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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pr 03. 2021

불면의 밤

녹초가 된 몸을 침대에 누인다. 마지막 남은 힘을 밑바닥까지 쥐어 짜내어 운전을 해서 집에 돌아왔더니 손가락 하나 들어올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 어마어마한 응급수술이었다. 방광과 말단회장까지 침범한 에스상결장암이 폐색을 일으켜 대장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침범해 있는 말단회장을 포함하여 오른쪽 결장을 우선 박리하여 절제해 내고 골반 입구를 가득 차지하고 있는 종양을 주변조직에서 분리해 낸 후 방광을 포함하여 일괄절제하고 방광을 다시 꿰매 재건해 준 대공사였다. 종양이 양쪽 요관과 들러붙어 있어 분리해 내느라 애를 먹었고 후복막으로 침윤된 종양을 분리해 내는 과정에서 천골앞정맥총에서 발생한 출혈이 지혈이 잘 안 되어 그야말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수술은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었지만, 모든 집중력을 쏟아 부어버린 나는 영혼이 모두 빠져나간 육신을 이끌고 귀소본능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와 간신히 침대에 몸을 부렸다. 눕는 동시에 잠에 빠져들 것만 같다.

아니다. 사실 잠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아니나다를까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자꾸만 또렷해지고 있다. 극도의 집중 상태로 보낸 몇 시간의 수술 동안 과도하게 항진된 교감신경이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는다. 심장이 아직도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다. 잠이 들 턱이 없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떨어지고 마는 외나무다리를 서너 시간의 사투 끝에 겨우 건너고 나면 그 긴장을 가라앉히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수술을 복기해 본다.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출혈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었을까? 좌측 요관은 종양과 너무 가깝게 붙어 있었는데 분리해 내고 말 것이 아니라 절제를 해야 했었나? 방광은 내가 직접 꿰맬 것이 아니라 비뇨의학과 당직 교수님을 호출하여 부탁드리는 게 나았을까? 아니지 그러면 비뇨의학과 교수님 오시는 시간까지 합치면 최소 한 시간은 더 걸렸을 텐데? 아까 배를 열다가 손상을 입은 소장을 내가 꿰맸던가? 마지막에 배를 닫을 때 장 정리는 제대로 하고 닫았었지? 아 참, 전공의에게 폴리 카테터는 최소 일주일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잊어버렸네. 내일 가서 잊어버리지 말고 말해야겠다.

밤은 깊어가고 나는 눈꺼풀을 들어올릴 힘조차 없어 눈을 감은 채로 온갖 상념에 빠져 든다.


“정말 대장항문외과 할 거니?”

세부 전공을 대장항문외과로 하기로 마음 먹었던 4년차 가을 무렵, 선배가 물었다. 원래도 친했지만 내가 크론병을 얻게 된 이후로 더욱 가까워진 누나였다. 실은 누나의 남동생도 크론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나의 세부 전공도 대장항문외과이면서, 내가 대장항문외과를 선택한 것이 못마땅한 말투였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물었다.

“네……안 될까요?”

선배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절대 아니지. 나야 네가 대장항문외과를 같이 한다면 언제든지 환영이지. 다만……”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여전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나를 향해 선배가 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네가 가능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았으면 해서. 대장항문외과는 응급도 많고 험한 환자들도 많잖니. 너도 알다시피 크론병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좋을 게 없거든. 외과를 선택한 거야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지만, 세부 전공이라도 좀 스트레스 덜 받는 분과로 선택을 해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어떤가 싶어서. 내 동생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그래.”

누나는 정말 진심을 다해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도 고려하지 않은 바가 아니었다. 크론병을 처음 진단받았던 3년차 때에는 몸도 마음도 이래저래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휴미라를 맞은 이후 몸은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었고, 지금 정도의 컨디션이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생명을 다루는 최전선에 있고 싶었다. 외과를 선택한 초심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나를 생각해 준 선배의 마음은 눈물겹게 고마웠지만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할래요, 그래도. 저 괜찮을 거 같아요.”

“그래,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너 같은 후배 들어오면 나야 언제든 대환영이다.”

“그렇죠? 제가 좀 잘 하잖아요.”

누나는 특유의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일말의 안쓰러움이 남아 있었다.


대학병원 외과 의사의 삶은, 내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환자의 생명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하루 24시간 365일을 두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생명이 촌각에 달린 응급 수술이 이어졌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수술은 필연적으로 일부 환자에서 합병증을 동반했고, 재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때마다 스트레스는 배가 되었다. 이따금씩 복통이 찾아올 때면, 내가 괜한 선택을 해서 스스로를 옭아맨 것이 아닌지 되물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2주 전에 사경을 헤매며 응급실로 왔던 환자가 회진 때 환한 얼굴로 병실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나면, 수술한 지 5년째가 되어 완치 판정을 받고 고개를 연신 숙이며 고맙다고 하는 환자를 외래에서 만나고 나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힘을 낸다.

환자들은 내 스트레스의 원흉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외과 의사로서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고, 나는 P를 생각한다. 코로나에 파업에 어려웠던 지난 일 년을 함께 견뎌내고 어엿한 대장항문외과 세부전문의로 성장하고 있는 든든한 동생. 응급 수술에 논문 작업에 이런 저런 요구에도 묵묵히 제 할 일 하는 믿음직한 후배. 하지만 한 가지,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건강에 이상이 발견되었고, 그래서 걱정이다. 대학에서 스탭으로 지내는 것이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믿고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얻고 싶다는 마음과 후배의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그 때 그 선배의 마음이 나와 같았을까?

모든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대장항문외과를 선택한 것은 나의 선택이고, P의 선택이었다. 나는 크론병을 안고서도 대장항문외과를 선택했고, 힘들고 버겁다고 느낄 때도 많았지만,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잘 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깊어가는 불면의 밤, 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나와 P의 앞날에 건강한 미래만이 놓여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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