포즈를 취해주신다.
이 나무 왼쪽 뒤로 보이는 곳이 전민동 엑스포 아파트이다. 저 너무로 공주의 산들이 보인다.
모델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앞으로 나란히'를 참 잘한다. 다음에는 포즈를 시선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뻗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연히 그러하시겠지만.
만추를 즐기는 행락객들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하산을 한다. 산 모퉁이에 다정하게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있기도 하고, 가벼운 레깅스 차림의 학생들도 숨 가쁘게 오르막 계단을 올라온다.
내려가는 길은 출발지 중간에서 시작하면 25분이면 오를 수 있다. 다만 언덕이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경사가 가파르고 힘이 다소 드는 코스이다. 계족산 황톳길을 체험하고 다시 계족산성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이 코스로 좋다는 생각이 든다. 날이 쌀쌀해져서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 이들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간혹 그런 사람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IT회사 최고 기술 책임자로 계시는 분이 대봉감 홍시를 가지고 오셨다. 딱 이맘때만 먹을 수 있다. 고향 서산에 가셔서 손수 감나무에서 따오셨다고 한다. 감이 망가지지 않도록 완충제 스티로폼을 넣고 감을 고이 담아 오셨는데 그것을 전해주시고 먼저 댁으로 가셨다. 주일이라 교회도 가셔야 하고 교회에서 그분을 기다리는 주일학교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소소하고 따뜻한 배려가 고맙고 감사한 날이었다.
총4시간 10분을 걸었고 거리는 둘레길 대신 산정상인 산성을 가로질러 13.79이다. 중간에 심박수가 최고로 오른 이유가 산정상을 오르는 경사가 급해서 숨가쁜 길이었다.
하산을 하고 11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보리밥집에 4인이 밥을 먹었다. 뽀빠이가 왔다 간곳이라며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자랑을 하신다. 야채가 신선하고 참기름을 직접 짜서 손님에게 내놓는다고 하신다. 된장맛이 일품이며 야채들이 아주 신선해서 좋다. 무엇보다 이집은 밥을 먹고 나서 속이 불편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