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Jan 11. 2020

아내의 둘째 출산 예정일 바로 전 주말이었다. 이미 한 번 경험해 보아서 그런지 첫째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얼마나 예쁜 아이가 나올지, 손가락 발가락은 제대로 다 달려 있을지, 항문은 제대로 제 위치에 달려 있을지 (이건 대장항문외과 전문의의 직업병 같은 것이다), 이런 걱정에 더하여 첫째를 키운 그 고생을 어떻게 다시 반복할지, 첫째는 그나마 서울에서 장모님의 도움을 받아 키웠는데 광주에서 우리끼리 잘 키울 수 있을지, 아이가 둘이면 세 배로 힘들다는데 정말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이런 현실적인 걱정들 때문에 마냥 기쁘고 설레지만은 않았다. 이래저래 정신 없는 와중에 제발 병원에는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하지만, 환자가 아픈 것이 본디 의사의 사정까지 고려해 주지는 않는지라, 여지없이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K는 얼마 전 수술했던 직장암 환자였다. 상당히 진행을 많이 한 상태로 종양의 크기는 큰데 반해 남자 환자의 특성상 골반이 좁아 수술이 어려웠었다. 토요일 아침 출근을 해 보니 K는 복통을 호소하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응급상황이다. 배액관 양상이 변 색깔로 바뀐 것으로 미루어 필시 문합부 누출이다. 다른 검사를 시행할 것도 없이 곧바로 응급수술을 시행했다. 상황은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직장암에 의한 부분 폐색이 있어 장정결이 깨끗하지 않았던 상태라 복강 전체가 변으로 심하게 오염되어 심각한 패혈증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보험삼아 만들어 둔 회장루는 문합부 누출을 막아주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문합부를 뜯어내고 하트만 술식으로 전환하는 와중에도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처음부터 하트만 수술을 해야 했을까. 물론 처음 수술할 당시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내린 판단이 문합 후 회장루를 조성하는 것이었고, 이 모든 것이 결과론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이 괴로움을 덜어내 주지는 못하였다. 게다가 곧 있으면 출산 예정이라 한 이틀 쉴 예정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욱 옥죄었다. 휴가를 앞두고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그만큼 곤란한 일이 또 없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뒤로 하고 마음 편히 휴가를 떠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앞두고 내 환자들만큼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런 바람이 무색하게도 K의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수술 이후에도 K는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었다. 혈압이 유지가 안 되어 승압제를 최대용량으로 투여하였고 심방세동으로 인해 맥박은 오르락 내리락 춤을 추었다. 심한 패혈증으로 다발성 장기부전이 온 상황. 회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K의 아내와 아들이 병원을 지키다시피 매일 면회를 왔다. 수술 후 합병증이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내 가족에게 합병증이 생기면 의사부터 원망하고 보는 보호자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K의 보호자들은 달랐다. 내가 중환자실에 나타날 때마다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제발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다. 그 절박함은 중환자실의 공기마저 간절함으로 물들이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제가 꼭 살려 드리겠습니다 라는 확신에 찬 다짐을 해 줄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고 있지만 회복 여부는 경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좀 더 기다려 봅시다. 보호자들은 고작 이런 말밖에 하지 못하는 내 면전에 대고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제발 잘 좀 부탁합니다. 살려만 주세요. 그 간절함으로 물든 공기가 환자의 폐포 속으로 스며들어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출산 전 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 하고 퇴근했다. 환자 곁에 있는 시간만큼 환자가 회복할 수 있다면 중환자실에서 얼마든지 상주할 용의가 있지만, 듬직한 3년차 전공의가 불철주야로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데 담당 교수가 병원에 있다고 하여 크게 도움이 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집에는 지금 돌봐주지 않으면 평생 원성을 쏟아낼 지 모르는 만삭의 아내가 있지 않은가. 내일이 출산인데 이 기쁜 날을 앞두고 무거운 마음을 겉으로 드러낼 순 없었다.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무거운 마음은 가슴 깊이 숨긴 채 설렘과 두근거림만 보여주기로 했다. 아내는 첫 번째 제왕절개 수술 당시의 기억이 머리에 강하게 남아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긴장해 있었다. 걱정하지마. 다 잘 될 거야. 퇴근해 있는 동안에는 병원 일은 잊고 아내에게만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다행히 아내는 남편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는 듯하였다.

