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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Nov 17. 2019

수레국화길은 왜 사라졌는가

하늘 아래 같은 자연은 없다고 했던가. 오늘도 저수지 둘레길로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무성해서 내 허벅지를 따갑게 찔렀던 길가의 잡초들이 싹 정리되어 있었다. 역시나, 양귀비들도 같이 사라졌고 지베르니길은 과거의 반쪽짜리 영광만이 초라하게 남아있었다.

저수지 주변에 긴 호스가 보였고, (아마도 구청 어딘가에서) 보냈을 아저씨들이 몇몇 보였다. 둘레길 주변에 조성한 나무들에 물을 대기 위해서인듯했다. 아닌게 아니라 자세히 보니 둘레길을 조성하느라고 식목한 벚나무들에 잎이 별로 없이 가지만 남아있었다. 잘은 몰라도 응급상황인듯했다. 그래서인지 나무 주변의 무성한 잡초들은 모두 베어진 것이다. 목적이야 어떻든 양귀비와 지베르니정원, 기생초와 금계국 동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좀 당황스러웠지만 괜찮다. 그 넘어 보이지 않았던 미모사가 보였으니. 아. 지베르니 정원의 그 보라빛, 분홍빛의 이름모르던 꽃은 '수레국화' 라는 것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며칠째 같은 곳으로 나가면서 또 여러 사실들을 알게 된다. 날이 길어지면서 저수지에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다. 시간을 낚는 것이라지만, 시간도 낚으면서 물고기도 낚으니 좋을 것 같다.근처 공항에서 이쪽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는 8시30분이후 9시까지 5분 간격으로 2대가 떠오른다. 백로는 늘 같은 자리에서 물을 마신다. 자세가 잘못되면 걷기 운동을 해도 허리가 아프다.

엊그제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들춰보다가 '엄마,내말좀들어줘'(제목이 정확하지 않음)란 책을 몇장 읽었다.학교에서 청소년상담사로 일하는 분들이 쓴 책이었는데, 주옥같은 많은 이야기중에서도, 사춘기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가장 좋은 말은,

 "그래?"

"그렇구나."

"왜?" 란다.

마지막의 "왜?"는 사실 빈도가 낮아도 된단다. ㅋㅋㅋ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권태기에 빠진 연인사이의 대화 아닌가. 소위 '먹자, 아는? 자자' 와 맞먹는다.

어쩌면 사춘기 아들과의 관계 또한 오래되어 이제는 더 이상 자기마음대로 안되는 연인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좋았지만, 조만간 떠나보내야하는. 맹목적인 사랑에 빠졌다가 깨어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이별(이란 것이 있기는 하다면)을 경험해보지 않은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이별의 과정들이 그저 힘겹고 그저 낯설고 회피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그리 이별이 많지 않았고, 굳이 말하자면 헤어질 것 같을 때 먼저 헤어져버리는 방법을 택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름다운 이별이 있다는 것을 겪지도, 느껴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공지영의 책에서던가, 누군가 그랬다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삶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이런 맥락에서,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사랑을 받아들이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중학생이 되는 아들과 유년의(?) '이별의식'을 하겠다며 둘만의 캠핑을 갔다왔던 남편을 오바스럽다고 쿠사리를 주었지만, 그것은 이별을 많이 경험하고 건강한 이별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어떤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에 블로그에 빠진 첫째 아이는 10시면 불끄라는 엄마의 성화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컴퓨터를 하는데, 말은 이별이니뭐니 해도 아이는 늘상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고 돌아와서는 게임을 하고 제 방에 있는 거북이와 가재와 새우들에게 먹이를 주고 동생 방에 있는 장수풍뎅이도 관찰하고 만화책을 보면서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갈 것이다. 그렇더라해도 분명 갑자기 잡초가 베이고 늘 있던 꽃들이 사라지고 다른 꽃들이 피어나고 나무에 물을 주는 사건들이 펼쳐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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