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망버드 Aug 18. 2022

비가 오면 비를 맞는, 후회는 없습니다

비를 맞고 걷게 되었다.

가 오면 비를 맞고 걸어갈 나이는 아니다, 이젠.

그냥 하늘을 봤을 때 거의 안 오는  알았는데, 아니었다. 길을 나섰는데. 적지까지 맞고 걸어갈 만큼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드문드문 땅으로 꽂히는 빗줄기가 제법 무거웠다. 한번 나오려면 거쳐야하는 여러가지를 처리하고 또 가장 큰 귀찮은 마음까지 극복하고 나왔는데. 

발로는 계속 걸어가며 비를 맞고 계속 걸어갈지, 우산을 가지러 돌아갔다올지 나는 계속 고민했다. 리카락이 꽤나 젖었다. 버스를 탈까, 아니면 그냥 아예 다시 들어갈까. 금 있다 그치지 않을까 근거없는 요행도 바라면서. 10여분쯤 걸었을까, 이 잔잔한 빗방울이 끝내는 그칠 것 같지가 않아서 결국 우산을 가지러 온 만큼 또 젖으며 어갔다.

익숙한 습도, 연애히던 시절의 장마 기간이 생각났다.  해는 너무도 강렬했어서, 그 습도는 내 피부 모공 하나하나에 새겨져서 이렇게 같은 습도가 되면 그냥 불쑥 떠오르곤 한다. 그때 나는, 모든것이 변함없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한 나는 이 사람과 어떻 될까 알 수 없어 두려웠다.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끝 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지 않았다.

요즘은 아이들이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계속 힘들다. 그 때 그랬어야했을까, 초등학교 4학년때 친하던 친구랑 같이 더 놀고 싶어서 그 친구가 다니던 수학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보냈어야했나, 3학년때 영재원 추천을 받았을 때 맞벌이 핑계에 주말 외출을 무릅쓰고 신청했어야했나, 중학교 때 취미로라도 보컬 학원에 보내지 말아야했나. 둘째의 경우도 또다른 다양한 후회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곤 한다.  때 그랬어야 했나, 저 때 저랬어야 했나......

거의 머리가 다 젖을 만큼 비를 맞고 아파트 1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으로 들어선다. 그 해 그 여름 그 습도를 소환하며 나는 동시에 그 때에 있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잘 안될 거라고 생각했었고, 잘 될리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었잖아.

후회한다는 것은, 내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는 자기반성같기도 하고 다시 후회하지 않을 일을 만들기 위해 반성한다는 위안인 것도 같지만, 사실 후회라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증거라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다. 우리는 사실 항상 그 당시에는 그 당시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최선인 선택을 했다. 시간이 지나 그 결정을 후회한다는 것은 그 때의 내 자신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고 그것은 동시에 현재의 내 자신도 언제든지, 언제나, 부정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잠재적인 후회덩어리라는 뜻이다. 사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역사에 'if' 란 것이 없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엄마나이는 첫째나이만큼이라했던가, 그렇대도 육아의 끝은 막내의 나이이다. 이제 육아의 끝을 향해 걸어간다.

선글라스, 캡모자등을 다 휩쓸어갔던 워터파크의 무섭던 파도풀의 기억이 몇년전을 마지막으로 남아있다.이렇게 서서히 어떤 시기가 닫혀간다. 후회라는 것도, 그렇게 문을 닫아야한다. 그저 다시 돌아가서 우산을 가지고, 비오는 골목으로 나가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10.나는 실패담 수집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