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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시 Feb 11. 2020

술 싫어하는 글

#53

술이 싫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술의 모든 과정을 혐오한다. 사람이 맨정신이 아닌 것도 싫고, 주정뱅이의 주사도 싫고, 냄새도 맛도 싫고, 싫어서 죽을 지경이다. 취하지 않으면 못할 짓을 술 핑계로 하는 인간을 경멸한다.


내가 취향으로 존중하는 범위의 술이란 직장인이 하루 한두 잔의 커피로 회사를 버티듯 마시는 적당한 술, 요리에서 잡내를 지우거나 풍미를 더하는 용도의 술뿐. 나는 영원히 모르겠지만, 햄버거나 피자에 우유나 주스가 아닌 콜라를 마시듯 치킨에 맥주나 파전에 막걸리나 치즈에 와인처럼 먹는 이의 입맛에 최고의 조합이 술이고 그래서 필요하다면 거기까지는 이해한다. 먹으면 맛있고 먹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라면. 술로 인해 평소와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쯤 되면 내가 싫어할 대상이 술인지 사람인지 나도 헷갈린다. 못난 사람 때문에 죄 없는 술을 미워하나.

어떤 음료도 술처럼 유난을 떨지 않는다. 없이 못 사는 중독자가 술 못지않게 많은 커피나 탄산음료는 그런 추태를 부리지 않는다. 없으면 죽는 물조차도. 술을 빌미로 대화가 필요한 거라면, 한두 잔만으로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는 다른 음료와 달리 오직 술만이 끝없이 마셔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역시 술을 이용하는 사람이 문제인가? 자릿세를 내려고? 배가 불러도 토하고 마시는 이유가 있단 말인가. 헤어지기 전까지, 막차나 첫차를 타기 전까지, 의식을 잃기 전까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질 때까지, 인사불성이 되어서야 비로소 멈추는 이유. 무언가를 들이박거나 낭떠러지로 떨어진 후에야 서는 자동차처럼, 음주운전자가 모는 차 역시 스스로 멈추지 않듯 자제를 모른다.

술에 대해서는 한 줌 좋았던 기억조차 없다. 있어봐야 양조장 견학이려나. 술병을 깨서 미술재료로 썼더니 빛깔이 몹시 예뻤던 정도이고, 술을 마시거나 술에 취한 사람을 겪는 일은 좋았던 적이 없다. 분위기가 괜찮았던 모임도 술이 없다면 더 만족스러웠으리라. 아, 증편은 좋아한다. 

술만큼 무엇도 아니면서 무엇이라도 되는 듯 구는 음료, 음식은 본 적이 없다. 단지 생각 없이 퍼마시는 것에 불과한 행위를 마시는 법, 예절, 규칙, 도리 따위로 포장하는 것도 모자라 싫어하는 사람에게 강요하고, 대단한 의식처럼 떠받든다. 대체 왜 술에만 주량 따위가 붙는지도 모를 일이다. 커피 몇 잔이 한계인지는 왜 안 묻나? 술 많이 마시는데 뭐 어쩌라고.


식도를 열어 털어 마시거나 잔을 무슨 손으로 어떻게 받거나 꺾어먹거나 소맥의 황금비, 술 게임, 술 문화, 술술술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따위의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쓰레기 같은 정보들이 내 뇌의 용량을 조금이라도 차지하는 것이 분하고 억울하다. 좋은 건 독차지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라면 제발 그 좋은 술맛 혼자 알기를.

고3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지막 수학여행 아니면 수능이 끝나고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학급 친구들이 열 명도 넘게 모여 교복 입고 당당히 줄지어 시내를 거닐었다. 미성년자는 금기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 난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빠지기 싫었을 뿐이고, 대단한 일탈과 모험 같던 술 마시기는 보잘것없었다. 여럿이 둥그렇게 앉아 누군가 챙겨 온 소주를 흰 종이컵에 따라 마셨다. 기억나진 않지만, 초라한 과자를 안주 삼아 먹고 어른들처럼 건배를 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아무튼 그때 처음으로 딱 한 모금 맛보았고, 투명한 물처럼 생겼는데 아주 썼다.

그 후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처음은 대학교의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스무 살의 눈에 어른으로 보였던 선배들은 사실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사이의 청년들, 즉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신입생에게 말 그대로 술을 가르쳤다. 그때도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고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함께해야 하는 줄로만 알았던 술이 나와는 상극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생물 시간에 배운 알코올 분해효소가 부족하다는 것도 눈으로 확인하며, 마시고 토하고 마시고 토했다. 그런 거 없이도 사람을 사귀며 자란 사람들이 왜 성인이 되자 술 따위를 매개로 삼는지 궁금했다.

