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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Oct 23. 2021

의사와 환자의 간극

당신은 의사의 설명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습니까?

"근디 만약에 중성이믄 우찌 되는 거요?"


중성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할아버지는 검진으로 시행받은 내시경에서 대장암을 진단받고 내원한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중성이면 어떻게 되냐니. 암에 내가 모르는 새로운 분류법이 생긴 건가? 아니면 혹시 한의학에서는 암을 산성 염기성으로 나누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러면 산성도 염기성도 아닌 중성암은 예후가 좋은 암일까? 아, 그게 아니라면, 혹시 생물학적인 성별을 말하는 것일까? 남성과 여성, 그리고 중성? 혹시 이 할아버지가 트랜스젠더라는 이야기일까? 내가 젠더감수성이 부족해서 성소수자의 용어를 알아듣지 못한 것일까? 찰나의 시간에 오만 가지 생각을 했지만 답을 얻지 못한 나는 결국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네?"

"아 왜 거 있잖소. 양성 뭐 그런 거."

"환자분은 조직검사에서 악성으로 나왔습니다. 대장암이에요."

내가 뭐라고 말을 더 이어가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내 말끝을 잘랐다.

"아니 그랑께 중성일 수도 있지 않냐고요. 양성 음성 말고 중성."

신박한 표현이다. 양성도 음성도 아닌, 중성.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중성'이라는 단어는 본인이 대장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담고 있었다. 마치 본인이 '중성' 대장암이라는 판정을 받는 순간 양수도 음수도 아닌 영(0)으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되는 것처럼. 

나는 암 수술을 받아야 하는 할아버지에게 헛된 희망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중성이라는 것은 없어요. 환자분은 분명한 대장암입니다. 수술을 꼭 받으셔야 해요."

단호한 내 말에도 미심쩍은 표정을 짓던 할아버지는 진료가 끝나고 외래 문을 나서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누가 수술 안 받는다고 했간디. 그냥 중성일 수도 있지 않냐 이 말이제."

할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본인은 중성암이었다.


우리말이란 것이 참 애매할 때가 많다. 의사들끼리는 늘 사용하고 익숙한 단어인데 막상 환자나 보호자들은 그 의미를 완전히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해서 중요한 설명을 할 때에는 용어 하나하나 사용하는 데에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양성(良性)'이다. '악성(惡性)'의 반대말, 영어로 'benign'. 왜 이 단어는 하필이면 '양성(性)'과 발음이 같아서 오해를 낳는 것일까.

"이번에 대장내시경에서 용종을 하나 떼었어요. 조직검사 결과 선종이네요. 양성이에요."

"네? 양성이면 안 좋은 거 아닌가요?"

"악성이 아니라 양성이라는 말입니다. 내시경으로 떼어 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으세요."

"아, 난 또 양성이 안 좋고 음성이 좋은 건 줄 알았죠. 코로나처럼."

이런 상황을 하도 많이 겪다 보니 이제는 아예 처음 설명할 때부터 기계적으로 덧붙인다.

"조직검사 결과 선종이네요. 양성이에요. 암이 아니라는 말이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수술 후 복강 내 감염으로 오래 입원해 있던 환자가 호전되어 퇴원할 무렵이 되었다. 염증 수치가 호전되어 항생제도 끊고 퇴원하시면 되겠다고 설명하고 돌아서려는데 환자 보호자가 물었다.

"저기요 교수님, 혹시 항생제 좀 더 쓰면 안 될까요?"

"항생제 오래 써서 좋을 게 없어요. 이미 충분한 기간 사용했습니다. 뭐 때문에 그러시죠?"

"이이가 너무 기운이 없는 거 같아서요. 항생제를 좀 더 맞으면 기운이 나지 않을까요?"

대체 이 보호자는 항생제를 무슨 약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영어로 antibiotics는 접두사 'anti-'의 의미가 쉽게 와닿는 반면 우리말 항생제(劑)의 '항'은 '대항하다'의 의미보다는 '항상(常)' 혹은 '항진(進)'의 의미로 오해받기 십상이긴 하다. 의사들한테나 항생제 하면 당연히 antibiotics이지 일반인에게는 항생제가 '생동감을 높여주는 약'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제는 항생제라는 용어를 쓰면서도 '세균을 죽이는 약'이라는 말을 세트로 덧붙여야 하는 것일까?


