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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Nov 17. 2019

게으름의 축제


이 축제로 말할 것 같으면, 심심하고 지루해서 혀가 간질거리고 다리가 저리는 축제다. 겨울방학과 아이의  졸업식과 긴긴 봄방학.세상에서 제일 체감기간이 길고 심심한 축제일지도 모른다. (단시간에 가장 체감기간이 긴 것으로는, 부모 눈썰매장 체험이 있다.-_-)


2월의 낮은 오후 햇살이 데운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만화책을 읽고 있는, 예비 중딩 아니 중학생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 이 축제의 절정이다.  


청소를 하고, 점심과 저녁밥을 차리고 먹고  와중에 노란색으로 주로 이루어진, 아이 졸업식 꽃다발을  병에 꽂아 감상하는 게 유일한 호사였던 날들이지만, 빈 방을 청소할 때마다 그래도 나름 겸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신기하다. 매일 매일  누군가가 머무르다 나간 빈 방을 청소한다는 것은, 그 빈 방에 머무른다는 것은, 권리이자 동시에 빚이다. 마치 예전에 처음으로 누군가의, 남편의, 잠든 모습을 본 것을 마치 빚을 진 것 같이 느낀 것처럼, 그렇게 방을 쓰다듬듯 닦고 쓸었다.



그렇게 느린 청소를 끝내고 나면, 시래기나물을 만들고 겉절이 배추를 절이고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진 친구들과 안부를 나누고, 또 아이들과 세 끼를 마주앉아 먹는다. 유독 게을렀던 이번 겨울, 시금치를 데치면서는 봄 생각을 했다. 청보리가 넘실대는 남도 어느 곳이 저절로 떠오르곤 했었다.



유독 심드렁하다고 느껴지던 이번 겨울, 그래도 변산반도에서 일몰과 일출을 보고 포항 호미곶에도 갔다왔지만, 올해엔 멀고 먼 곳으로 떠날수있을까, 그런 용기가 내게 있을까.현실은 고작 맥주와 먹을 감자칩을 뜯는 결정을 힘들여 하는 나지만. 아이와 인문학적인 긴 여행을 고고하게 하고 싶기도 하고 그저 가까운 일본의 어느 도시에서 자질구레한 뭘 살까 고민을 위한 고민으로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네팔 트래킹을 하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선한 웃음들을 만나고프기도하고, 모든 것이 레고로 만들어진 레고랜드에 가서 자본주의의 유희를 즐기고싶기도 하다.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인데.


사는 곳을 바꾸었다고 해서, 거기에서 또 이사를 했다고해서 뭔가가 바뀌는 마법이 일어나지 않듯, 정확히는,나를 바꾸는 마법은 없었듯, 더 이상의 게으름의 축제를 끝내는 것은 나다. 바꿀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변해야한다는 것 뿐이었으니.



어쨌든 아무리 그래도 머리에 꽃달것같았던 시간들(이라 쓰고 방학이라 읽는다)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면서,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껴지)는 이 곳에서, 갑자기 깨달았다. 이건 아이들에겐, 여행이다. 정말로 축제다. 시끄럽거나 화려하거나 이벤트의 연속이 절대로 아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징글맞게 서로  붙어있으면서, 아이들에게 우리가 그 어떤 누구와보다도 아무 이유없이 끈끈해지라는 기회인 것이다. 말로는 일없는 일상이 가장 소중한 선물인양 떠들어댔으나 탈출할 거리만 찾아 입안이 간질거리면서도, 굳이 어떻게든 방학을 미화하려고 할 필요 없이, 이 방학이라는 이름의,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한 축제의 목적이자 존재의의는, 바로 그런 것이었던 것이다. 목적의식없이 가족과 함께 있는 것. 너와 내가 최소한의 교류만을 유지해도, 아무런 이벤트가 없어도, 함께 '지속하여' 있을 수 있는 기간을 연습하는 기간. 그리하여 방학 태스크를 통과할 수록 싫든 좋든 가족력이 상승한다는 것.이 진절머리나도록 긴 방학후엔 아마도 우리는 그런 영광아닌 영광스런 트로피를 추가하게 될 것이다. 둘째 책상아래 물건들의 혼돈의 카오스적 엔트로피 증가에 눈감을 수 있는 둔감력도 키우며.



그리고 시간이 4배로 느리게 가는 눈썰매장을 패스한 것이 어디냐고 안도하지만,그러나 2월이 다 다 가지 않았다면, 안심하긴 이르다.



오늘 저녁도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밥을 하고 감자를 착실하게 채썰었다. 내일은 남쪽에는 봄이 얼만큼 왔나 내려가 볼 예정이다. 겨울의 응당 당연한 일로 게으르고 심드렁했었고, 또 때가 되니 움직일 마음이 생긴다.그렇게 겨울은 겨울대로, 또 봄은 봄대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것일 뿐인가보다.


그리하여 늘 작심 3일일 결심을 하며 3월을 맞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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