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망버드 Nov 17. 2019

내 생애 최초의 일, 아이의 사춘기

아이는 사춘기, 정확히는 몸과 마음이 크면서 아주 조용히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어 유난히 외모에 신경을 쓰는 듯 하더니, 급기야 안경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나보다. 눈이 나빠 눈을 찡그리며 다니는 것도 본인은 모르고, 증명사진을 찍을 때도, 학교에 갈 때도 안경을 쓰지 않고 가서 내 속을 태웠다. 사춘기란, 이렇게 끝까지 나의 말을 듣지 않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나는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 대해 관용을, 이해를 베풀 수 없었다. 나에 대한 맹목적 사랑이 식은 연인 앞에서, 나는 화만 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냥 보고는 있을 수 없는 법. 테를 바꿔주겠다, 갑자기 쓰고 가면 어색할테니 개학하면 쓰고 가자, 내 딴에는 정말 연애할 때도 안 해 본 지능적인 밀당을 하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가족은, 육아는, 결국은 인간관계라, 아이의 몸이 크면 끝났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어려운 것이었다. 계속 감정을 기르고, 다듬고, 지키고, 내보내고 들여오고 하면서 빚어가는 것이었다.

누가 숨기려고 해서 숨긴 것도 아닌데 임신과 출산, 육아(신생아기.오 마이 갓.)의 그 험난한 비밀을 알게 될 때 입이 쩍 벌어지는 배신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처럼, 사춘기 또한 공공연한 비밀로 전해져내려왔다. 대나무숲의 당나귀귀 같은 외침처럼, 대체로 들으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아 바로 옆에 있어도 보이지 않고, 아무리 얘기해줘도 들리지 않고, 그 비밀의 숲에 발을 들여서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에코처럼 숨어 있는 그런 것. 비밀의 진흙탕 같은 것.

아니나다를까, ‘당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그 길을 계속 가다 보면 정말 어려운 시기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라고, ‘가족의 역사’에서 대니 샤피로라는 사람이 얘기했다고 ‘부모로 산다는 것’ 에 저자 제니퍼 시니어가 언급해두었다. 사춘기는 부모 입장에서 재미없기로 유명한 양육의 한 단계라는 말도.

그렇다, 나는 ‘부모로 산다는 것’ 에 갑자기 좀 많은 피로감을 느껴서, 바로 그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던 것이다. 거의 몇 년동안 육아서같은 것은 집으려고 하지조차 않았음에도.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고, 숱한 소문만이 무성한 그 숲 막 초입에서, 나는 아이를 성인으로 키워낸 모든 부모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 시절 진흙탕속에서 뒹굴며 마디가 굵어지다가 마침내 어떤 항복의 백기처럼 하얀 연꽃으로 고개를 든 그 백의종군들에게. 무조건적인 경의를 표한다. 무조건 거수경례해야한다.

그러니 아직 그 숲에 다다르지 않은 부모들이여, 즐기고 즐기고 또 즐기고 향유하고 후회는 단 한방울도 없이 온몸을 짜내어 만끽하여야한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의 귀결은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받을 것을 기대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의무만이 남은 존재가 사랑하는 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사춘기는 끝나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수레국화길은 왜 사라졌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