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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Oct 30. 2022

어쩌면 이런 이별

사랑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어느 날 그토록 나에게 잘해주던 사람이,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웃어주던 사람이, '싫어'라는 말은 하지 않던 그 사람이 이제 나와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툴툴대거나, 갑자기 내 앞에서 등을 보이며 멀어져가거나, 이제 우리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한다거나, 내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고 하면 어떡해야 할까? 그런데 더욱 절망적인 것은 나는 그 사람과 계속 살아야한단다. 도망치거나 피할 다른 곳은 없다. 게다가 더 복장터지는 것은,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필연적인 일이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다가온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한단다. 나는 한동안 그 사람이 내게 해주었던 달콤한 말과 편지들과 사랑스럽던 기억들을 곱씹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헤어지기도 싫지만 헤어지고 싶고, 다시 만나기도 싫지만 그래도 나만 참고 계속 만나야한단다.

싸우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내가 이 사실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었다. 누가 이 고통을, 이 슬픔을 알까?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변하는 것에 대해 남들보다 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어찌 이런 시련이 '당연하게' 온 것일까.

이것이 사춘기 아이를 맞닥뜨렸을 때의 나의, 모든 부모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 영화같은 스토리는 멀리 있지 않다.

나의 둘째 아이 이야기이다.


밑줄치며'사춘기의 부모가 된다는 것' '10살 아이가 너무 말을 잘 들으면 위험하다' '양육에서 가장 노잼시기인 사춘기 자녀 키우는시기라는 것' 등, 아이의 사춘기가 오기전 읽었던 많은 책들은 막상 소용이 없었다는 허탈한 고백을 해본다. 인생은 언제나 실전이다. 예습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에서 지적하듯 아무리 대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해도,딱 거기까지였다.결코 몇발짝일뿐,벗어날 수 없다. 사춘기는 그냥 그대로, 눈깜짝도 하지 않고 언제나 상상보다 그 이상으로 존재했다.


나는 실패나 위기를 별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매우 계산적이어서 모험을 굳이 강행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모험이라 해도, 늘 내 머릿속에는 안정 범위에 있는 것만을 해와서 대학도 현역으로, 결혼도 첫사랑과, 아이가 안생겨서 고생하지도 않았다. 헤어질 것이 두려워서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던 사람, 그것이 바로 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에게 그나마 위기란 무엇이었을까? 구남친(현남편)의 헤어지자는 통보? 승진에서 밀려난 몇안되는 사람에 해당되었던 거?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내 인생 최대의 위기라 느껴지는 것은,  7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를 제외하면,

사춘기 아이를 맞닥뜨리는 일이었다. 특히 둘째는 하루에도 몇번씩 깜찍한 그림과 하트가 열개 이상 그려진 쪽지와 편지를 전해주며 '사랑한다'고 말하던 연인 아니 아이였기에 더욱 그랬다. 노래 가사도 아니고, 이럴 거면 그렇게 사랑해주지 말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곧 '삶'에 대한 태도와 같다고 했던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별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바로 사랑에 대한 자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토록 조건없던 사랑은, 이별이 있은 후에 의미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후회없는 사랑을 해야, 이별도 채무없이 남을 것이다. 그러니 온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 이 삶의 섭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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