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다. 여지껏 꽤나 많은 소설을 읽었는데 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하나도 읽지 않았을까. 사실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굳이 없는 이유를 만들어내자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값에 기대어 그다지 끌리지 않는 소설을 펼쳐들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할 것 같다. <해변의 카프카>라든가, <노르웨이의 숲>이라든가, 뭔가 제목이 풍기는 느낌이 있다. 나랑 맞지 않을 거라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조차도 그렇다. 오쿠다 히데오나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잖아. 물론 말도 안 되는 편견일 뿐이다.
<노르웨이의 숲>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소설이다. 청춘소설이나 성장소설이라고 분류할 수도 있을 법한데 그렇다고 내 아들에게 권하고 싶으냐면 그건 또 아니다. 이미 읽으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청소년이 읽기에는 내용이 좀 그렇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문화적 차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솔직히 말해서 섹스와 관련한 내용이 좀 변태적이지 않나? 내가 너무 보수적인 걸까? 아니, 장담하건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라는 것을 걷어 내고 읽는다면 이 책을 읽다가 불쾌해질 사람이 꽤나 많을 것이다. 사람 사이의 미숙한 관계 맺음, 그리고 아직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청춘의 혼돈을 유려하게 그려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겠지만 -그러니까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적나라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나니 뭔가 나랑 맞지 않을 거라는 편견만 공고해진 느낌이다. 소설 전반에 깔린 우울함과 무심한 듯 독자의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옅은 색깔의 감성이 작가의 스타일이고 장점인 듯한데 내 취향과는 전혀 상반된다.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게 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에세이라면 몰라도.
문득 생각한 건데, 소설을 쓰는 무라카미 하루키랑 에세이를 쓰는 무라카미 하루키랑 혹시 다른 사람 아닐까? 분명 다른 사람일 거야. 같은 사람이 쓴 글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