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래서 그렇게 피곤했구나. 어쩐지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너무 심하더라고요. 그러면 항암치료를 다시 해야 할까요?"
내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항암을 하려면 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장폐색이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 지금 당장은 항암치료도 할 수가 없어요. 장폐색을 해결하려면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간 기능이 너무 떨어져 있어서 전신마취 자체가 위험해요. 무리해서 수술을 하고 천만다행으로 회복한다 하더라도 항암을 시작하려면 수술 이후에 한 달은 최소 쉬어야 하는데 지금 암이 자라는 속도로 봐서는 그 사이에 암이 더 진행해 버릴 거예요."
할 말을 잃고 멍하게 있는 L에게 나는 마지막 선고를 했다.
"얼마 안 남으셨어요. 길어야 두세 달, 올해를 넘기기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괜히 수술하고 고생하시느니 그냥 이대로 지내시는 편이 나아요. 호스피스 상담받으시도록 연계해 드릴게요."
L은 아직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요양보호사 자격 따려고 열심히 했거든요. 다음 주면 발표가 나요. 이제 저도 베풀면서 살려고요. 어쩐지 너무 피곤하더라니. 제가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아, 이거 참. 다음 주면 발표가 나는데. 이렇게 기운이 없어서야 원. 뭘 먹지도 못하겠고."
L의 독백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조용히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것밖에 없었다.
"만일 하느님의 뜻이라면, 하느님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하는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하느님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둘은 똑같은 말로 들린다. 나는 계속 '전능하신 분'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십삼일 아침에 어디 계셨습니까? 하고 묻는다. 알리바이는 매일 바뀐다."
- 토마스 린치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 중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보았다.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와는 별개로 공개된 첫날부터 반응이 뜨겁다. 하루 만에 전 세계 1위라니. <오징어게임>의 후광일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여하튼 대단하다. <지옥>은 공포가 유발하는 광신적인 믿음과 폭력, 그리고 우리를 심판하는 '신'에 대해 말한다. 그 '신'이 개신교에서 말하는 신과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지옥>은 이런 종교적 믿음이 얼마나 거짓될 수 있는지, 그러한 믿음이 집단적 광기로 이어질 때 우리의 세상이 어떻게 지옥이 될 수 있는지를 그려낸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신'을 다루는 방식이 서양인의(특히 미국인의) 믿음과 충돌하는 부분이 보여 전 세계적인 흥행이 <오징어게임>만큼 지속되지는 못할 것 같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나는 원래 무신론자이기도 했지만, 병원에서 일하면서 신의 존재에 대해서 더욱 회의하게 되었다. 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앓다가 죽어가는 것일까. 이들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면 이들의 고통은 무엇에 기인하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원죄를 가지고 있다면, 왜 누구는 고요한 죽음을 맞는 반면 누구는 거듭되는 수술과 항암 치료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일까. 시인이자 장의사인 토마스 린치는 그의 에세이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에서 신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주먹을 휘두른다'라고 했다. 어찌 보면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이의 가장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지옥>에서 아무 죄 없는 신생아가 죽음의 계시를 받는다는 설정을 가져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연 '전능하신 분'은 존재하는 것일까?
전능하신 분이시여.
L이 잘 먹지도 못하면서 요양보호사 시험을 준비할 때, 당신은 대체 어디에 계셨습니까?
한낱 나약한 인간인 저는 대체 뭘 어찌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