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3학년 외과 실습을 돌던 11월 어느 무렵, 보라매병원에 실습을 나간 나는 외과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매 수술마다 당연히 스크럽을 섰고, 리트랙터를 당기는 단순한 임무일 뿐이었지만 수술에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수술 필드 근처로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벽에 붙어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던 정형외과 실습 때와는 전혀 다른 실습 분위기에 절로 신이 났다. 한 번은 충수절제술에 참여해서 충수돌기를 직접 Metzenbaum으로 잘라내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박리와 혈관 결찰이 모두 끝난 충수돌기를 그저 수술용 가위로 절제하는 것뿐이었지만 그게 그렇게도 뿌듯할 수가 없었다. 나와 친구 L은 집에도 가지 않고 저녁 내내 이어진 응급이란 응급은 모두 참여했고, 수술이 끝난 이후의 늦은 저녁식사를 겸한 회식자리(출격!)에도 당연히 참석했음은 물론, 버스가 끊겨 집에 못 가는 날에는 전공의 당직실에서 끼어서 잤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온갖 농지거리를 하면서도 수술 하나는 칼같던 3년차 K 선생님, 작지만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 주셨던 2년차 L 선생님, 항상 온화한 미소로 따뜻하게 대해 주셨던 1년차 J 선생님. 돌이켜보면 그 일주일의 기억이 외과를 선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한 이 글이 꼰대같아 보일까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오늘 SNS에서 떠도는 의학과, 의예과 대나무숲의 글을 보았다. 수술 참여시켜주려는 것은 좋은데 스크럽 서 봐야 딱히 얻어 가는 것도 없는데 돈을 내고 배우러 온 학생을 인력으로 써먹는 것 같아 불쾌하다는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온갖 댓글이 달렸다. '학생, 그건 학생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류의 점잖은 충고와 '내가 학생 때는 서로 참여하려고 안달이었는데 세상 많이 변했네' 류의 옛날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관심도 없는데 수술 필드 보여주는 게 무슨 소용이냐 꼴같잖게 ㅋㅋㅋ'라는 용감한 댓글은 뭇 사람들로부터 '이따위 인성으로 무슨 의사를 하느냐'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글쎄. 저기에 댓글을 단 사람들 중 현직 대학병원 외과계 교수가 얼마나 있을까 싶은데.
대학병원에서 실습학생을 매주 마주하는 외과 교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꼴같잖다는 댓글이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학생이 수술방에 참관을 들어오면, 매번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물어본다.
"이 환자는 어떤 환자인가?"
대단한 것을 기대하고 물어보는 질문이 아니다. 그저 지금 수술하는 환자가 어떤 증상으로 와서 무슨 검사를 하고 어떤 진단을 받았는지, 수술 전에는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어떤 수술을 받을 예정인지 정도는 알아야 수술을 참관할 것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 학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아니, 사실은 학생들은 별 생각이 없다. 학생들에게 병원 실습이란 2학년까지 이어진 공부-시험-공부-시험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일 뿐이다. 병원 실습이 2학년까지 책으로만 배운 지식을 직접 경험하고 실력을 다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똑똑한 학생들이지만 외우라는 것을 외우는 공부에만 길들여져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이 결여된 친구들이다. 떠먹여 주기 전에는 스스로 찾아서 먹을 줄을 모른다. 불과 십여 년 차이 나는 내가 봐도 그런데, 시니어 교수님들의 눈에 비친 학생들은 오죽할까.
실습을 시작한 3월부터 물어보기 시작한 저 단순한 질문에, 학생들이 제대로 대답을 하기 시작한 것은 5월이 되어서였다. 내가 매주 질문을 하고 대답을 못하면 한숨을 쉰다는 것이 실습학생들 간에 인계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뭐 때문에 수술하는지도 모르고 멍하니 서 있는 것보다는 억지로라도 환자 차트라도 한 번 열어 보고 오면 조금은 낫겠지 싶어서 여전히 물어보고 있다.
이럴진대, 하물며, 수술 스크럽이라.
아무 관심 없는 학생이 태반이고, 나처럼 하루종일 수술장에 처박혀 있는 것이 너무 좋은 학생이 한두 명 섞여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누구인지도 모르는 일부 학생들을 위해 모든 학생을 수술에 참여시키는 것은 교수로서 사실 부담스럽다. 지난 해에는 모 과에서 수술 스크럽을 서고 있던 학생이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쓰러져 턱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는데 그 이후로 학생들을 수술에 참여시키는 것을 더욱 꺼리게 되었다. 수술방에서 극도의 긴장 상태로 수술에 참여했다가 쓰러지는 학생이 적지 않은데 담당 교수가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차라리 학생들을 의자에 앉혀서 참관시키는 쪽이 속편하다. (요즘은 대부분 복강경 수술이니 의자에 앉아서도 충분히 참관할 수 있다.)
학생이 스크럽을 들어오면 사실 수술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하다. 손을 어디 두어야 할지도 모르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학생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내 마음이 같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학생을 수술에 참여시키는 것은 그러한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가까이에서 수술을 보여 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임을, 별 생각없이 수술방에 들어오는 실습학생들은 모른다.
그러다 보니, 개중 누군가는 분명 외과에 관심이 있을 것이고, 짧은 외과 실습이 그들의 전공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인데, 대부분의 관심 없는 학생들 때문에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줄 수 있는 외과 실습이라는 기회가 큰 의미 없이 지나가게 되는 것같아 속상하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학생들은 말로만 외과에 관심이 있다고 할 뿐 지원자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나는 적극적인 배움의 의지가 없는 학생들과 씨름하느라 날이 갈수록 지친다.
세상은 점점 좋은 외과 의사를 길러내기 어려운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