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Nov 27. 2020

벌써 10년

오늘이 벌써 결혼 10주년입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요. 십 년 전 풋풋했던 우리는 어디로 가고 두 아이의 엄마 아빠로 함께 나이 들어가는 아줌마 아저씨만 남았습니다. 가는 세월 붙잡고 싶지만 그럴 수가 있나요.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지난 십 년동안 참 열심히 살았다는 격려를 스스로에게 해 봅니다.


코로나라는 녀석, 참 야속하기 짝이 없습니다. 10주년이 되면 아이들은 맡겨 두고 둘이서만 해외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완전히 틀어져 버렸습니다. 어디 가까운 제주도나, 하다 못해 서울이라도 갔다 오려던 계획마저도 지난 주부터 시작된 코로나 재유행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십 년 중 하루일 뿐이라는 위로로는 결혼 기념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아내의 마음을 절대 채워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꽃을 사들고 일찍 퇴근해서 저녁을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아내는 바질페스토 파스타를 해 달라는데 내가 뭘 할 줄 안다고 저런 걸 만들어 달라는 걸까요. 오늘 저녁을 먹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결혼식 날이 기억납니다. 11월 때이른 눈발이 아침부터 흩날렸더랬습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나오니 그새 하얗게 쌓인 눈이 온 세상을 순백으로 덮고 있었습니다. 결혼식 날 눈이 오면 잘 산다는 속설을 어디서 들은 터라 기분 좋게 결혼식장으로 향했습니다. 눈 때문에 대구에서 하객들을 모시고 올라오는 버스가 늦을 뻔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하마터면 어머니도 늦으실 뻔했지요.

그 때는 신랑이 스스로 축가를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저도 왠지 시류에 편승해야 할 것 같아 노래를 연습했습니다. 반주자의 피아노에 맞추어 부르기로 했는데,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반주와 같이 연습 한 번 안하고 바로 실전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결과는...... Ra.D의 'I'm in love' 노래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보니 중간에 틀려서 네 마디를 빼먹고 불렀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하객들이 많아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결혼 10주년을 맞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보여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번에는, 무려,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슨 노래를 해 줄까 고민하다가 이적의 '나침반'을 골랐습니다. 아직 내겐 너라는 선물이 있다는 노래 가사가 예뻐 마음에 들었습니다.

문제는, 세상의 예쁜 노래는 다 어렵습니다.

더 큰 문제는,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훨씬 더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피아노든 노래든 한 가지는 완벽하게 해야 다른 한 가지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텐데 피아노도 노래도 둘 다 삐걱거리니 엉망진창이 따로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당최 연습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깜짝 선물로 준비하는 곡을 아내가 있을 때 대놓고 연습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주말에 가끔씩 아내가 자리를 비울 때에만 몰래몰래 연습을 하다 보니 연습을 해도 소용이 없이 다음 연습때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의 반복입니다. 몇 달이 지나도 전혀 좋아지지 않다 보니 점점 초조해집니다. 하늘이 도우사 지난 주말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 두 시간동안 미친 듯이 연습했습니다. 피아노와 노래에 집중을 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 날 저녁 두통이 와서 일찍 자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무슨 일 있냐고 자꾸 캐물어서 얼렁뚱땅 넘어가느라 혼났습니다.


드디어 D-day 인데, 가슴이 막 두근두근합니다.


자기야,

그동안 나랑 살아 주느라 수고가 많았어.

항상 행복하자.


아, 이 글을 퇴근하기 전에 아내가 먼저 읽으면 안 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