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실패할 계획을 세울 계획

by 로망버드

한 해의 마지막에 접어들 즈음이면 내년 달력이나 다이어리를 떠올리게 되고 누구든 자신의 입시를 소환하기도 한다. 그래서 SNS에서 본 어떤 이의 실패담은 정말 절절하고 흥미진진했다. 재수를 하고, 삼수를 하고 추가합격에 붙었다는.그러고보면 나는 실패를 너무나 두려워하기에 크게 도전하지도 실패할 상황을 만들지도 않아, 이 날 이때껏 "난 이런 삽질을 해봤습니다." 라고 내세울 큰 실패를 해 본 적이 없다. 대학입시에서 실패하지도, 7년 연애가 실패하지도 않았고 집값이 떨어져보지도 않았다.


정작 실패할 오디션에 나갈 상황은 최대한 줄이려고 몸사리는 쪽이지만, 쇼미나 캡틴, 싱어게인,미스터트롯까지 오디션 프로는 가리지 않고 챙겨본다. 어쩌면,대신 실패해주는사람들을 보기 위한 것인가 싶다. 대신 성공하는 모습도 물론 좋지만, 새가슴은 실패도 누군가 대신해줄 사람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실패는 간접경험의 영역에만 오롯이 존재하는 듯 싶은데.

딱 우리 첫째아이같은, 본인이야 열망은 있겠지만 좋은 말로 순수하고 나쁜 말로 어설픈, 허우대만 좋은 아이가 나와서 당연히 한번에 똑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역시 그런 도전은 무리야,풋 왜 나올 생각을 했지,단정했다가 그 아이가 심사위원의 마지막 카드로 패자부활한 것을 봤을 때 앗?!싶은 기분이 들었다.옳고 그름을 누가 아는가,처럼 성공과 실패를 누가 규정하는가 싶다.


인터넷서점에서 연례행사처럼 사은품으로 내년 다이어리를 받고, 올해 썼던 다이어리의 처음을 펼쳐본다. 하나같이 미완으로 남아서 똑같이 다음 다이어리에도 써놓아야할 계획들이다. 거창한 성공도 아닌데 늘 이루지 못한다. 이래선 소극적 실패도 못하는 듯 하다. 이래저래 그릇이 작다.

비대면의 시대에 지인들과 모여 '올해의 세가지'를 꼽는 조촐한 모임도 할 수 없지만, 코로나 시대의 교훈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실패할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르고, 기회가 항상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올해의 계획들은 내년 다이어리에도 똑같이 써야 할 듯 하지만, 그 계획들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여느 해 여느 연말과는 사뭇 다르다. 거의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계획말고 나는, 좀더 크고 허무맹랑하고, 휘황찬란한 계획들을 세울 예정이다. 내일 달에 가는 계획이 아니라면.막말로, 성공인지 실패인지 누가 아는가?

보다 적극적으로 실패를 하자. 실패할 기회조차 없을지모르니.라며 실패할 계획을 실패하기 위해서 짤 것이다.실패할 계획을 성공하면, 그건 실패한 걸까 성공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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