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하면서 가끔 아이의 책가방을 정리,라기 보다는 쓰레기들을 버리는 일을,하게 된다. 아코디언처럼 주름진 가정통신문과 종이조각, 지우개조각들 속에서 수업시간에 만든 것 같은 '질문'에 대한 간이 책을 발견했다. 나무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새들은 새들로 태어나고 싶어서 그렇게 태어난걸까? 등 아이가 만들어낸 여러 질문들 중에는 '살아가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도 있었다. 열두살의 질문책 안에는.
한참 심난할 때 알게 되어 가끔 들어가보는 법륜스님 블로그에서, '도대체 왜 사는 걸까요,산다는 것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라는 비슷한 질문에 스님은 '태어나니까 사는 것'이랬다. 어떤 심오한 해답이 있을 줄 알고 숨을 멈추고 읽어내려갔던 나는 머쓱해졌다.
'뭐 대단한 것이 아니고,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예요.'
왜 살아야하는지 그 자체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태어난 것도,뭔가 큰 생명의 비밀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는 둘째야, 너도 사실 엄청난 포부로 계획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란다. (머쓱)
갑자기 사랑니가 말썽을 일으켜서 입을 벌리지도 못하고 침을 삼킬 때도 아픈 지경에 이르렀다. 십수년만에 너무도 싫어하는 치과에 가면서, 사는 데에는 왜이리 손이 많이 갈까, 생각했다. 이렇게 사는 것에는 품이 많이 들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어제 죽지 않고 오늘 아침 다시 일어나있다는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나는 치과에 갔다오면서 큰 일이라도 한 듯이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게다가 이 이만 빼는 게 아니라 다음 사랑니빼는 일마저 예약하면서. 대단한 용기다. 브라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익숙해져만 가는 것은 아니니까.하루는 누구에게도 처음이다ㅡ
일단 태어났으니까 이런 저런 손가는 일들을 해내면서 살아간다. 모두들 대단하다. 밥먹는 일도 씻는 일도 포기하지 않고.
태어났으니 사는 거라고, 일단 백번 그렇다쳐도, 열 두살때부터 늘 궁금해할 삶의 의미, 삶의 정수는 도대체 뭘까?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오래 하는 삶일까? 되도록 싫은 일을 피하면서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일까?
내 삶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어떻게 흘러가야할지, 언제나 끝없이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탐구하는 그 자체가 그저 삶의 정수가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는 끝없이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듣고, 만날 수 없으면 글을 쓰고, 그 책을 읽으며 살아간다. 이렇게 질문하므로 고로 나는 확실히 존재한다. 다른 증거없이.
가끔은 이 도시가 권태로웠고, 미웠다. 통창 가득히 보이는 산과 나무는 이 아파트가 아주 외진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가득히 숨막힐듯한 햇살은 이 집이 내 고향 서울보다 멀리 멀리 떨어진 남쪽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일주일내내 집에만 있었던 적도 많았다. 인간이란 늘 자신이 자고 일어나는 그 곳만을 미워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습관인가보다.
또다시 가을의 저수지를 걷는다. 수레국화도, 양귀비도 사라진 그 길에는 한참 뚱딴지꽃이 피더니, 이젠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억새들이 은빛 비늘처럼 반짝였다. 억새는 정말로 줄기가 억세서 아침 산책의 전리품으로 쉽게 가져갈 수는 없었지만 어떤 노부부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노랗고 작은 송이의 국화꽃들을 가득 꺾어서는 서둘러 꽃봉오리만을 따서 넣고 계셨는데, 꼭 어린 날 그렇게 모여 앉아 하던 소꿉놀이가 떠올랐다. 너무도 소중한 그 꽃들. 약초일래나, 아마도 꽃차를 만들려고 하셨나보다. 성실한 인생이란 세월을 돌아와 앉아 유년의 모습처럼 소꿉놀이를 하는 것에 다름아닌 것일까.
모험이 어쩌고 하지만 지척의 꽃 꺽어 말리기도 귀찮아서 티백 홍차를 마시는 사람이 나인데.
행복이 늘 찾아 떠나는 대상이 되면, 행복은 여기 없는 것이 된다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누구든 유행처럼 떠나고 버리고 하는 마당에 사실 가장 힘든 일은 그저 머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머물러라. 계속 더 머물러라. 더 많이, 더 깊이, 더 오래. 그래서 권태가 짓물러 고름이 되고 또다른 깨달음의 새 살이 나올때까지 우리는 별다른 수행을 하지 않아도 수행을 해낸 것이 될 것이다. 새롭게 또 허물이 벗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