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망버드 Nov 17. 2019

첫 새해를 맞이하며

2016년이 가고, 2017년이 왔다. 어영부영 사는 나지만 늘 한 해의 마지막 즈음에는 맥주 한캔 마시며  한 해의 소회를 쓰는 의식을 진부하나마 치뤘던 것 같은데, 그  조금 남아있던 총총함도 어디갔는지 이렇게 2017년은 이미 왔다.

연말연초에 몰려있는 아이들 생일을 핑계로 그맘때 늘 겨울여행을 떠나는 우리지만,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고 게으른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해돋이는 그 동안 그리 매력적인 여행 테마는 아니었다. 

강원도 고성이었나, 끔찍히 추웠던 날씨에 캠핑하면서 고생만 하고 잔뜩 흐려서 보지 못했던 해돋이를 필두로 

간절곶이니 정동진이니 호미곶이니 검색해 본 곳만도 해돋이 전문가가 될 정도. 추위를 유난히 타는 나에게 겨울여행과 겨울바다는 사실 쥐약이다. 조금만 걸어도 동동거리면서 빨리 들어갈 곳을 찾고, 해돋이를 보느니 온돌방에서 차라리 자겠다는 생각조차 하는 나이지만, 해마다 겨울여행을 하면서 그 시린 추위속으로 굳이 들어가는 것은 역설적으로 더 따뜻한 커피가 주는 손톱만큼의 안온함을 기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올해는 영덕의 따뜻한 아랫목 콘도 방안에서 해돋이를 보았다. 

바다와 하늘 사이엔 약간의 구름이 있어서 해는 구름띠 속에서 손톱같이 나왔다.

아마도 새해 첫날에 해돋이를 봤니 어쩌니 해도 그 하루하루가 쌓여가는 1년의 무게에는 비할 바가 없다는 걸 지난 2016년을 통해서 더 절절히 깨달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생애 처음으로,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오메가 해돋이를 봤지만 별 볼일 성과 없던  2016년.  나는 어쩌면 그렇게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올해는 큰 변화가 많았다. 우리는 처음으로 대구라는 곳에 이사를 했고 지진을 겪었다.

처음으로 울진,합천,청도,남해를 가봤고 포항, 영덕,양산, 문경, 안동엘 가봤고 제주도도 갔다.

나는 처음으로 주부의 상징 사골곰국을 끓여 냉동실 그릇그릇마다 쟁여놓는 것에 성공해보았으며(이제 혼자 장거리 여행을 갈 수 있다.?) 어설프나마 열무김치와 동치미도 담가보았고 새로운 인간관계도 생겼다.

처음으로 겪는 향수병 비슷한 것과 처음으로 대한 아이의 사춘기 비슷한 것에 당황도 했고 울기도 하고 포기도 했다. 남편은 늘어난 출장으로 너무 바빴다. 이 모든 것이 적응하는 과정이었으리라. 

그래서 올해는 그렇게 요행은 빼고 간절함만 더한 마음으로 해돋이를 보기로 했다. 절실하되 담담한 마음으로. 의미는 부여하되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올해는 그렇게 살기로 한다.


물좋기로 유명하다는 청송 온천에서 온천을 하고, 시골의 겨울밤을 함께 걷고 다음날 달기약수를 마시고 달기약수로 끓였다는 백숙을 먹고 시장에서 쪄온 대게를 모두 둘러앉아 먹으며 둘째 생일케익에 초를 끄고, 해돋이를 보고 바닷가 마을 산책을 하고 불가사리를 잡고 포항 백사장을 걸어본 우리의 겨울여행은 평온하고 좋았다.1월의 첫날은 마치 봄처럼 따뜻했다. 그렇게 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들썩거리지만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한다.

우리 가족은 마지막날 콘도에서 영덕대게의 다리 살을 뽑아먹으며 새해 서로의 바램을 나눴다. 나는 남편이 스트레스 덜 받는 것 밖에는 바램이 없다. 남편은, 새해엔 내가 가사와 육아 말고 나만의 시간을 조금 더 가지(고 자기계발도 좀 더 해서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는것이 바램이라고 한다.

이렇게 올해 첫 여행 프로젝트(?)를 마치고 돌아온 지금.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쌓인 빨래와 청소와 방학 맞은 두 아이가 맞아주는 일상이지만 이 하루가 1년의 모습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어떤 요행도 어떤 노림수도 부리지 않고. 거기에 호기심과 진정성도 더해지면 좋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라라랜드고, 될 수 있는 곳도 라라랜드이니.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퇴사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