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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Nov 17. 2019

나는 잠시 빠져있었을 뿐이에요

양산

이렇게 넓은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멀리는 울진, 가까이는 청도까지 처음 가보는 곳들을 탐험하는 재미에 빠졌다. 어느 날엔, 어릴 때 살던 곳에 잠깐 들리듯 가보기도 했다.그 곳은 부산 근처의 해안 마을이다.

대구로 이사온지 1년이 지났을 때였나, 한참 남편의 실어증(회사가기싫어증)이 기승을 부릴 때, 우리는 매화를 보러 통도사에 가기로 했다.

남편의 사전정보조사에 의하면 통도사에는 매화의 시작에 진사님(사진사님)들이 성지처럼 오는 매화나무가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3대 사찰이라는 통도사 입구의 개울가에는 짐짓 언 눈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그 눈이 녹아서 반짝반짝 흐르고 있었다. 그냥 보면 봄이 정말 왔구나, 싶은. 그렇지만 아직 공기는 차가웠다. 

통도사 경내에는 홍매화나무가 고작 4개 정도였고 그 주변만 사람들이 사진찍느라고 붐비고 있었다. 나는 매화마을처럼 나무가 아주 많은 줄 알았는데, 절로 "아이고, 이게 뭐라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철몰라서, 아님 철이 너무 일찍 들어서 그렇게 일찌기 핀다고 하는 매화는 아직 코끝이 두 볼이 시리도록 추워도 필 날을 알아서 그렇게 핀다. 사람들은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만이 제일 신기하더란 걸 알아서, 계절이 그렇게 신통한 걸 알아서 매화를 그렇게 전설처럼 찾아 간다.

통도사를 나와서 즉흥적으로 남쪽으로 내려간 진하는 작은 바다마을이었다. 일출로 유명한 간절곶에 해 다 저무는 시간 와서 의아한 가족사진을 찍고 오뎅을 먹고 추위를 달래고 도착한 진하. 무작정 호텔 어플로 검색해서 찾아낸 바다앞 작은 모텔같은 호텔에 방을 잡고 나와서 회를 먹었다. 남편이 검색한 곳이어서 그런지 별 신비감이 없었는데 일어나보니 바다앞에는 액자처럼 작은 섬이 떠 있었다. 그리고 아침 봄볕에 눈이 멀듯 빛나는, 남해에 가까운 바다, 그 물결을 보고 나는 그제서야 여기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간절곶 쪽 카페로 이동해서 아침을 먹으려고 했는데 그냥 이 바다앞에서 놀고 싶다는 아이들의 말에 그냥 바로 앞 카페에 가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켜 놓고 반짝이는 남해의 아침햇살에 눈이 부셔 짐짓 늦잠이라도 자는 듯이 눈을 감는다.

한참을 놀던 아이들과 강양항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가본다. 둘째아이는 또 조개와 소라껍질을 줍는데 빠져있다. 매번 그렇지만 나도 덩달아 조개껍질만 보면 열심히 손이 넘칠새라 줍고 있다. 이상한 조개껍질줍기의 마력. 그렇게 소중히 비닐봉지에 담아온 조개들은 집에 오는 순간 까맣게 잊혀지는 미스테리. 너에게 이 조개들은 무엇이냐, 무슨 의미냐. 대체 조개를 줍던 시간들은 무엇이냐 같이 줍던 나는 뭐가 되니, 따져묻고 싶어진다. 듣지 않아도 답을 알 것 같지만. 

- 조개들은 그 순간 나의 행복이었고 나는 거기에 빠져있었을 뿐이예요. 

인생에 그런 것이 한둘이랴. 우리도 알수 없는 순간에 우리를 완전히 지배했다가, 홀연히 놓아버리는 것들. 그 빛나는 바다에서 바다는 보지 못하고 고개 숙여 주웠던 조개들을 까맣게 기억도 못하는 일들이,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조개줍는 시간들이. 

우연히도, 진하까지 내려오면, 내가 어릴 때 살던 곳이 지척이다. 그렇게 덜컥, 나는 어릴 때 살던 바닷가로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떠나왔던, 30년만의 그곳에, 나만의 의식도 마음의 준비(그런 걸 해야한다면)도 없이.    

 서울에서 차로 오려면 5시간도 더 넘는 동해의 끝인 이 곳, 내 일생 가장 순수의 시대로 이름붙이고, 영원히 남겨두어야할 유년시절이라는 의미에서,어쩌면 진짜 상징적으로 땅끝같던 곳. 을지로 한복판을 매일 아침 또각거리며 걸을 때는 여기 또 이렇게 올 줄은,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거리가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내가 살 던 곳은 회사의 대단지 사택이었기에, 그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었으니 나는 정말 행운아이다. 그 곳은 거의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내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주말이면 따라다녔던, 부모님이 테니스치러 가던 테니스장도, 봄이면 벚꽃잎들을 주워 뿌려대고, 여름이면 매일같이 수영하러 가던 길들도, 다독상을 받을만큼 자주 걸어서 가던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도, 이렇게 그리워할 줄 몰랐던, 너무 이르게 그리워했던 것 같은 그 곳이 그대로 다 그대로 있었다. 그러고보면 아이들은 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아이들이 초등학생쯤되면 부부는 테니스를 치게(체중관리를 하게) 마련인가보다.     

그리고 어릴 땐 그렇게 넓었던 그 학교 앞 해변 백사장이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마치 시간의 오목렌즈를 끼고 보는 것 같은 그 놀라움이란.     

컴컴해진 밤, 돌아오는 차안에서 '엄마는 이렇게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고, 아빠는 산골 마을에서 살았단다', 얘기를 해주며 돌아보니 돌아오는 길에 잠든 아이의 눈감은그 얼굴은, ‘엄마,나는 그 조개를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아주 나중에, 아주 나중엔 다시 기억할 거예요, 이렇게 엄마처럼.’이라고 이미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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