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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Mar 04. 2021

교수님께서 직접 수술하시지요?

"드르렁~~~퓨~~~~~~. 드르렁~~퓨~~~~~~~."


수술 준비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수술방에 들어가니 코 고는 소리가 사방천지에 진동한다. 척추마취 하에 경항문 종양 절제술이 예정되어 있는 할아버지다. 척추마취를 해서 통증은 없더라도 수술 중에 깨어 있는 것이 심리적으로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대개는 미다졸람(Midazolam) 등으로 환자를 가볍게 재워서 수술을 한다. 물론, 가끔은 적은 용량에도 깊은 잠에 빠지는 환자들도 있다. 이 할아버지처럼.


"아이고, 시끄러워서 수술을 못 하겠네요."

스크럽을 하고 들어오며 너스레를 떨었더니 간호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내내 교수님 기다리다가 이제 막 잠드셨어요."

"그래요?"

"네. 교수님이 직접 수술하시는 거 맞냐고 자꾸 물어보시더라고요."

하이고 이것 참. 제가 직접 하지 그럼 누구한테 맡기겠어요. 누가 대신 수술하는 거 아닌지 걱정되어서 대체 잠은 어떻게 주무시나 몰라.


수술이 끝나고, 여전히 깊게 잠들어 있는 환자를 흔들어 깨웠다.

"환자분, 수술 잘 끝났어요."

"응?"

할아버지는 아직 잠에서 덜 깨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미다졸람의 영향으로 어차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잘 못하시게 될 걸 알면서도, 할아버지의 무의식에라도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다시 한번 외쳤다.

"수.술.잘.끝.났.다.고.요!"

내 목소리로 혼을 담아 외쳤으니, 담당 교수가 직접 수술했다는 믿음이 할아버지의 기억 저편에 아로새겨지지 않았을까.



외래 진료를 보다 보면 흔히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원장님께서 직접 수술하시지요?"


대리수술이다 뭐다 잊을만하면 방송에서 신문에서 떠들어대니 정말 담당 교수가 수술하는 게 맞는지 다들 그렇게 걱정되시나 보다. '우리 병원 원장님은 따로 계시고 원장님은 진단검사의학과 전공이라 수술은 못하십니다. 원장님 대신 제가 수술하면 안 될까요?'라고 신소리를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기에는 기다리고 있는 외래 환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기에 단호하게 한 마디만 하고 만다.

"그럼요."


그렇다고 단호하게 대답은 했지만, 모든 수술의 모든 과정을 내가 직접 다 하느냐를 물어보는 거라면 대답은 '아니오'이다. 피부 절개(skin incision)부터 시작해서 폐복(skin closure)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모두 집도하는 경우를 일컬어 '스킨 투 스킨 (skin to skin)'이라고 하는데, 초응급상황이라 일분일초도 허비할 수 없어 내가 직접 해치워버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집도의가 혼자서 수술을 마무리하게 되면 대학병원의 또 하나의 목적인 '수련'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수술을 처음 배우는 외과의사라면 누구라도 예외 없이 배를 열고 닫는 것부터 시작하게 된다. 나 역시도 환자의 배를 처음 갈라 본 때가 있었고, 그 때 느꼈던 메스 끝의 서늘한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한 실제적인 감각은 환자를 상대로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체득하기 어렵다. 내가 스킨 투 스킨으로 수술을 끝내버리면 수술은 빨리 끝날지 몰라도 내 수술에 들어온 전공의나 펠로우는 수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내 입장에서는 내가 직접 하는 것이 훨씬 속 편하다. 내가 하면 오 분도 채 안 걸릴 과정을 어떻게 할지 망설여가며 십 분씩 이십 분씩 붙잡고 있는 전공의/전임의 선생들을 '강판'의 유혹을 이겨내고 지켜 보는 것은, 내가 직접 수술을 할 때보다 몇 배의 집중력과 몇십 배의 인내심을 요한다. 그럼에도 꾹 참고 하나하나 가르치는 것은, 그것이 대학병원에 소속된 교수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교수의 감독 하에 걸음마를 배우듯 하나하나 해 보아야 수련의들이 어엿한 외과 의사로 거듭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집도'하는 '내 수술'이다. 전공의/전임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 능력 내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수술을 경험하게 해 주며 그 모든 과정과 결과까지도 책임지는 것이 내 역할이다. 일부 과정을 전공의/전임의들에게 맡기더라도 내가 했을 때와 아무런 차이가 없게 만드는 것까지가 내 임무이고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제 이름을 걸고 하는 모든 수술은 제가 합니다.

그러니 걱정 붙들어 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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