저학년 때는 여기저기 어울리며 먹지도 못하는 술을 받아 마셨다. 그 시절 확인한 바, 소주 한 잔만 들어가도 얼굴과 온몸이 붉어지고 네 잔이 넘어가면 토했다. 그 이상 마시면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는 반면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수술 도중에 마취가 풀리면 이런 느낌일까, 취한 사람들이 벌이는 행태를 맨 정신으로 목격하는 것은 퍽 불행한 일이다.


보통에서 조금 벗어나면 ‘쟤 왜 저래’ 하는 나라에서 술이란 이상한 짓을 해도 너그럽게 받아들이자는 신호 같은데,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그 어쭙잖은 몸짓, 꼬인 혀, 고장 난 테이프처럼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풀린 눈 따위를 보고 있으면 나도 취해서 정신을 잃고 싶어 졌는데, 잠들지언정 정신은 흐려지지 않았다. 고학년이 되고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내가 선배고 선배도 동기가 되니 술을 마실 필요가 없었고 나를 어느 정도 알게 된 사람들도 더는 술을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조상님 제사 지내듯 마시지 않을 잔이라도 받아서 채워두라는 사람들 덕분에 내 몫의 술을 낭비했다.

서열이 높아지고 원치 않는 음주에서 벗어났으므로, 회사를 다니면서 다시 음주의 의무를 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싫어도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리려면. 지금 생각해보니 융통성이 없었다. 술 먹고 응급실 간 적 있다고 둘러댈 것을. 아니면 종교에 가입해도 되고 핑곗거리는 많았는데 말이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거절해야 하는 음료라는 것이 문제지만. 다행이라면 심하게 강요하는 회사가 아니었고 내 인내심도 길지 않아서 더 이상 적응할 필요가 없어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억지로 술 먹기를 관뒀다. 하지만 인생은 결코 적당히 넘어가도록 두지 않고 잊을만하면 대형 이벤트가 생기는 법이다.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원래도 달갑지 않았던 술의 인상이 ‘극혐’이 되기에 충분한 사건을 두 번째 회사에서 겪었다. 아마 그날을 사건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불행하게도 나뿐일 것이다. 나만 제정신이었으니까. 당한 사람은 고스란히 기억하는데 저지른 사람은 말끔히 잊고 모르는척 머쓱해하는 꼴, 역겹다.


스스로 주당이니 술꾼이니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러든 말든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이지만, 한 가지 경고하고 싶다. 술을 못한다고 하면 그런 줄 알아야지, 대체로 그들은 남의 주량을 물어놓고 흘려듣는 경향이 있다. 주량이 궁금해서 물은 게 아니거나 같잖은 술자리 매너를 익힌 자신이 대견하거나 술 못하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완곡한 의사표현에 대고 ‘그런 사람이 알고 보면 주당이더라’는 식으로 헛소리하는 스스로가 재치 있다고 느끼거나 마시기 싫다는 말을 못 알아듣고 ‘무리하지 말고 조금만 마시라’며 잔을 채워주는 것을 큰 선심이라도 쓴다고 착각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그런 덜떨어진 농담에는 완전히 질려버렸고, 덕분에 돌려 말하지 않고 완강하게 거절할 수 있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잘됐다.

신입으로 입사하고 첫 회식, 아무리 거절을 잘해도 이날만큼은 거르기 힘들다. 1차는 치킨을 적당히 먹었고 팀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직급 높은 부장이 먼저 일어났다. 불편한 사람이 빠져주는 것이 미덕임을 안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2차로 자리를 옮겼다. 밥 먹고 카페에서 노래방 가듯 기능이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도 아니고(그러고 싶지도 않지만) 충분히 먹었는데도 음식점을 전전하며 정도를 모르고 3차, 4차, 5차를 가는 것도 술이 유일했다. 술이 없으면 2차 이상도 드물다. 가정이 있고 제정신 박힌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서고 나처럼 차마 못 가는 신입사원을 제외하니 남은 인원부터 불미스러웠다. 내 상식 밖이었고, 그 술자리를 겉으로나마 상식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3차에서 부장 다음으로 나이 많고 직급 높은 차장이 일어섰다. 정확히는 차장이 내 직속상관이었으므로 나머지는 볼일이 없었는데 왜인지 도망갈 수 없었다. 같은 팀이고 앞으로 잘 지내보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인지, 다른 거절은 잘해도 분위기 깨는 일에는 좀처럼 마음이 약해졌던 탓인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신나서 술판을 벌이려는 다른 신입사원도 원망스러웠다. 남은 인원이 불미스러웠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유부남과 노총각. 나와 다른 신입사원만 미혼에 여자에 이십 대였고 시간은 막차를 향하고 있었다. 설마 막차 끊기기 전에는 보내주겠지, 안일하게 생각했다.

