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중년과 사춘기가 동시에 겹쳐지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중년에게 사춘기, 특히 사춘기 딸이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어쩌면 안믿을 지도 모르지만, 우리 둘째 아이는 특히 '사랑해요' 라는 말을 달고 다니던 아이였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끌어안고 그 입술을 내게 맞춰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가득 쓴 연서를 시도때도 없이 내밀던.
세상사가 다 변한다해도 이 아이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 "제가 예쁜 얼굴은 아니죠." "제 아들이 그렇게 잘 생긴건 아니죠." 란 말을 입에 달고 살만큼 세상에서 객관화가 제일 잘 되있는 내가, 그리고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관심이 많고 내가 사랑하는 분야가 있는 내가, 자식에게나 누구에게나 기대가 크지 않다고 자부하는 내가.
사랑이 식은 연인과 함께 지낸다는 형벌이 있다면 차라리 떠나거나 혼자 남거나 무인도에서 뱀에 잡아먹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채 사랑했던 연인(나의 딸)과 한 때 사랑했던 기억만을 곱씹는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어?!! honey!! 많이도 울었다. 나는 앞으로 머리도 더 빠질테고 힘도 빠지고 슬퍼질텐데 연인이여, 변함없는 사랑으로 나만을 위해 존재해주면 안돼? 연인이면 자존심이 상해서 헤어지자라고라도 할 수 있지, 이건 무엇보다 강철같은 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마이갓. 한밤중에 나는 다시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누운 채로 엉엉 울었다. 그러나, 아이는 커야 한다. 아이가 크지 않는 것은 고통이지 않은가.
간혹 사랑이 식었을 때 내 곁에서 나를 지키던 어떤 사람들의 마음은 이런 것이었을까. 왜 나는 직접 겪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차원적인 사람일까? 그 사랑이 열렬할수록 그리고 그냥 주어졌을수록 그 당황스러움은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잘못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나의 몫이다.당황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이 깨진 사랑을 부정해보기도 한다.
'화를 내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법' 과 같은 책을 잔뜩 빌리면 나아질까? 무기력해진 마음으로 책을 검색해보니 지은이가 분노조절상담사란다. 우리나라에는 분노조절상담사, 일본에는 앵거 매니지먼트 협회라는 것이 있나보다.
이만 헤어지자고 어디론가 떠날 수 없었어도 나는 여기, 흰색 식탁위에서 작두콩을 띄운 차를 마시고 건너 소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책을 읽는 딸을 본다. 스피커에서는 좀 오래된 팝송이 흘러나온다. 열대에 어울릴 잎넓은 화초가 우리집 거실창 앞에도 있다.어쩌면 당연한 것을 나는 내 욕심대로만 붙잡고 떼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고 여름을 내놓으라고.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너와 내가 있다, 여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