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장 한켠에 마련된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중년 남자 셋이 초조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삼형제인 것 같았다. 할머니, 아들 부자셨네요. 그러면 뭐해요, 할머니 몸이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도 몰랐는데. 아들자식 키워 봐야 다 소용 없다니까요.
'그동안 아픈 데 없이 건강하셨으니까', '바빠서 자주 찾아 뵙질 못해서', '시골에서 내외 분만 사시다 보니',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만큼 할머니의 복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종양은 거대했다. 할머니의 수명을 조금씩 갉아 먹고 있었음이 분명한 그 어마어마한 종양을 할머니의 배를 가르고 마주한 순간 나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필시 배가 아프셨을 텐데, 분명히 종양이 겉에서 만져졌을 텐데, 가족 누구라도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종양이 한 뼘 크기로 자랄 때까지 까맣게 몰랐던 가족들의 무심함을 나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수많은 응급수술을 하면서도 절대 보호자를 탓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왔는데, 오늘만은 그 원칙을 어기는 한이 있어도 나의 이 분노를 전하리라 독하게 마음먹고 보호자들을 마주했다. 막내 아들로 보이는 남자의 간절한 눈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 지경이 되도록 대체 뭘 하셨느냐고, 어떻게 이렇게 종양이 커질 때까지 모르실 수가 있냐고 따지려던 마음이 아들의 눈빛 하나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날선 한 마디를 뱉어내며 잘라낸 종양을 덮고 있던 포를 걷었다.
"자, 이것 좀 보세요."
세 남자는 동시에 헉 소리를 뱉어 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내 두 주먹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종양을 직접 보고서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었다. 아들들의 얼굴에 후회와 회한의 감정이 서렸다. 어머니를 좀 더 가까이서 지켜 봤어야 했는데.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는지 살폈어야 했는데. 이게 다 저희들 탓입니다. 못난 자식들 탓이에요. 삼형제의 마음이 말을 하지 않아도 찰나의 시간동안 표정으로 전부 전해졌다. 이번만큼은 이게 다 당신들 때문이라고 차갑게 쏘아 주리라 다짐했건만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보호자들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입만 바라보며 애타게 다음 말을 기다리는 아들들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암은...... 완전하게 절제했습니다. 뱃속에 남아 있는 암은 이제 없어요."
그 한 마디에 아들들은 오열하며 무너져내렸다.
"으흐흑,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암이 너무 진행해서 절제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목포에서 화순까지 달려왔는데, 겨우 도착한 종양내과 외래에서는 할머니 체력이 너무 약해져서 항암치료도 어려우니 증상 조절 목적으로 장루 수술이라도 받으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환자를 응급실로 보냈으니, 요 며칠 사이 의사들에게서 전해들은 한마디 한마디가 보호자들에게는 얼마나 청천벽력과도 같았겠는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머니를 들여 보낸 수술장에서 암을 완전히 절제해 냈다는 대반전이 일어났으니 형제들이 손을 맞잡고 오열하는 것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는 남자들 앞에서 더 이상의 말은 소용이 없었다. 오늘만큼은 독하게 마음 먹고 상처를 주리라 준비했던 말들은 결국 허공으로 모두 흩어져 버렸다. 암이 너무 커져서 주요 혈관과 달라붙어 있어 떼어내느라 애를 먹었다는 말도, 혈관 기시부에 바싹 붙어 있는 림프절을 제거하느라 출혈이 꽤나 있었다는 말도.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삼형제 앞에서 말문이 막혀버린 나머지 나는 아무런 말도 더 하지 못하고 상담실을 나섰다.
수술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할머니의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종양으로 인해 근 한 달간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기력은 이미 수술 전부터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비록 두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은 수술이었지만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바닥난 체력으로 극복해 내기는 쉽지가 않았다. 할머니는 쉬이 일어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만 있었고, 장마비가 지속되면서 미음 한 모금 넘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섬망 증상이 심해져 수액이고 소변줄이고 뭐고 라인이란 라인은 다 잡아 뽑으려고 하는 통에 양손을 묶어 두어야만 했다.
그런 할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삼형제가 아닌, 간병인 아주머니였다.
각자 생업이 있기에 자식들이 직접 간병을 하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회진을 갈 때마다 간병인 아주머니만 환자 곁에 있는 것을 볼 때 섭섭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꼭 보호자가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술 당일 상담실에서 보호자들이 흘린 눈물의 양을 생각하면 왠지 삼형제 중 한 명은 어머니를 지키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분명 내 욕심이고 과도한 요구임을 알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어깨 수술을 받고 입원하셨을 때도 나는 겨우 한 번 면회를 갔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그리도 고생을 해 가면서 기어이 종양을 떼어내고야 만 환자인데. 꼭 살려야 하는 환자인데. 종양을 완전히 절제해 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열했던 보호자들은 모두 어디 가고 간병인만이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고, 다행히 무사히 회복하여 퇴원한 할머니가 퇴원 후 첫 외래 진료를 오는 날이 되었다. 이번에는 막내 아들과 함께였다. 퇴원할 때는 휠체어에 앉은 채였는데 그사이 기력이 많이 회복되셨는지 아들의 손에 의지해 걸어서 오셨다.
“할머니, 퇴원하고 잘 지내셨어요?”
“응, 뭐라고?”
가는귀가 먹은 할머니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할머니 귀에 가까이 대고 또박또박 외쳤다.
“괜.찮.으.셨.냐.구.요.”
할머니는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어떤 건지 동문서답을 했다.
“늙으면 죽어야 허는디, 안 죽고 살아서 자식들 귀찮게 허네잉. 우리 막내 아들 회사도 빼먹어 불고.”
“아이고, 엄니도 참. 그런 말씀일랑 하덜 마씨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모실 것잉께.”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은 따스함으로 가득했다. 부디 앞으로는 삼형제의 보살핌 아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마음 속으로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