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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un 15. 2021

아무것도 쓰지 않은 날들

방정식 말고 함수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단 5분이라도 노트북을 펴고 앉은 시간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많은 글을 썼다. 인터넷 까페 댓글이었다.모르는 사람의 SNS 에다 대고는 잘도 조잘거렸다. 그 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매일 매순간 대댓글 알람을 확인하고, 마치 그 사람들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 한달여를 보냈었다. 어린 내가 그러했듯, 하이파이브 한번 하고 지나가는 인연이었다.아, 물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만 사실 옷깃은 목부분의 깃을 일컫는 것으로서, 사실은 옷깃을 스치려면 최소한 포옹 정도는 해야하는,(또는 비쥬?) 대단한 인연인 것이다.


오랜 코로나와 연고없는 곳으로의 이사는 이리도 오래 나에게 산후우울에 버금가는 강제 격리감각을 주었다.아니, 산후우울은 아기라도 득템한다 치지 이건 뭔가 말이다. 이건 결과도 없는, 밑바닥도 없는 우물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이들이 크는 일이 유일한 듯한 요즘이다. 창밖의 산이 연두빛으로 변한 것도 그나마 쳐줄만하지만.


그리고 다시 쓰기 위해 앉았다.무엇이라도 쓰자.

어디에도 없고 앞으로도 찾기 힘들 내 머릿속의 완벽한 휴가지를 찾는 여정에 관한 건 어떨까. 역마살이 옮겨갔는지 직업을 바꿀 생각인지 주말마다 출사를 나가는 남편에 대해서 쓰는 건 어떨까. 밤낮으로 엄마를 사랑한다는 쪽지를 남기던 나의 작은 여자아이가 사춘기 소녀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 쓰는 건 어떨까.가수가 되고 싶다는 아들은 일단 말리고 LOUD를 보며 맥주 한캔을 홀짝이는 일은? 물론 길게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머릿속에는 얼른 집을 청소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청소할 때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글을 쓸 때는 청소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대체로 사람의 습성이니 말이다.


무엇이 되었든 내가 원한 것은 성취감이었나보다. 청소를 하고 하루 세끼를 무사히 만들어 먹고 치우고 잠들고 또 깨어나는 것(도 물론 위대한 일이고)말고.

어제는 첫째의 이차함수를 가르쳐주다가 성취감을 느꼈다. 바로 이거지. 최근에는 답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더 많아보인 인생인지라, 명확히 숫자가 맞아떨어질 때 위로를 받는다 (문송입니다만).

 이차함수 곡선은 꼭지점을 사이에 두고 아름답게 대칭을 이루는 곡선이고 최고차항의 계수가 양수면 종국에는 위로 뻗는다. 나는 지금 위로 뻗는 중일까 아래로 향하는 중일까? 꼭지점을 통과했을까 통과하는 중일까? 무엇이 됐든, 함수가 되기로 한다. 멈춰진 방정식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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