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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Oct 30. 2022

욕망 대신 로망

 

사춘기에 대해 쓴, 누구보다 그 나이대 아이를 잘 알아서 청소년 동화를 수두룩하게 썼던 작가마저, 정신연령이 중학생인것같다는 칭찬같은 우스개말까지 들었던 그 작가도, '스무살되면 내보낼 거다, 의무양육기간만 지키겠다'고, 나와 남편이 요즘 늘 하는 그 말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한 걸 봤다. 이쯤되면 '의무양육기간 운운'은 대부분 부모의 '유행가' 가사 아닌가싶었다. 이쯤 되면, 거의 클리셰아닐까?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이럴거면 왜그렇게 잘해줬냐고 언젠간 내게 돌아올거라고 신파도 이런 신파가없지만, 따지고 보면 그 전에 아이가 대가없이 나에게 너무 잘해줘서 더 그런거다.


시험성적은 안물어보고, 아이가 시험이 어쨌더라하면 그 후에 무슨 치킨시켜먹을까 질문만 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나로서는 그것도 살짝 부러울 지경이었다. 물론 말도 안되는 투정인줄 알지만 나도, 시험못봐도 좋으니까 그런 얘기를 털어놓는 걸 듣기만 해도 좋으니, 저녁에 치킨이나 마라탕시켜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 음악을 선택한 아이에게선 그런 말을 듣기가 어려웠다. 세상에 당연한 말은 없는 거였다. 어떤 면에서는 특별하기를 바랬으면서 특이하게 나가는 아이를 받아들이지는 못한 셈이었다.

누군가 인생은 스릴러라고, 알 수 없어서 그래서 무섭다고.

나로 말하자면 알 수 없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러니까, 이의 뒷면이었던 셈이다. 내 이의 뒷부분.내가 가지고 있으나 나는 거의 볼수가 없는.

다 안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모든 걸 알아버린 인생은 암울하다. 

나는 로망이 참 많은 사람이다. 로망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괜찮으니까. 바닷가 절벽에 있는 작은 집에서 아침 눈뜨자마자 나가면 바다에서 뜨는 해를 보고 싶다는 로망, 흰 시트의 침대가 있는 호텔방의 작은 나무 책상에서 나만의 글을 쓰는 로망, 결혼 20주년에는 로마에서 리마인드 웨딩사진을 한컷 남기고 싶다거나. 심지어 이런 로망도 있다. 나는 한번도 객지 생활을 혼자 해 본 일이 없기에 언젠가 아이들이 집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하다 집에 오는 날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고 기다리는 로망.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집을 떠나야한다) 아이가 시험을 볼 때 옆에서 같이 공부하는 로망, 밤늦게 공부할 때 과일을 깎아주는 로망..어떤 로망들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절로 증명되고 있지만 말이다. 시험공부할 때 같이 기다려주는 로망은 내가 졸려서 못하겠더라.

예를 들면 집짓기에 무턱대고 로망이 있어서, '바닷가에 집짓기'같은 책은 무조건 읽고 본다. 피터메일의 '나의 프로방스'나 필 도란의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 같이 낯선 곳에서 당연한 좌충우돌을 겪으며 집을 지어가는 내용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렇게 동경하는 일이라면 언젠가 꼭 해볼만도 하지만, 내 인생에서 그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집 짓는 일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앉다는 것을 대충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을 로망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때로 어떤 일은, 정말 이루기 어려워서 인생 마지막까지도 꿈으로 남아있어야한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만큼 끔찍한 일을 없을 것이니까 말이다. 조금의 호기심, 약간의 로망은 늘 남아있어야한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아는 인생이란, 그러니까 모든 걸 이미 알아버린 인생이란 얼마나 암울한가. 그러니 우리는 실수도 삽질도 찬양하며 살아가야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바라고 생각하는 로망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단 그것이 욕심이 아닐 때. 즉, 욕망이 아니라 로망일때 그것은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욕망이 될 때 인간은 무리하고, 속도를 내고, 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욕망대신 로망만을 늘려가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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