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망버드 Oct 30. 2022

나는 빠져있었을 뿐이에요

아이는 언제나 그 드넓은 모래밭에서 열심히 조개를 줍고 있었다. 바다를 보면 기어이 들어가봐야했고, 세상의 모든 조개껍질과 파도에 닳은 작은 유리병 조각들을 가져갈 것처럼 줍는데 빠져있어 그만 가자고 재촉하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듯했다. 나는 유리조각은 찔리면 위험하다, 는 별 중요하지 않은 이유로 그것들을 버리고 가자고 종용하고 아이는 기어이 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느 이른 초봄 우리는 통도사의 홍매화를 보러 갔었다.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바다 마을이 지척에 있어서 몇달간 기다림이라는 어떤 의식도 없이 갑자기 그 곳에 가게 되었다. 일출로 유명한 간절곶에 해 다저무는 시간 와서 의아한 가족사진을 찍고  오뎅을 먹고 추위를 달래고 도착한 작은 바닷가. 무작정 호텔 어플로 검색해서 찾아낸 바다앞 작은 모텔같은 호텔에 방을 잡고 나와서 회를 먹었다. 남편이 검색하고 예약까지 한 곳이어서 그런지 별 기대가 없었는데 일어나보니 바다앞에는 액자처럼 작은 섬이 떠 있었다.  그리고 아침 봄볕에 눈이 멀듯 빛났다. 그 물결을 보고 나는 그제서야 여기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 카페로 이동할까 했는데 여기서 놀고 싶다는 아이 말에 발걸음을 눌렀다. 아이들과 바다로 나와 다리로 연결된 작은 섬에 가보기도 하고 모래놀이도 하고. 둘째아이는 또 조개와 소라껍질을 줍는데 빠져있어 걸음을 재촉하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매번 그렇지만 나도 덩달아  조개껍질만 보면 열심히 손이 넘칠새라 줍고 있다. 이상한 조개껍질줍기의 마력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아이가 몇년간 주워오던 그렇게 소중히 비닐봉지에 담아온 조개들은 집에 오는 순간 까맣게 잊혀지는 건 미스테리이기도 하다. 너에게 이 조개들은 무엇이냐, 무슨 의미냐. 대체 조개를 줍던 그 오랜 시간들은 무엇이고 같이 줍던 나는 뭐가 되니, 따져묻고 싶어진다. 듣지 않아도 이런 답을 알 것 같지만, 아마도.

조개들은 그 순간 나의 행복이었고 나는 거기에 빠져있었을 뿐이예요.

인생에 그런 것이 한둘이랴. 우리도 알수 없는 순간에 우리를 완전히 지배했다가, 홀연히 놓아버리는 것들. 그 빛나는 바다에서 바다는 보지 못하고 고개 숙여 주웠던 조개들을 까맣게 기억도 못하는 일들이,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조개줍는 시간들이. 엄마는 그 넓었지만 이제는 작아진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고, 아빠는 산골 마을에서 살았단다, 얘기를 해주며 돌아오는 길에 잠든 아이의 얼굴은 엄마,나는 이 조개들을 한 순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나중에, 아주 나중엔 기억할 거예요, 지금 바로 엄마처럼. 이라고 이미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지금 이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갈 것임을.

작가의 이전글 목표는, 꼭 나같은 딸 낳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