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저는 무엇이든 꾸준히 할 줄 아는 사람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지인 중에 누구는 CPA니 CFA니 전문 자격증을 따서 전문직이 된 사람도 있고, 누구는 대기업에 입사하여 아리따운 배우자와 결혼했다는 소식도 전해왔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 하나 끝까지 해내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으니까요. 저는 도저히 하루 종일 책을 들여다보며 공부하는 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1~2주일 잘하는가 싶으면 다시 무너지고, 또 하루 이틀 잘 해내다가 다시 무너지고의 반복이었으니까요.
이는 저의 극심한 불면증과 경조증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약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불규칙한 생활 패턴과 슬럼프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제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했습니다. 남들은 다 꾸준히 무언가를 할 줄 아는데 저만 하루 컨디션을 주사위 던져서 결정하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럴 수록 제 삶은 피폐해져 갔고, 자존감은 날이 갈수록 무너져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건.
그날 제가 구상했던 시가 바로 오늘의 시, '성냥개비'입니다.
짧은 시간 맹렬하게 타오르다가 결국 꺼지는 성냥과
오랜 시간 꾸준하게 일정한 빛을 내뿜는 촛불.
이는 일정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컨디션의 기복이 있고 감정의 변화 폭이 넓은 사람들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시를 구상하면서 비로소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냥이 촛불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태어나기를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요.
자기 자신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간단히 말하면 '자기 수용'이 저의 자기혐오를 끊어냈습니다.
물론 이를 '노오력'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힐난할 사람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은 저와 같은 이들의 유전자, 환경,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노오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침 명상, 요가, 일기 쓰기, 운동, 그리고 정신과 약물 등과 같은 노력을 매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규칙적인 생활을 살 수 있냐고요? 하하하. 전혀요!
저는 여전히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아서 밤을 샙니다. 사람의 신체란 것이 정말 신기한 게, 타고난 형질은 무슨 수를 써도 고칠 수가 없어요. 그나마 이젠 그렇게 불규칙한 패턴에 대응하는 법을 알아서 나아지긴 했지만요.
그래도 저는 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촛불은 촛불 나름대로, 성냥은 성냥 나름대로의 쓸모가 있으니까요.
그때부터 저는 기쁘게 성냥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성냥'이신가요, '촛불'이신가요?
어떠한 삶을 살고 계시든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따뜻한 나날이 계속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