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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Nov 17. 2019

퇴사의 이유

사천

나의 친애하는 전 회사동기가 친절히 일깨워주었다. 나의 퇴사이유가, 자그마치(?) 또는 소박하게도 아이들에게 온전한, 방학다운 방학을 주고 싶어서였다는 걸.

그 이유를 잊고 살았나보다. 역시 이런 것을 일깨워줄 오래된 친구는 필요하다.

어쩌랴. 너무 멀리 온 건지, 나는 이번 방학에 어떤 절박함으로 때때로 '탈출'버튼을 누르고 여행을 갔다. 통영은 가봤고 여수는 멀고 막 봄 조바심을 낼 때라 남쪽으로 가고 싶어서 2월 어느 주말 우리가 간 곳은 사천. 결론적으로는 추위만 느끼고 돌아왔지만 연말 변산반도에서 맞은 바람의 온도와는 또 역시 달랐다.

사천은 삼천포의 현재 지명으로, 그 유명한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 속담의 오명을 씻고자 한 개명의 결과라고 들었다.  사실 내가 탈출버튼을 누른 것이긴 하지만 역시 제일 먼저 염두에 둔, 첫째가 하고 싶다고 했던 짚라인을 검색하다가 얻어 걸린 곳이다. 바다위를 가르는 짚라인이 있고, 싸다고 해서. 그 곳은 코끼리바위가 있다는 남일대 해수욕장이라는 아담한 해변인데, 바다위를 짚라인을 타고 가로지른다. 보통 짚라인이 4만원~6만원하는 것에 비해 여기는 만원정도한다. 엄마랑 꼭 같이 타야탄다는 둘째때문에 절대로 탈 생각이 없었으나 졸지에 타게 된 고소공포증  엄마. (자식이 뭔지) 그렇게 못타겠다던 둘째는, 같이 타고 나서 혼자 2번은 더 탔고 더 타고 싶다는 걸 말려야했다. (#울집 애들 스타일) 그러고나선, "엄마, 정말 너무 너무  짜릿해. 이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천의 유명한 항공우주박물관이랑 별주부 전설이 있다는 비토섬은 가지 못했지만,사천과 그 앞바다의 창선도를 연결하는, 국내 최초의 케이블카를 타고, (고소공포증있는데 가족이 뭔지) 낙조로 유명한 실안해안도로의 해상카페를 갔고, 올라오는 길에 고성의 공룡화석지를 둘러보았다.


          


 


사실 떠나거나  도망가는 일이 더 쉬울지라도, 제일 어려운, 머물러 있는 것을 선택했다(고 믿고 싶다). 그렇게 개학을 했고, 입학을 했고, 중학교에 간 첫째를 따라 나도 덩달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아직 둘째가 초등학생이라 여전히 마음이 초등학교에 머물 줄 알았는데.  이제  다시 나의 시침은 나의 중학교 시절로 향하고, 또 나는 또다른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

3학년이 된 둘째는,들뜬 목소리로"엄마,우리 선생님 너무 좋아!! 기분이 너무 좋아!!"  돌이켜보니, 지금껏 좋은 선생님 만나게 해달라고 따로 기원한 적 한번 없지만, 선생님 싫다는 말은 한 적이 없는 아이였다.

어제는 왠 결심을 하고 온가족이 집뒷산 정상까지 다녀왔다.총 6시간.허벅지가 뒤틀리는 듯 했고 귀가 떨어져나갈듯 했고 또 언제 등산이란 걸 하게 될 지는 모르지만 내려왔을 때 설명 못할 성취감이 몸속에서 혈류를 따라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힘든데 개운한, 사우나들어가서 시원한 그 기분. 이래서 등산등산 하는구나.산 정상, 한뼘되는 그 바위 사이에서 먹은 컵라면은 아마도 생애 두번째 맛있는 컵라면이 되었다.첫번째는 해외여행가서 3일째쯤 먹은 것이다.

인생은, 일상은, 뜻대로 되지 않고, 하물며 저녁에 먹으려던 메뉴도 틀어지고,날씨는 자주 배반하지만, 3월의 날씨만큼이나 우리도 변덕스럽고 그렇게나 일교차가 크지만.그래도 다시 매일매일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게 좋겠다, 작심삼월. 둘째가 방과후과학에서 받아온, 너무 손톱만한 튤립구근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으니.일단은, 봄 기념으로 산 냉이와 달래를 내일은 냉장고에서 구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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