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가치관을 견지했다가 중학교때쯤 시험을 처음 보고는 학원 시장에 처음 발을 내딛을 때, 그 영수 학원이라는 것이 피아노 학원이나 미술학원처럼 내가 다니고 싶다고 한다고 무조건 다닐 수가 없다는 점(레벨때문에, 정원때문에..는 이 학원에 다닐 수 없습니다.)에 예상못한 성적만큼이나 충격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나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황당했다.학원을,못하니까 잘하려고 가려는 거 아니야?? 왜 돈을 주고서도 들어가네마네 전전긍긍해야하는거지?
시간이 지나자 여기에 한 가지 나의 모순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원이라는 것을 여전히 내 짐작대로, 내 잣대로 치부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학원같은 것은 다니지 않을 것으로 학원(과 학원시장)을 폄하해놓고는, 다음에는 태도를 바꿔 바로 그 학원에 의존하려고 하면서도 기존의 학원에 대한 내 기준, 내 생각은 전혀 바꾸지 않은 것이다.학원을 내 마음속 정의에서 변화시키지 않은 것이다. 그때 난 친구에게 전화해서 마치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서 만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 것 같던 사람에게 바람을 맞은양 당황스러움을 토로했었다.
왜 갑자기 학원인가. 요며칠 이상하게 밤에 집중력이 살아나서 책을 몇권 읽었는데, 그 중 하나인 '파크애비뉴의 영장류'에서 큰 위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류학에 조예가 깊은 저자가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 청담동+대치동쯤 되려나? 싶은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 즉 하이엔드 상류층 사회안으로 (아이의 교육때문에) 갑자기 편입하게 되면서 너무도 위화감드는 그(녀)들을 '특수한 부족'으로 규정하고 관찰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현장 잠복 취재같은 느낌으로 쓴 픽션이기 때문이다.ㅋㅋ그녀는 그 최상류층의 , 모성 몰입형 육아의, 신경증적인 외모집착과 명품지향성을 보이는 전업의 이른바 여성'부족'에 반감과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어느 새 흉내내려고 애쓰고, 어느 정도는 동화되었음을 인정한다.
나 또한 지나친 교육열, 또 그것과 단짝인 학원의존, 선행열풍등이 나와는 다른 세계인듯, 나 혼자 정상인듯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가 크고 어느 정도 사교육의 흐름에 발을 담그게 되고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가정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뭔가 아니다 싶은데 다수가 그럴 때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둘째,내가 틀릴 수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학자들도 서모아 제도 등 완전히 다른 타 문화를 조사 목적으로 가서는 어쩔 수 없이 동화되버린다고 한다.그러니 우리도 괜찮다, 인류학자들도 그랬으니까.
지금 내 생각이 옳고, 나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고, 또다른 세계를 받아들일 수도 내칠수도 없이 혼란스럽다면, 그게 정상이다. 다르다고 믿는 그 세계와 접하고 있는 이상은 동화란 피할 수 없는 공격 아니 수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자가 아니고, 될 가능성도 없음을 인정하자)
이 책의 결론은 사실 처음에는 여자의 적은 여자인가,싶다가 그 기이한 부족(?)조차 어쩌면 근본적으로는 같은 종족이라는 연민인듯 싶지만, 학령기 아이 둘을 키우는 내가 얻은 인사이트는(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지만) 바로 이것이다.우리는 언제나 어떤 사회에 본능적으로 동화 될수 밖에 없다는 것.비록 내 작은 변명일지라도 말이다.어쨌든 내게는 둘째가 남아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