어쩌겠는가. 환자들에게 benign이니 antibiotics니 영어로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의사들이 숙제처럼 짊어지고 갈 수밖에.




편혜영의 <홀>은 건조하면서도 감정을 파고드는 작가 특유의 문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읽는 내내 불편했는데, 특수한 상황에 놓인 환자를 바라보는 의사로서의 연민이랄까 그런 감정이 컸다. 소설의 중반까지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몇 번이고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펴야 했다. 물론 소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장르가 서서히 스릴러로 바뀌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건 그렇고. 오늘 하려는 얘기는 그게 아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오기의 아버지는 대장암으로 죽는다.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 충분히 자료 조사를 했을 테고, 의사든 의과대학 학생이든 누구든 분명 인터뷰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대장암에 관해 쓴 부분은 오류 투성이다. 


"오기는 의사와의 면담에서 복잡한 설명을 들었다. 일단 종양을 제거했으나 종양이 퍼진 위치에 따라 재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종양은 근육질에 침투하고 지방 조직에까지 퍼진다고 했다. 영문을 몰라하는 오기에게 의사는 손쓸 수 없는 단계라는 뜻임을 일러줬고, 얼마 후 의사 말대로 되었다."

- 편혜영, <홀> 중에서


대장암은 점막에서 시작하여 암이 진행할수록 장벽을 깊이 파고들게 되는데 이것을 T(tumor) 병기라고 한다. T1은 점막하층까지 침범한 경우, T2는 근육층을 침범한 경우(여기서 말하는 근육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두근 삼두근 같은 근육이 아니라 장을 움직이게 하는 장벽 내의 근육을 말한다), T3는 근육층을 넘어 연부조직까지 침범한 경우, T4는 장막을 뚫고 침범한 경우를 일컫는다. 당연히 깊이 침범할수록 주변으로 퍼질 위험성이 높고 재발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은 환자들이 흔히 알고 있는 1기, 2기, 3기, 4기와는 다른 개념인데, 그것은 T(tumor)-N(node)-M(metastasis) 병기로서, T 병기와 N 병기, M 병기를 종합해서 다시 분류한 것이다. 환자들은 세세한 T 병기, N 병기를 필요는 전혀 없고, TNM 병기의 의미알아도 충분하다. 사실 TNM 병기의 의미를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키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상당수의 환자들은 3기나 4기라고 하면 '그러면 제가 말기인가요?'라고 되묻는다. TNM 병기는 예후를 예측하기 위해 나눈 분류일 뿐이지 4기라고 해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얼마든지 생명을 연장할 있고, 완치의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숫자 1,2,3,4에서 4가 마지막이라는 사실 때문에 '4기=말기'라는 그릇된 인식이 있다. 하지만 틀렸다. 더 이상은 어떤 치료도 소용이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말기라고 말한다.


"일단 종양을 제거했으나 종양이 퍼진 위치에 따라 재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장 자체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문장이 맞는 말이려면 '재발(recurrence)'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했을 때 '종양을 완전히 제거했다'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종양은 '진행(progression)'한다고 하지 '재발'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럴 경우 종양은 근육질에 침투하고 지방 조직에까지 퍼진다고 했다."

이 문장은 아마도 T 병기(stage)의 T2와 T3를 설명한 것 같은데 앞뒤 문장이 전혀 연결이 안 된다. 종양은 (아마도 완전히) 제거했고, 재발할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T2나 T3가 된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다음 문장에 이르러 갑자기 종양은 '손쓸 수 없는 단계(말기)'가 되어 버리고, 오기의 아버지는 '영문을 몰라 하는' 오기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다.


오기가 영문을 몰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오기를 창조해 낸 작가가 대장암에 대해서 아무 것도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까.

혹은, 설마, 아무 영문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강조하기 위해 오기가 의사의 복잡한 설명을 아무 것도 이해를 못한 양 일부러 뒤죽박죽으로 서술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여졌음이 분명한 (아마도 그렇겠지? 그게 아니라면 소설가로서 직무유기다.) 소설에서조차 이런데, 내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대체 나의 설명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의사의 설명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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