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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May 01. 2020

나의 시작, 그대들의 시작

아이 둘을 모두 데리고 동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탔다. 아들이 다섯 살 때 샀던 자전거가 작아져서 아들은 새 자전거를 장만해 주고 아들이 타던 자전거에 보조바퀴를 다시 달아서 딸에게 주었다. 아들과 딸이 나이 차가 다섯 살이 나다 보니 이럴 때는 좋은 점이 있다.

아들내미는 새로 사 준 자전거가 아직 좀 커서 혼자서 출발을 잘 못하고 낑낑댄다. 그래도 어찌어찌 출발하고 나면 원래 타던 자전거보다 훨씬 빨라진 속도에 신이 나는지 내려올 줄을 모른다. 아직 어려 아무리 보조바퀴를 달았다 해도 잘 탈 수 있을까 걱정되었던 딸내미는 웬걸 별로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자전거에 앉자 마자 본능적으로 발을 놀리더니 핸들도 척척 조작하고 혼자 알아서 잘 탄다. 오빠랑 다르게 겁이 없다. 언제 저렇게 컸나 싶다.


자전거 보조바퀴를 처음 떼던 날이 떠오른다. 햇살이 따가운 초여름날이었다. 이 정도 탈 수 있으면 됐다고, 이제 너도 충분히 컸다고, 보조바퀴 떼고 제대로 된 두발자전거를 한 번 타 보자고 아들과 함께 호기롭게 나섰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겁이 많은 아들은 아빠가 잘 잡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미처 페달을 밟을 겨를조차 없었고, 나는 자전거 꽁무니를 붙잡고 따라다닌 지 오 분만에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페달을 계속 밟고 핸들을 살짝살짝 움직여 가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누누이 설명해 보지만 그게 어디 말로 설명해서 될 일인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도 같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참고 한 시간을 버티다가 결국 내가 먼저 포기를 선언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아들은 기특하게도 수십 번 넘어지면서도 못하겠다는 말은 기어코 하지 않았다.


아들이 혼자서 자전거를 탈 수 있기까지는 그 후로도 몇 번의 연습이 더 필요했다.


무엇이든지 시작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얼마 전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3년차 신경외과 전공의가 첫 집도를 하다가 스스로 마무리짓지 못하고 교수님에게 수술을 넘기는 장면이 나왔다. 의사들은 이럴 때 야구 용어를 따서 '강판되었다'고 한다. 첫 집도라 공부도 많이 하고 마음의 준비도 하고 들어갔는데 결국 강판되어 버리고 좌절에 휩싸여 있는 전공의 3년차의 축 처진 어깨. 술 한 잔으로 툭 털어버리고 싶지만 당직이라 그마저도 못하고 병원을 지켜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 잠깐 지나간 에피소드였고 비중이 적은 조연의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 장면 하나하나가 그렇게도 공감이 되었다. 제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구원투수에게 공을 넘기는 심정은 아는 사람만 안다. 외과 의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이야기이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던 전공의 1년차 시절, 내가 수술을 집도해 볼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기회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니가 한 번 해 볼래?"

맹장염 수술 준비를 끝내고 조수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게 치프 선생님께서 느닷없이 말씀하셨다.

"제...제가요?"

"왜, 싫어?"

"아, 아니오, 그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

"싫으면 말고."

"아닙니다. 해 보겠습니다."

호기롭게 말은 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없었다. 수술을 보조하는 것과 수술을 집도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오퍼레이터 자리에 서니 그 동안 수없이 보았던 맹장염 수술 장면은 다 어디로 가 버리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메스를 쥔 오른손이 떨려 왔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긴장으로 허둥대느라 수술을 원활히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며 치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은 안 되겠다. 다음에 다시 하자."

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조수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치프 선생님께서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


수술이 끝나고 당직실에 틀어박혀 좌절과 부끄러움에 떨던 그날 밤을,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세월은 흘러흘러 나는 아버지가 되었고 교수가 되었다. 십여 년 사이에 배우는 입장에서 가르치는 입장으로 처지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가르치는 것은 배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걸음마부터 시작해서 말하는 것, 밥 먹는 것, 옷 입는 것, 자전거 타는 것까지 세상 모든 것이 처음인 아들. 배를 열고 닫는 것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배워나가야 할 수술들이 전부 '첫 집도'일 수밖에 없는 전공의들. 무엇이든지 시작이 가장 어렵고, 나는 아버지로서, 또 교수로서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해 나가야 한다.


오늘, 자전거 연습을 다녀온 밤마다 끊어질 듯한 허리를 부여잡고 신음해야 했던 아빠의 과거를 비웃듯 24인치 자전거를 쭉쭉 밀고 나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아직 서툴기 짝이 없는 우리 전공의 선생님들도 하다 보면 차츰 나아져 언젠가는 수술의 달인이 되겠지. 교수로서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일 게다. 강판의 유혹을 이겨내고.


그래, 그대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시작의 어려움을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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