“이OO 산모님 보호자분, 아기와 산모 모두 건강하게 출산하였습니다.”
마침내, 둘째가 세상의 빛을 보았다.
둘째를 얻은 기쁨은 첫째 때와는 또 달랐다. 첫째 아들은 심실중격결손이 있어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중환자실로 가는 바람에 차마 제대로 만져볼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둘째는 달랐다. 갓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나와 보여주는데 포대기 밖으로 삐죽 삐져나온 손가락이 어찌나 길고 예쁘던지! 아직 머리카락이 채 마르지도 않은 딸을 품에 안았을 때의 그 벅차오름을 어찌 형언할 수 있으랴. 벌써 아빠 품을 아는지 평온하게 안겨 꼬물거리는데 바라만 보고 있어도 세상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 나도 아들 딸 다 있는 아빠예요. 내가 해냈습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딸바보 아빠가 하나 추가되었다는 사실을 온갖 SNS와 메신저를 통해 동네방네 다 소문 내었다. 그래,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였다. 오늘만큼은 백 배 천 배의 기쁨을 누려야지. 자기야, 정말 고생이 많았어.
하지만, 기쁨으로만 가득 차 있던 감정은, 그날 오후 병원으로부터 걸려온 전공의의 전화에 산산이 깨어졌다.
“환자 전반적인 상태는 크게 변화가 없습니다만, 환자 손이 괴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인가. 패혈증이 심하여 혈압이 유지가 되지 않는 경우에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승압제를 고용량으로 오래 투여하면 말초혈관수축이 과도하게 지속되어 사지 말단과 같은 부분이 허혈성 괴사에 빠질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이고, 실제로 전공의 시절 1례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왜 하필 내 환자에게. 하필이면 지금. 기뻐할 시간도 턱없이 모자란 바로 지금!
상황은 순식간에 온전히 기뻐할 수도 온전히 괴로워할 수도 없는 아이러니로 빠져버렸다. 문제는 지금 내 주변 누구에게도 이 상황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진통제에 취해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 첫째를 데리고 집으로 먼저 가신 엄마, 아버지, 장인어른, 장모님. 그 누구도 작금의 사태를 설명하고 같이 슬퍼해 달라고 하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오늘 둘째 딸이 나왔는데, 좋은데, 그건 그렇고, 사실 내 환자 손이 오늘부터 썩기 시작했어요. 이런 말을 지금 상황에서 대체 누구와 나눌 수 있겠는가.
극단적인 감정의 충돌 속에 이틀을 혼자서 끙끙 앓다가,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자마자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아직 손가락을 살릴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며, 좋아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가슴에 품고, 드레싱되어 붕대에 꽁꽁 싸매진 손을 조심스레 풀었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오른손 전체, 왼손 손가락 끝마디 전체, 오른발 세 번째 네 번째 발가락 모두 이미 괴사가 진행되어 비가역적인 상태로 변해 있었다. 마취 없이도 관운장을 수술한 화타가 재림한다 한들 이 손을 되살릴 순 없었다. 이 사태를 보호자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직장암으로 수술을 했는데 합병증으로 손이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보호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머리가 아팠다. 신경성 복통이 스물스물 올라오려 했다.

“외과계 중환자실 K환자 담당 간호사인데요, 오늘 보호자분이 교수님과 꼭 면담 원하십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어차피 한 번은 부딪쳐야 하는 일.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아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버님 상태는 아직 희망적이지 않아요. 승압제 없이는 혈압이 유지가 안 되고 다장기부전으로 인해 소변이 나오지 않아 인공투석기계를 달고 있어요. 호흡도 인공호흡기에만 의지하고 있는 상태이고요. 앞으로 이삼 일이 고비입니다. 조금씩이라도 회복 양상을 보이면 좋아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고요, 악화 일로에 들어서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네……그렇군요. 부디 잘 좀 부탁드립니다. 저기 그런데, 손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손은……손은……”
조용히 심호흡을 하고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손은 승압제 때문에 발생한 어쩔 수 없는 합병증입니다. 말초혈관수축으로 인해 드물긴 하지만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이지요. 현재로서는 경과를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후에 아버님 상태가 호전되면 절단수술을 고려해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정형외과와 상의해 봐야 합니다.”
“아……네.”
아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이미 간호사로부터 일정 부분 설명을 들어서 그런 것인지, 원래 성격이 차분해서 그런 것인지,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인지, 하여간 K의 아들은 이 모든 상황을 아무런 불평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아니다,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 절대 그럴 수는 없는 거다. 병원에서 살다시피 아버지 곁을 지키는 아들이었다. 아버지를 끔찍이 사랑하는 것이 아버지를 대하는 눈빛 하나 손짓 한 번으로 느껴지는 그런 아들이었다. 타들어 간 듯 꺼멓게 변해버린 아버지의 손을 쓰다듬는 아들의 감정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태연함 속에 감추고 있을 눈물, 그 눈물이 아무 말을 하지 않는데도 마음으로 전해져 가슴을 후벼 팠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닌 줄 알면서도,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은 자책감이 밀려왔다. 불가항력이라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 우울감이 온 몸을 덮쳤다. 어깨에 걸쳐진 내 가운이 원래 이렇게 무거웠던가. 벗고 싶다. 내려놓고 싶다.

