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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Nov 17. 2019

어차피 인생은 예측불가

창녕

어김없이 지구가 공전궤도에 맞춰 돌아와 태양앞에 기울어지며, 다른 말로 봄이 오면서, 햇살이 얼굴에 닿는 온도가 달라지고, 이제 우리집 거실의 온도는 27도에 다다랐다. 조카를 데려와 1주일 정도 같이 지냈던 봄방학도 끝나고 개학을 했다는 것은, 이닦는데 입안이 다 헐어있었다는 한마디로 대신될 수 있겠다.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육아 자격증이란게 있다면 조카동반실습으로 급수도 한단계쯤은 업그레이드 된듯한 봄방학도 끝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는 것은.    

그리고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싶었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 처음 본 창밖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대구 내려온지 2년여만에 처음 보는 함박눈, 그게 하필 지금이라니.    

눈이 내려도 아침이 되면 다 녹아버리는 따뜻한 남쪽나라인 이곳에, 서울에 비해서 눈이 안오는게 너무 아이들의 불만이었던 이 곳에, 이렇게 밤새 열심히 눈이 와서 차들의 지붕위에 이불마냥 소복히 덮혔다. 하염없이 내리고, 새들은 지붕찾아 날아가고 사실 원래 의레 3,4월쯤 예상치못한 큰 눈이 한번씩 오긴 하는데 워낙 눈 구경하기 힘든 곳이다 보니 여기는 지금 거짓말 보태서 축제 분위기.

한때는 경칩이 되기도 전에 두물머리에 가는 것이 우리가 봄을 맞는 의식이었다. 물이 많은 그 지역의 특성상 가득한 물안개를 보며 따뜻하다고도, 춥다고도 할 수 없는 묘한 온도 속에서 굳이 이르게 얇게 옷을 입고는 한번 떨다오는 것이 통과의례였다. 연잎핫도그는 먹어보지 못했지만 강가 둑옆 딸기 비닐하우스는 아직 있을까. 멀어지면, 별게 다 그리운. 대구에 와서는 두물머리에 가서 봄 설레발을 못치는구나, 생각하니 영 아쉽고 해야할 뭔가를 하지 않은 것처럼 찜찜하다. 사실 지금 이 때는 꽃도 없고, 잔디도 없고, 단풍도 없어서 갈 곳이 제일 애매하다고 짐짓 불평해본다.   

그래서 개학맞이인지 뭔지 별 명분도 없이 창녕 산토끼노래동산에 가기로 했다. 산토끼 동요를 처음 만든 이일래 선생님이 창녕의 한 학교에 근무할 당시 산토끼 동요를 처음 만들었다는 인연으로, 창녕에는 작게, 그러나 모든 것이 토끼 컨셉으로 되어 있는 작은 공원이 있는 것이다.  심드렁해하는 남편과 더 심드렁해하는 첫째를 이끌고 산토끼놀이동산 아니 산토끼노래동산으로 아침부터 향한다. 끼토산 야끼토 를디어 냐느가~가는 차 안에서 산토끼 노래 거꾸로 불러주니 애들이 엄청 신기해한다.

사실 창녕에는 우포늪이 있다. 

그렇다해도 이 날은 늦은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해서 바로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남편이 산토끼노래동산이 너무 재미없었는지 굳이 꼭 우포늪에 들려야겠단다. 한국 최대의 슾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잠정등록된, 새 몇십종이 산다는  우포늪, 왠지 마음속에 '다다를 수 없는, 갈 수 없을 것 같은 그 어떤 아스라한 곳'으로 저장된 이 곳(이런 곳은 나에게 우유니 사막, 다합 바다등이 있다)에 이런 흐린 날에 처음 오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남자가 칼 아니 카메라를 한번 들었으면 우포늪에는 한번 들러줘야할 일이다. 

가다가 우포늪 검색중 재미있는 시를 발견했는데, 김바다라는 사람이 지은 이 '우포늪'이란 시는 이랬다.    

안개에 덮힌     

우포늪은     

새들의 세상이다    

우웩웩웩 우웩웩우게    

퀘퀘퀘퀘 퀘퀘퀘퀘    

깨깩깨객 깨깩깨깩    

...     

대략 이런 새소리가 가득한 시가 있다고 해서 차안에서 아이들에게도 읽어주면서 "이게 뭐야, 대체??"했는데, 우리는 차 문을 열자마자, 이것은 한 치 군더더기 없는, 사실주의 시였음을 알게 된다.    

군데군데 나무와 검불이 물웅덩이 위로 우거진 그 늪에서, 원앙, 청둥오리,왜가리, 백로 등 수많은  새들의 저런 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치 수수하고 신비로운 여인의 괄괄한 목소리를 들어 확 깨듯.

놀란 첫인상을 진정시키며  사람들이 주로 자전거를 대여해서 타고 다니는 사지포에서 우포늪을 향해 긴 둑을 걸었는데, 옆에는 끝도 없는 양파밭이 연녹색 싹으로 덮여 있었다. 창녕이 양파 시배지라고 한다. 큰 양파 모형도 있다. 아마 한국판 리틀포레스트에서 언급됐던, '양파 아주심기'를 마친 밭이려나.

시끄러운 새 소리를 배경으로 한쪽 하늘로는 황새들이 나는 모습, 한쪽으로는 양파밭을 보며 긴긴 둑을 걸어 끝까지도 못돌고 돌아오는데, 둘째는 힘들다고 비틀비틀 쓰러지는 시늉을 내며 걷는다.

흐린 우포늪에 한번쯤 오길 잘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예의 그 '성급한' 봄 맞이 장소로서 두물머리를 대체할 곳으로 이 곳을 결정했다. 

사실 정말로 두물머리에 봄을 맞으러 갔을때, 날씨가 봄날씨였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두물머리 끝에 있는 버드나무는 앙상했고 황포돛배도 운행하지 않았다. 그렇게 봄을 서둘러 마중나갈때만 봄맞이가 의미있는 것인가보다. 정작 봄 한가운데에 있을 때를 우리는 알지 못하고, 그렇게 봄은, 우리가 서둘러 앞서 갈때에만 뒤에서 온다.

고요함을 기대했던 우포늪은 새소리로 시끄러웠고 TV 리모콘이 갑자기 안되고 갑자기 눈이 많이 내리고, 엄마가 해줘도 생전 안먹던 미나리나물을 내가 지금 만들고. 이렇게 예측불가다. 그래도 쌓여있는 집안일을 눈내리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차분히 해야할 명분이 생겨서, 예측불가래도 좋은 눈오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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