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망버드 Jul 06. 2022

누구나 아는 비밀

누가 숨기려고 해서 숨긴 것도 아닌데 우리가 임신과 출산, 육아, 그 시지프스의 돌을 굴리던 신생아 시절, 그 험난한 과정의 비밀을 겪게 될 때 입이 쩍 벌어지는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사춘기 또한 공공연한 비밀로 전해져내려왔다. 대나무숲의 외침처럼, 아무리 외쳐도 그 누구도 제대로 들으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그 비밀스런 숲에 실제로 발을 들여서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그 고통은 에코의 요정처럼 숨어 있는 그런 것이다. 어느 책에서 사춘기는 부모 입장에서 재미없기로 유명한 양육의 단계라는 말을 써놓았던데, 아니 그 정도 말로는 너무 너무 부족하다. 이 작가도 그냥 '할많하않' 이었던걸까. '가족의 역사'라는 책에서도 작가는 ‘당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그 길을 계속 가다 보면 정말 어려운 시기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이미 이 비밀아닌 비밀에 대해서는 전세계가 인정해왔지만, 나만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미 숲에 들어섰을 때는 어떠한 조언도 선견지명도 떠오르지 않는 것도.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이라는 포도 농사를 짓는 이야기에 관한 책에서 농사지을 땅을 찾아다니는 작가에게 "농사는 뭐하러 지을라캐? 얼굴 시커멓게 되고 허리 꼬부라들고 폭삭 늙는다. 시작하면 그만둘 수도 없어. 절대 하지 마라."라고들 말렸다는데 오 마이갓. 이거 꼭 자식농사 그 얘기아닌가. 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농사'에 비유되는지, 이 매운 맛까지 꼭 들어맞는다는 것까지는 몰랐다. 고생이죠. 왜 하냐구요? 모르니까요. 해봐야 아니까요. 또는, 고생을 한번 하고 싶어서요. 무료한 것보다는 고생이 낫거든요. 고생이 인생의 정수라고,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내 입밖으로는 도저히 말 못하겠지만. 

사춘기라는, 부모 입장에서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고, 숱한 소문만이 무성한 그 숲 막 초입에 막 들어서서, 나는 아이를 성인으로 키워낸 모든 부모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한다. 내 부모를 포함해서. 

그 시절 진흙탕속에서 뒹굴며 마디가 굵어지다가 마침내 어떤 항복의 백기처럼 하얀 연꽃으로 핏기가 가신 말간 고개를 든 그 백의종군들에게. 무조건적인 경의를 표한다. 그러니 아직 그 숲에 다다르지 않은 부모들이여, 즐기고 즐기고 또 즐기고 향유하고 후회는 단 한방울도 없이 온몸을 짜내어 만끽하여야한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의 귀결은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받을 것을 기대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의무만이 남은 존재를 사랑하는 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것은 어쩌면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게 될 때 '내 입장에서 본' 사춘기는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그 실패한 기분으로, 종착역에서는 더 처절한 빛을 내는 실패자의 모습으로 서있을 것이라는 걸 예감한 채, 이 대나무숲을 걸어갈 뿐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7.어느 영장류의 변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