한 달이 지났다. 한여름의 태양이 작열하는 가운데, 다행스럽게도, 조금씩이나마 K의 상태는 호전되어 갔다. 2주간 의지하던 인공호흡기를 떼고 자발호흡을 시작했고, 장루가 기능을 제대로 하기 시작하면서 튜브를 통한 경장영양공급도 시작하였다. 일반병실로 옮긴 후 아내가 항상 곁을 지키게 되면서 환자의 정신도 점차 맑아져 갔다. 피검사 수치도 염증이 거의 사라져 패혈증에서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모든 것이 희망적이었다. 그러나, 손, 그 손, 회진 때마다 내 심장을 도려내는 그 손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 정신이 돌아오면서 까맣게 말라붙어 버린 손끝을 보게 된 K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과 사를 넘나드는 악전고투를 겪으며 갖게 된 훈장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남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낙인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 속을 알 수 없게도 K는 회진 때마다 나를 보며 미소 지었고, 나는 그 미소가 더욱 가슴 아팠다.
K는 수술 후 두 달째 휠체어를 탈 수 있을 정도가 되어 퇴원을 했다. 도무지 아물 것 같지 않던 내 마음의 상처들도 조금씩 옅어져 갔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부쩍 더 수척해진 얼굴로 K가 휠체어를 타고 아내, 아들과 함께 외래 문을 밀고 들어왔다. 정기 검사 결과는 좋지 않았다. 수술 후 3개월만에 간, 폐, 대동맥주위 림프절에 전이가 발견되었다. 아문 줄 알았던 마음의 상처가 다시 툭 벌어졌다. 비록 손은 이렇게 되었지만 수술 후 경과는 좋다고, 오래 사실 거 같다고, 웃으며 말하고 싶었는데. 나는 또 환자와 보호자의 심장을 내려앉게 만드는 절망적인 말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재발하였습니다. 간, 폐, 원격림프절에 다발적으로 재발했어요. 진행이 예상보다 빠릅니다. 항암이 어려운 상태이니, 진행은 앞으로도 빠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사시게 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여명이 그리 길지는…”
냉정하게 말을 맺을 수가 없어 말끝을 흐렸다. 이 모든 불행이 나로 말미암은 것만 같았다. 침묵. 차라리 수술 결과가 왜 이렇게 나쁘냐고 하소연이라도 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현재의 의료라는 것이 한계가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이라도 할 텐데, 아무 말이 없다. 긴 한숨 끝에 K의 아내가 말을 꺼냈다. “교수님께서 고생해서 치료해 주셨는데. 어쩔 수 없지요, 뭐.” 내가 변명 삼아 꺼내야 할 말을 환자 보호자가 먼저 해 버리니 나는 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이 모든 설명을 듣고도 K는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말하고 외래를 나섰다. K가 사라진 외래 출입문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대체 뭐가 그렇게 고마울까.

둘째가 크면 꼭 이야기해 줄 것이다. 아빠가 반드시 살리고자 했던 환자가 한 명 있었단다. 네가 태어나던 바로 그 순간에 중환자실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환자였지. 아빠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그 환자는 삶을 이어가는 대가로 손을 잃고 말았어. 하지만 삶의 의지만큼은 누구보다도 단단했고, 손을 잃고도 아빠를 향해 환히 미소를 지어 주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딸아, 어둠이 없이 빛이 존재할 수 없듯, 삶이 있으면 반드시 어딘가에는 죽음이 있는 거란다. 네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만큼 자라는 동안 그만큼의 생명이 아프고 스러져갔음을 꼭 기억하렴.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야 한다. 알겠니?
하지만, 이런 개똥철학 따위로는 조금의 위로도 되지 않을 만큼, 그 해 여름은, 정말, 너무나도 아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