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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Nov 17. 2019

드디어 벚꽃의 성지

진해

나도 보통의 한국사람들처럼 벚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이다. 게다가 어렸을 때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는 늘 벚나무가 가득해 봄이 되면 황홀하리만큼 하늘 가득한 벚꽃을 보고 벚꽃잎비를 맞고 벚나무에 올라가 맛있었는지도 모를 버찌도 따먹고 그런 시절을 보냈더랬다.  

그래서 우리는 드디어, 진해에 갔다. 

사실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일요일엔 또 하나의 사진동아리를 결성한 남편이 구례인지 어딘지로 출사를 간다고 하길래, 금요일에 참여수업과 총회를 참석하고, 첫째가 3시에 수업을 마치자마자 출발해서 토요일에 돌아오기로 했다. 어쨌든 토요일 아침 일찍 가면 조금은 한가하게 벚꽃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나만의 착각 생각이었다. 아니, 아침 일찍 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나의 착각이었나.


태어나 처음으로 가보는, 진해와 마산을 합친 창원이라는 도시. 그 곳에 진해 벚꽃을 보기에 적당한 호텔을 찾는 것은 조금 어렵게 느껴졌었다. 나름 리뷰를 열심히 분석해 예약한 호텔은 창원버스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호텔로, 그런 터미널뷰의 호텔에 묵는 것은 처음일지도 몰랐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3층 정도 되는 터미널의 지붕은, 생각외로 단아한 기와지붕모양이었고 가지런히 버스들이 정렬되었다가 나갔다가 하는 모습은 의외로 위안을 주었다. 결론적으로 이 호텔은 가격대비 뛰어난 만족을 주었다. 로비와 방과 침구는 깨끗했다.

금요일에 일찍 자고 토요일 아침 일찍 나와 주요 벚꽃 스팟을 돌아보고자 하는 나의 계획은, 남편의 여좌천 벚꽃야경을 찍고자 하는 욕구에 묵살당했다. 그는 꼭 여좌천 야경을 찍어야한다고 주장했다. 회사가기 실어증에 걸린 남편을 최대한 배려해야 다음에 또 진해갈 차비라도 받게 된다는 생각에 우리는 호텔에서 잠깐 (잔다는 것이 좀 길게) 눈을 붙였다가 7시가 다 된 시간에 여좌천으로 향했다. 여좌천은 작은 하천인데 양쪽으로 벚나무가 흐드러지게 줄지어있어 이 계절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봐야할 50곳에도 선정되었단다.

여좌천 옆쪽에 차를 대고 좀 걸어서 일단 저녁으로 산낙지전골을 먹었다. 왠지 벚꽃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아담한 진해에는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일단 산낙지전골은 맛있었다. 지역 주민들의 맛집인듯 손님이 삼삼오오 모여앉는 집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여좌천으로 향했다. 벌써 8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길에는 식당도 몇 없었고, 불이 많이 꺼져있었다. 여좌천으로 이어지는 골목은 컴컴했다. 좀 늦게 왔나, 여기가 내일 축제하는 곳이 맞나 싶을 때 갑자기 옷장이라도 연 듯 펼쳐지는 별천지 벚꽃천지에 눈이 휘둥그레지게 된다. 그곳은 불야성이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전래동화에 복숭아 향기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무릉도원이 펼쳐지는 이야기가 있었던가, 그렇게 그 곳은 딴 세상같았다. 조명은 수백그루의 벚나무들을 비추고 벚꽃들이 밤에 내리는 눈마냥 빛나고 있었으며, 사람들이 끝도 없이 그 벚나무 아래를 걷고 있었다. 

그건 마치 밤에 아무도 없을 것 같았던 학교 운동장에 가보니 수십명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트랙따라 뒤로 걷기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던 것 이후 가장 큰 충격이었달까..

진해에는 벚꽃 조화로 만든 화관을 파는데 거의 누구든 저 화관을 쓰고 있다. 둘째가 사달라고 하기도 했지만 나도 열심히 쓰고 사진을 찍었다. 청춘이 별거냐-하듯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 부대 들도 모두 머리에 하나씩. 벚꽃은, 봄은, 꽃은. 그런 마력이 있는 것이다.

평소 사람많은 걸 싫어하는 남편도 이번 진해여행에선 사람많은 것도 하나의 풍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과연 벚꽃이란 그런 것인가보다. 

안그래도 일찍 일어나 학교가느라고 피곤한 아이들인데, 밤까지 벚나무 아래 걷고 또 걷던 아이들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잠이 까무룩들고 간신히 이만 닦여 재우고 우리도 그 이상한 벚꽃의 도시에서, 잠이 들었다.

진해 벚꽃축제의 주요 사진 포인트로는 여좌천, 경화역, 그리고 오직축제기간만 개방한다는 해군사관학교 등이 있다. 

우리는 오전에 일찍 경화역부터 가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일찍 일어나지는 못했을뿐이고, 오랜만에 맥모닝 먹는다고 시간 허비했을뿐이고.

경화역에 10시반쯤 도착하자, 상황은 이랬다. 

피난기차 아닙니다.. 기차가 다니고 있을때 사람들이 벚꽃잎 휘날리는 기차를 찍으려고 위험하게 나오자 폐역된 김에 기차를 가져다놓았다고 한다.

군항제를 위한 불꽃축제 리허설이 한참 진행되고 있던 부두의 편의점에선 캔맥주도 벚꽃옷을 입고 있었다. 다른 곳 말고 진해에서 사는 것도 기념이라며 분홍캔 하나 구입하고.

마치 벚꽃이 없으면 봄이 없는 것처럼 봄만 되면 벚꽃앓이에 들썩이지만 벚꽃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집앞에 있을 벚나무 아래를 찬찬히 걷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찍어야한다는, 기억해야한다는 조바심없이 그렇게 봄바람을 맞으며 걷는 것이.  

그렇지만 우리는 못내 아쉬워 이번 주말엔 또 다른 벚꽃을 찾아 갈듯하고, 아직은 그렇게 뭔가를 찾아가고 찾아다니는 것도, 어쩌면 또 한편의 꽃을 감상하는, 봄을 보내는 또 하나의 바람직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일본에서는 계절마다 그에 맞는 음식을 꼭 찾아 먹는 것을 순(旬) 이라고 하던가, 꽃놀이는 사계절이 허락된 우리에게 숙명적인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달려가다가, 봄햇살에 빛나는 바다를 실눈으로 바라보다가, 보호턱을 평균대 삼아 한줄로 걸어가다가, 벚나무 아래에서 팔 아파가며 셀카를 몇장씩 찍으면서도 그렇게 보낸다. 노래제목처럼 봄, 사랑, 벚꽃말고는 지금 아무것도 없는 것는 것이 열없게 느껴지다가도, 어쨌든 벚꽃은 무료이고, 모두에게 평등하고, 그렇게 너그럽다는 것, 그것이 봄의 가장 좋은 점. 내가 바꿀 일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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