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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Aug 26. 2022

최선에 대한 궤변

우연한 검색중에 입시커뮤니티를 보다가 뜨끔,한 게 있다.학부모가, 아이가 학원을 다니는데 중하위권이라며, "이쯤되면 공부를 아예 안한거라고 봐야지요?" 하는데 댓글에 '그런  쉽게 하지 말라, 아이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는 댓글이 있었다. 누가 학원에 소위 전기세 내주러 다니는 거 아닌가 했는데,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댓글이었던 것이다.


무엇이든 늦되첫째아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영원히 안 탈줄 알았던 자전거를 처음 가르쳐는데 몇 번 가르쳐줘도 못해서  막 화를  적이 있다.  자전거를 잘 타니까. 내가 처음에 어떻게 배우고 넘어졌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가르치는대로 못 하는 아이에게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탄다, 지금.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다는 것은, 과연 거창한 말이 아니라 그대로의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일부러 못타는 척을 하는 것이 아니다.누구나 최선이다.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지금 나는 그 선택의 결과이다.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다 했다. 안했다고? 아니 그건 처음부터 나를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지 최선을 다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또한 늘 매일 저녁 혼자 샤워를 할 때엔 지난 일들을 곱씹으며 그 때 왠지 더 잘했어야   같은 죄책감,그러지 말았어야한다는 후회, 그렇게 했어야만 한다는 자책감 몸서리쳐왔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실 그게 내게 최선이었다.내가 걸어온 모든 길이 최선이었다. 최악은 무리했을 때 일어난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과, 그 당시의 나 자신, 자원, 한 줌의 우연과 2퍼센트 아니 20퍼센트 필연적인 비합리성, 우주의 기운, 딱 그때만큼의 상상력과 계획성 등으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해왔던 것이다. 최선이 아닌 것을 한 적은 없다.

후회나 죄책감은 테리어 잡지의 인테리어와 그냥 실제 우리집간의 괴리, 내가 설정한 최선과 실제 내 역량의 최선의 차이이다. 실제 내 역량의 최선은 잊어버리고 오버스럽게 목표를 설정해놓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이랬어야했는데 저랬어야했다고 자책하는 것이다. 노오력했으면 됐을 거라고? 화성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누구나 화성에 가지 않고, 갈 수도 없듯 나도 나의 지구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갈 수 있으면 진작 간 것처럼.

그러니까 사실 나도,그 때도, 지금도. 저 아이도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말마따나 존재하는 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며 받아들여져야  것들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최선이란 무리해서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이 사실은 최선이다. 지금까지 나 자신 그 자체가 최선인 것이다.

중간고사가 지나갈 때 나는 아이 입학과 함께 가입했던  입시카페를 탈퇴하고,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뒷목잡을 이유 없이 지나갔다. 그냥 있기로 했다. 예를 들면 아이는 지금 자전거를 배우고 있을 뿐이라고.이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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