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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Aug 18. 2022

비가 오면 비를 맞는, 후회는 없습니다

비를 맞고 걷게 되었다.

가 오면 비를 맞고 걸어갈 나이는 아니다, 이젠.

그냥 하늘을 봤을 때 거의 안 오는  알았는데, 아니었다. 길을 나섰는데. 적지까지 맞고 걸어갈 만큼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드문드문 땅으로 꽂히는 빗줄기가 제법 무거웠다. 한번 나오려면 거쳐야하는 여러가지를 처리하고 또 가장 큰 귀찮은 마음까지 극복하고 나왔는데. 

발로는 계속 걸어가며 비를 맞고 계속 걸어갈지, 우산을 가지러 돌아갔다올지 나는 계속 고민했다. 리카락이 꽤나 젖었다. 버스를 탈까, 아니면 그냥 아예 다시 들어갈까. 금 있다 그치지 않을까 근거없는 요행도 바라면서. 10여분쯤 걸었을까, 이 잔잔한 빗방울이 끝내는 그칠 것 같지가 않아서 결국 우산을 가지러 온 만큼 또 젖으며 어갔다.

익숙한 습도, 연애히던 시절의 장마 기간이 생각났다.  해는 너무도 강렬했어서, 그 습도는 내 피부 모공 하나하나에 새겨져서 이렇게 같은 습도가 되면 그냥 불쑥 떠오르곤 한다. 그때 나는, 모든것이 변함없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한 나는 이 사람과 어떻 될까 알 수 없어 두려웠다.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끝 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지 않았다.

요즘은 아이들이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계속 힘들다. 그 때 그랬어야했을까, 초등학교 4학년때 친하던 친구랑 같이 더 놀고 싶어서 그 친구가 다니던 수학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보냈어야했나, 3학년때 영재원 추천을 받았을 때 맞벌이 핑계에 주말 외출을 무릅쓰고 신청했어야했나, 중학교 때 취미로라도 보컬 학원에 보내지 말아야했나. 둘째의 경우도 또다른 다양한 후회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곤 한다.  때 그랬어야 했나, 저 때 저랬어야 했나......

거의 머리가 다 젖을 만큼 비를 맞고 아파트 1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으로 들어선다. 그 해 그 여름 그 습도를 소환하며 나는 동시에 그 때에 있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잘 안될 거라고 생각했었고, 잘 될리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었잖아.

후회한다는 것은, 내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는 자기반성같기도 하고 다시 후회하지 않을 일을 만들기 위해 반성한다는 위안인 것도 같지만, 사실 후회라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증거라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다. 우리는 사실 항상 그 당시에는 그 당시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최선인 선택을 했다. 시간이 지나 그 결정을 후회한다는 것은 그 때의 내 자신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고 그것은 동시에 현재의 내 자신도 언제든지, 언제나, 부정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잠재적인 후회덩어리라는 뜻이다. 사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역사에 'if' 란 것이 없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엄마나이는 첫째나이만큼이라했던가, 그렇대도 육아의 끝은 막내의 나이이다. 이제 육아의 끝을 향해 걸어간다.

선글라스, 캡모자등을 다 휩쓸어갔던 워터파크의 무섭던 파도풀의 기억이 몇년전을 마지막으로 남아있다.이렇게 서서히 어떤 시기가 닫혀간다. 후회라는 것도, 그렇게 문을 닫아야한다. 그저 다시 돌아가서 우산을 가지고, 비오는 골목으로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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