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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Nov 17. 2019

월요일의 모험

주말이면 쉼을 핑계로 별 일도 하지 않지만, 돌봄 감정 노동자인 나는 모두가 학교로, 회사로 돌아간 월요일 아침엔 약간의 숨을 고른다. 아니, 매 아침마다 돌아오는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모닝 커피를 마시면서  빌려온 책들을 뒤적여본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에 관한 TV 방송 때문에 유명해진 어떤 외국인의 어머니가 쓴, 유럽의 집밥에 관한 단순한 기능적인 책이었다. 연체된 책을 반납하면서 차가 잠깐 기다리는 사이, 반납하는 곳 바로 옆 신간도서 코너를 빛의 속도로 훑은 뒤 습관처럼 빌린 신간도서 중 한 권이었다. 사이사이에 간단한 여행기가 씌여있어서, 전혀 기대치 않았는데 이런 걸 느껴버렸다. 

우리는 언젠가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모험에 대해. 더 많은 모험을 떠나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았을수록 우리는 더 많이 모험을 떠났었다. 길이 곧게 뻗어있지 않을수록, 공항이 잘 닦여져있지 않을수록, 알려진 오아시스가 더 적을수록, 정비소가 더 눈에 띄지 않을수록, 우리는 모험을 한다. 그녀처럼 북유럽에서 버스로 사하라 사막을 횡단해서 모로코까지 가기도 하고, 편지 한 장만을 가지고 몇 달이 걸려서 다른 대륙에 도착하기도 한다.

누구나 말괄량이삐삐나 빨간머리앤이었던, 삶이 모험처럼 느껴지던 그 때를 생각한다. 

아이가 말을 안듣는다고, 사는 게 내 뜻대로 안된다고, 나는 손톱만큼, 고만큼을 잘 모른다고 괜한 투정을 부렸나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런 저런 오늘 내일의 나의 선택이 모험이라기엔, 비록 고작 따뜻한 카푸치노를 시킬지 아이스 카푸치노를 시킬지의 선택조차 망설이는 나는 이미 모험적이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걸까.

그러나 가끔 인생은 모험아닌 모험이 된다. 갑자기 테이블에 혼자 남겨져 스파게티를 끝까지 먹는 것처럼.

간만에 남편이 오후에 출근한다고 해서 같이 좋아하는 식당엘 가서 스파게티 2개를 주문했는데, 스파게티가 나오는 중에 갑자기, 남편이 시간을 잘못 알았다면서 벌떡 일어났다.몇초사이에 그가 휭 바로 나가버리고 연달아 나온 스파게티를 보며 망설임없이 나는, 하나를 포장해달라고 부탁하고 덩그러니 남아 스파게티를 끝까지 먹고 나왔다. 그러나 이런 저런 볼일을 온전히 스파게티 1인분이 든 봉지를 들고 다니며 봐야했다. 남편은 엑셀을 밟아 겨우 2시간 떨어진 도시에 도착했고, 점심을 굶어야했다.

그날 저녁에 아이들에게 "늬 아빠가 어쨌는지 아니.."하며 이 얘기를 모험담처럼 해주니 첫째가 뒤로 넘어가라 깔깔댄다. 엄마아빠가 당한 황당함이 그렇게 재미있나보다.

그래서 깨달았다. 그것만이 중요하다. 오늘이 처음인 우리는 모두 모험가이고, 중요한 것은 끝까지 모험을 완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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