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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un 29. 2021

완벽한 휴가지를 찾는 여정

그녀는 아침에 노트북을 열었다. 여름이었다.

모 SNS에서, '여름이다.' 만 붙이면 그럴듯하게 된다고 해서 해 본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오늘밤도 맥주를 마셨다. 여름이었다.' '나는 오늘도 하늘을 보며 걸었다. 여름이었다.' 이런 식이다. 과연 그럴듯한것이, 바로 그것이 여름이 가진 마법, 특수한 뉘앙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부정하랴, 여름이 하는 일을. 여름이라하면 일단 70점은 먹고 들어갈 것이다.

올해도 제대로 된 휴가는 물건너갔지만, 완벽한 휴가지에 대한 보고서를 늘 쓰다 고치고 쓰다 고친다.  

처음부터 여행마니아는 아니었지만, 결혼을 하고 여행메이트가 생기고 회사에 다니고 돈이 생기면서 '휴가'란 정말 달콤한 상비약이었다. 그러나 실제 휴가는 그 단어가 주는 황홀함에 상응하지 못한다.언제나 기대는 어그러진다. 모든 걸 맞추려다 어정쩡한 모양새가 되어버리는 휴가의 형태, 언제나 배신하는 휴가의 형태.그러나 우리는 늘 완벽한 휴가를 그린다. 신기루같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나의 완벽한 휴가지란 이렇다.

몇걸음만 걸으면 수영장이나 바다가 있었으면 좋겠다. 샤워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락커를 거치고, 모든 사람과 나체통성명을 하고, 드라이를 하고 나오는 그런 공장식 시스템말고, 수영하고 물을 뚝뚝 흘리며 바로 리조트 혹은 민박집에 들어가 샤워를 하는 것이다. 나의 얼마되지 않는 여행경험에 그런 사례가 있었으니, 바로 몰디브였다. 신혼여행도 아니었고 10주년 여행도 아니었고 여름휴가기간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리 용감하게 몰디브행을 했는지 모르겠다, 결혼2주년이라는 핑계로. 쨌든 나의 그 무모한 결정 덕분에 나는, 그리고 남편은 미천한 해외여행경험에서도 두고두고 몰디브를 꺼내어 질겅질겅 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돈으로 주식투자를 했으면 지금쯤... 그만하자.)

단독으로 지어진 리조트를 나와 하얀 모래를 밟고 100걸음쯤 나가면 저멀리 산호띠가 보이는 얕은 바다가 나온다. 작은 물고기들을 쫓다가, 그대로 걸어들어가 리조트안의 작은 야외샤워장에서 샤워를 한다. 지붕이 뚫려있는 샤워장에서 자연 바람을 맞으며 샤워를 하는 것은 그이후로도 해본 일이 없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물론 짧은 몇일의 밤이 끝나고 돌아오는 기나긴 밤비행기의 여정으로 녹초가 되었다. 역시, 완벽한 휴가란 없는 것이다.

또 걸어서 10분쯤 되는 거리에 카페와 식당 두어군데가 있었으면 좋겠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파는. 딱 하루만이라도 아침에 일어나 눈을 비비면서 그대로 걸어가 앉아 펼쳐진 바다나 들을 보면서 야채가 들어간 오믈렛에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잠을 깨는 일을 하고 싶다. 그 카페는 흰 벽에 커다란 야자나무 한그루만 있어도 충분할 것이다. 그 후에 나는 눕듯이 기대 앉아 몇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사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책을 세네권 쌓아놓고 읽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며칠이다.아니, 단 하루라도.

이렇게 쓰고보니 내가 원하는 그 완벽한 사치는 그리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만족같은 것은 미루는 아주 예민한 성격일수도 있다. 그러나 휴가인 하루에도 종종 아이들의 '심심해' 공격에 시달리거나 점심을 먹으면서도 다음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다음 행선지는 어디로 가야할 지 결정해야하는 것은 사실이다.

 

본격 더위가 시작되려하면서 다들 조금씩 다가오는 여름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부쩍 "아, 이제 드디어 (그) 여름인가." 라고 말들 하고 있다.장바구니에는 언젠가 올, 나의 휴가를 위한 책들이 쌓여간다.

똑같이 나도 그 여름을 기다린다. 몇일 안되는 알량한 휴일을 어떻게 보낼까, 다들 좋다는 곳 말고 전혀 새로운 나만의 여행과 여행지를 찾아 빈약한 상상력을 발휘해보지만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갔던 곳, 이미 했던 것을 하게 될 것이다. 먼저 청춘을 보냈던, 먼저 가족을 이루었던 사람들이 다녀간 곳에 새로운 청춘이, 새로운 가족이 전혀 새로운듯 찾아간다.

어쨌든 오지 않는 유토피아를 매해 그리워하듯 완벽한 휴가지를 그리며, 그 소중한 여름을 기다리고, 기대한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된다. 지금이 바로 그 여름임을.

인정하자고, 지금이 여름이라는 것을. 더 이상 지연하지 말고. 여름의 한가운데임을.

그래,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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