둘보단 셋, 셋보단 넷, 인원이 많을수록 덜 불미스러우니까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고, 나보다 어린 다른 신입사원을 홀로 두고 가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저는 가보겠다는 말이 어려웠던 이유가 가장 크지만. 정말로 막차가 끊겨버리자 이성도 끊기고 비속어가 나올 것 같았다. 막차가 끊긴 시점에서 그들은 내 상식을 벗어났다. 백번 양보해서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첫 사회생활에 대한 의욕이 넘치고 술 좋아하는 신입은 이해하더라도, 집에 갈 줄 모르는 남자 둘은 이해할 수 없었다. 띠동갑을 넘는 노총각은 말할 것도 없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한참 어린 여사원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유부남은 뭐하는 인간일까. 집에 가서는 회식 때문에 밤을 새웠다고 하겠지. 강요할 수 있는 위치의 상사들은 일찌감치 집에 갔는데도 일 핑계를 대며. 맨정신으로 도저히 참기 힘든 웃기는 노릇이었다. 그러고 있어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는데도 고작 술, 겨우 술이 판을 깔아주고 있었다.

그것을 마치 회사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준다든가 팀원끼리 서로 돈독해진다고 하는 것은, 말하는 본인이나 속을까 싶도록 얄팍하여 훤히 보이는 합리화고, 나는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은 회식에서 술 좀 마신 걸 가지고 불륜처럼 과장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거나 그들을 별로 겪어보지도 않고 박하게 평가했고, 머지않아 내가 옳다는 확신을 가질 만한 일들이 충분히 일어났다는 건 씁쓸한 이야기다. 심한 일과 덜 심한 일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고, 제대로 된 사람은 그 어떤 여지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싶은 사람만 모른다.

첫 회식의 여파는 주말 내내 앓아눕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다음 주의 업무에까지 지장을 줬으므로 그 세 사람은 물론이고 싫어하는 술을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만원 지하철에서 더 이상 밀착할 수 없을 때까지 밀착되며 가까스로 구토를 참고 내려서 토한 건 술 때문에 겪을 수 있는 일 중 단연 최악이었다. 만면에 냉기가 스며 올라오는 느낌을 아는가.


그 후로 나는 누가 주는 술이건 입에 대는 척도 하지 않게 되었고 상사들은 알아서 콜라나 환타를 주문했다. 그럴싸한 이유를 대는 것도 그만두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서 안 먹는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한지, 술만 특별 대우하는 것도 싫다. 없는 예의를 차린답시고 이유를 댄 것이 오히려 술을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지금처럼 먹방이 흥하기 전, 많이 먹는 것이 대수롭지 않던 시절에도 술만은 달랐다. 콜라 삼십 병 마셨다고 떠벌리는 사람은 없는데 술을 궤짝으로 마신 것은 무용담처럼 오르내렸다. 정말 어쩌라고. 술 먹는 하마인 게 자랑인가. 필름이 끊기는 알코올성 치매가 어째서 유쾌한 에피소드로 둔갑하는지도 모르겠고. 기억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게 재미있다니. 남의 집에 토하면서 더 친해진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텐데도 술이라면 쉽게 용서된다. 하기야 주취감형이란 것도 있으니 사회적으로 관대한 게 맞다. 꼭 먹는 것 중에서도 술담배만 애주, 애연이라는 단어까지 있는 것도 어이없다.


미디어에서 음주를 미화하는 것도 작작했으면 좋겠다. 술 취한 사람은 귀엽지도 멋있지도 유쾌하지도 진솔하지도 않고 술의 힘을 빌려야만 변신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못하는 편이 낫다. 소주 한 잔, 취중진담 때려치워라. 술 취해서 고백하는 사람은 촌스럽고 서툴지만 사랑스러운 게 아니라 짜증 나고 무섭고 신고하고 싶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술을 조용히 즐기는 사람들은 이 글에 닿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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