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망버드 Oct 27. 2021

3.망했다 ㅡ 중년의 곡선1

얼마전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친구의 하소연중에 자주 나온 말, "망했다." 자신의 인생이 망했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딸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학교에 보내고 나서 내가 떠올린 말도, '망했다.' 이다.

이 나이쯤 되면 국어 과목의 요약 본능은 알아서 잘 발달되어, 이렇게 한 마디로 인생 전체를 금방 표현하는데 능숙해진다.

망했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자꾸 이런 말이 지금, 나오는 걸까?

우리의 지금까지의 삶은 바람부는 방향대로 떠밀려간 감이 있었다. 가속도가 붙어서. 그러나 지금은, 잠깐 숨을 돌리고 뒤를 바라보는 때다. 약간의 여유가 생겨 돌아보는 지금, 그 전에는 잘 해본 적 없던 말, 혹시라도 그것이 내 실패를 인정하는 말이 될까봐 피해왔던 말, '망했다'는 말이 입밖으로 쉬이 나온다.

'망했다'고 느끼는 건, 거꾸로 그만큼 애착이 컸다는 것일 것이다.아직도 내려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성인(聖人)이 아니기에 내려놓을 수가 없지만. 계속 어떻게 바래오고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그것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쭉 어떤 그림을 그려왔고, 지금쯤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 간다고 느낄 때다. 작품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고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을 쓱 보는데, 오, 이게 아닌데?. 내가 바랬던 그 이상적인 그림은.

그래서 유독 이 나이쯤 되었을 때 되바라진 중학생처럼,  '망했다'는 말을 되뇌이며 사는 것이다.


이래서 수산나 타마로의 '흔들리지 말고 마음가는대로' 에 나오는 할머니는 손녀에게, 사람들이 위험하게도 마흔쯤 되면 세상에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일어나는 일이란 없다고 폐쇄적인 운명론에 빠지게 된다고 했나.그러나 운명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좀더 세월이 흘러야한다고.  '망했다'고 하기에 아직 우리 삶은 너무 많이 남아있는지도 모르는걸. 그러나 그 책에 나오는, 가상의 할머니의 말을 믿고 싶기도 하지만, 어쩌랴, 오늘 저녁까지 나는 속으로 너무 많이 '망했다. 이번 생은 망했어. 오늘 하루 망했어.'란 말을 되뇌었는걸.

그러나, 최대한 망하지 않을 평균적인 BTS의 노래 모음을 틀어놓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사실 오늘 하루는 원래 아무것도 없는 하루였는데, 이런 것들 저런 것들로 채워졌다. 사실은 뭔가는 바랬던대로, 또 뭔가는 당연히 실패할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땡, 마감이 되었다. 이제 그림을 낼 시간. 이런 저런 모양과 색깔로 채워진 그림을 오늘 하루의 마감시간에 이렇게 어떻게든 제출하고 나는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래, 그러면 된 것 아닌가. 망하고 안망하고가 어디있나, 이렇게 채워져있는데. 안 망했다.


작가의 이전글 완벽한 휴가지를 찾는 여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