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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Mar 20. 2020

코로나가 가져온 작은 변화

코로나 사태 이후 대구에 계시는 부모님께 전화를 매일 드리고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주로 퇴근길 운전 중에 블루투스로 전화를 하는데,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이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혹시 감기 증상이 있으신 건 아닌지, 밖에 돌아다니시지는 않는지, 마스크는 하시고 다니는지 체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잡담이 늘기 시작했다. 이십여 분 퇴근길 동안 무슨 할 말이 그렇게 있을까 싶지만, 별 시답잖은 이야기로 채우는 그 시간이 어머니는 그렇게도 좋으신가 보다. 집에 갇혀 있어 우울하다가도 아들 전화만 오면 힘이 난다고 하신다. 그저 전화 한 통에 불과할 뿐인데.


여느 경상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나는 유전자에 무뚝뚝함이 새겨져 있다. 무뚝뚝한 아버지를 보고 자랐고, 무뚝뚝한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고, 무뚝뚝한 친구들 사이에 섞여서 컸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상경한 이후에는 공부하랴 일하랴 갖은 핑계로 부모님께 전화를 자주 드리지 않았다. 실은 굳이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잘 지내고 있고 전화해도 별로 할 말도 없는데 괜스레 전화해서 어색한 몇 마디 하고 끊느니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십 년을 살았다. 그 때는 몰랐다. 꼭 무슨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전화로 그저 아들 목소리 한 번 들려드리는 것이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내가 두 아이의 아비가 되어 생각하니, 부모님께서 무심한 아들을 둔 덕에 얼마나 속으로 서운하셨을지 짐작이 된다.


얼마 전, 대구 본가에 잠자고 있던 십오 년 전 해외여행 비디오 테이프를 전문 업체에 맡겨 디지털 파일로 변환했다. 마치 타임캡슐을 개봉한 듯 그 때 그 시절 영상이 흘러나오는데 낄낄거리면서 한참을 보다가 문득 서글퍼졌다. 영상 속 어머니 아버지는 그렇게 젊으실 수가 없었다. 흰 머리 하나 안 보이고 이마에 주름 하나 없는 두 분의 모습이 낯설어 슬펐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하지만 두 분만은 세월도 이겨 내실 줄로만 알았는데, 어쩔 수 없는 늙으심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아버지는 물론이요 어머니도 이제 올해 가을이 되면 만 65세 국가에서 공인한 노인이 되신다고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그 세월이 못내 야속하다.


엊그제 수술이 늦어져 하루 건너뛰고 다음 날 전화를 드렸더니 어제는 왜 전화를 안 했느냐며 저녁 내내 기다렸다고 하신다. 안부 전화는 이제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고작 전화 한 통 무엇이 어려우랴. 부모님의 정겨운 목소리와 함께할 퇴근길을 오늘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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